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히토(아키히토 日王의 부친) 박물관, 반성은 없고 '전쟁의 추억'만

도쿄 2013. 7. 30.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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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쇼와館' 가보니, 곳곳에 역사 왜곡.. 일본인 피해만 강조

A급 전범이 합사된 일본 도쿄 야스쿠니(靖國) 신사에서 걸어서 3~4분 거리에 있는 쇼와관(昭和館). 쇼와는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연호로, 그가 재임했던 1926~ 1989년을 지칭한다. 일본 정부가 '전쟁 중과 전후 국민이 겪은 고통을 후세대에게 전해주겠다'는 명분으로 1999년에 만든 7층 규모의 박물관이다.

28일 찾은 쇼와관 7층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전시관 한복판에는 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를 갚겠다는 의미인 '진충보국(盡忠報國)'이 쓰인 일장기가 있었다. 전시된 병사의 유서는 '덴노헤이카(天皇陛下·일왕) 만세'로 끝을 맺었고 병사들의 무사귀환을 격려하는 깃발도 전시돼 있었다. 총알이 피해가라며 1000명의 여자가 수(繡)를 놓아 출전 병사에게 선물했다는 천조각 '센닌바리(千人針)'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원인이나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 등 외국인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역사 왜곡도 있었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을 전한 당시 신문도 전시돼 있었는데, 선전포고 없는 기습 공격이었는데도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내용만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항복선언을 전한 신문엔 "덴노가 만세(萬世)의 평화를 위해 성스러운 결단을 내렸다"는 내용이 실렸다. 박물관의 설명자료에도 중일전쟁의 원인을 '일본군과 중국군이 충돌해서 발생했다', 패전에 대해선 '전쟁이 끝났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대형 '공습피해 지도'에는 미군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지역별로 자세하게 표시돼 있는 등 일본인 피해만 강조했다. '침략의 정의는 없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역사관과 다를 바 없었다.

전쟁 중 일장기를 머리에 두르고 군수품을 생산하는 여인의 실물 인형도 있었다. 어린이에게 당시 체험을 생생하게 전한다며 공습 때 대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컴퓨터 게임기도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생생한 체험을 해보라며 전쟁 당시 미군 공습 대피용으로 쓰던 철모·두건을 비치해 놓았다. 쇼와관은 연초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체험시설을 새로 설치했다.

27일부터 시작한 '전쟁 중의 어린이 생활'이라는 특별전시회에는 전쟁 당시 어린이들이 작성한 위문편지가 전시돼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이 붓글씨로 쓴 '동아영원평화(東亞永遠平和)'라는 글도 있었다. 이는 침략전쟁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정의의 전쟁이라는 의미이다. 어린이들이 총검술 훈련을 하는 당시 대형 사진도 전시돼 있었지만 비판적 설명은 없었다.

침략 전쟁의 개전을 선언했던 히로히토 일왕을 기념하는 도쿄 다치카와(立川)시 쇼와덴노(昭和天皇)기념관도 비슷했다. 일왕의 항복 방송에 대한 설명문은 "옥음(玉音·일왕의 목소리) 방송을 했다. 일본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서명한 개전(開戰)과 종전(終戰) 문서도 있었지만, 전쟁과 상관없는 평화주의자처럼 묘사돼 있었다. 전시실의 상당 부분이 생물학자 히로히토를 조명했다. 기자가 찾은 26일에는 '히로히토 일왕이 사랑한 들꽃'이라는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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