[월드리포트] 중국판 엄마 찾아 삼만리..결말은?

우상욱 기자 2013. 11. 7. 1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TV에서 방영한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를 즐겨 봤습니다. 마르코라는 이탈리아 소년이 아르헨티나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 뒤 소식이 끊긴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멀고 먼 남미 대륙에서 갖은 고난을 겪은 끝에 마르코는 병으로 숨지기 일보 직전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투병 의지를 되찾고 병상에서 일어납니다. 모자는 결국 함께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린 마음에 감동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중국에서 실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국의 마르코는 부모님을 찾는데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다르긴 합니다만.

중국판의 주인공은 올해 26살의 저우창쿠에이씨입니다. 20년 전인 6살 때 저우씨는 집 대문 앞 길가에서 혼자 놀다가 지나가던 한 남자에게 유괴를 당했습니다. 이 남자는 어린 저우씨를 허베이 한단시로 데려가 한 부부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중국의 남서쪽 끝 윈난성에 살던 저우씨는 대륙의 북동쪽 허베이성에서 전혀 다른 부모와 함께, 다른 이름으로 살게 됐습니다.

저우씨는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일을 당해서인지 윈난에서의 일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한 조각의 기억이 남았습니다. 옛 고향집의 모습입니다. 문 옆에 큰 나무가 서있었습니다. 문 앞으로는 맑아서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실개천이 흘렀습니다. 그 위로 자그마한 다리가 집과 길을 연결해줬습니다. 한단시의 동네 친구들이 자신을 '쓰촨 원숭이', '쓰촨 애'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저우씨는 자신이 어렸을 때 유괴 당했다고 확신했습니다.

저우씨는 14살 때부터 친부모를 찾아 나섰습니다. 단서는 단 하나, 자신이 어렸을 때 남방 말을 썼다는 사실입니다. 저우씨는 자신이 살았을 법한 고장으로 가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경찰과 관계 기관을 돌아다니며 친부모에 관한 소식을 찾았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기억 하는 것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입니다. 허난에서 산시(山西)로, 그리고 산시(陝西), 저장, 푸젠, 쓰촨 등 무려 7개 성을 그런 식으로 돌아다녔습니다. 12년 동안.지난해 12월 저우씨는 다시 쓰촨의 청두시로 갔습니다. 그리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지역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곳의 한 경찰관이 저우씨의 사정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저우씨의 피를 뽑은 뒤 상급 기관에 DNA 분석을 통해 친부모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난달 20일 윈난 쿤밍시의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DNA 분석 결과 저우씨의 부친으로 확인된 피를 찾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청두시 경찰은 즉시 쿤밍시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채혈해 당사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남아있는 옛 연락처를 근거로 두 지역의 경찰은 함께 추적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나흘 뒤인 지난달 24일 윈난 자오퉁시의 한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저우씨의 친부모를 찾아냈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청두시로 데려왔습니다.

지난 3일 저우씨는 청두시의 지역 경찰서에서 친부모를 기다렸습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드디어 친부모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저우씨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우씨는 부모 앞으로 달려가 친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크게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 드디어 만났습니다. 결국 찾아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집 앞에서 놀던 저우씨가 사라지자 근처 강에 빠졌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과 이틀 낮, 이틀 밤 동안 강변을 찾아 헤맸습니다. 시신조차 발견할 수 없자 경찰서로 뛰어다녔지만 저우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년이 흐르면서 살아있으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실낱 같은 희망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들을 찾아온 것입니다. 어린 꼬마였던 아들은 이제 아버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청년이 됐습니다. 20년 만에 아들을 안은 어머니나, 옆에서 아들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아버지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저우씨는 친부모와 며칠을 보낸 뒤 다시 허베이의 양부모에게 돌아갈 예정입니다. 양부모가 자신에게 잘 대해줘 친부모나 마찬가지로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친부모를 찾는 것도 반대하지 않고 도와줬다고 합니다. 이제 친부모를 찾았으니 양부모를 봉양하며 살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저우씨의 친부모는 그런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우씨의 친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이 살아있어 다시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일생 최대의 선물입니다."

중국에서 유괴되는 아기는 연간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저우씨와 같은 비극이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G2 중국이 가장 먼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치부일 것입니다.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