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요구 전면 수용, 개혁 선언한 브라질 대통령

2013. 6. 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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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병규의 글로벌 포커스 > 호세프, "석유로열티 모두 교육에 투자…외국인 의사 수천 명 유치"

[미디어오늘 백병규]"이 사태가 어떻게 끝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20일 상파울로 현지에서 브라질 시위 상황을 전하던 줄리아 카메로 BBC 특파원이 한 말이다.

이날 저녁 브라질에서는 130만 명 가까운 시위대가 80여개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BBC는 시위대 숫자는 최대 200만 명에 육박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브라질 최대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시내 중심가를 가득 메웠으며, 상파울로와 수도 브라질리아 등 주요 도시에서도 수만 명에서 십만 여명의 시위대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초 버스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소규모 시위가 단 1주일 만에 이렇게 급속히 확산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런 만큼 이 시위사태가 어떻게 수습될 수 있을지 그 '끝'을 종잡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80여개 도시에서 130만 명 시위 "월드컵

▲ < bbc > 가 다파폴라와 공동으로 시위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시위대의 87%는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로 71%가 처음으로 시위에 나섰다. '25세 이하'가 53%를 차지했고, 22%가 학생들이다. 요구사항은 교통요금 인상 반대(56%) 요구가 가장 많았고, 부패추방, 폭력과 억압 퇴치, 대중교통수단 개선, 정치인에 대한 반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보면 사실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브라질 정부 당국으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당초 버스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 상파울로와 리우데자네이루 시 당국은 경찰력으로 대응했다. 무자비한 진압으로 악명 높은 '군 경찰'은 이들을 사정없이 다뤘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차질 없이 치르자면 모든 소요 사태에 대해 초동진압이 중요하다는 판단도 한 몫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당연한 '반대시위'를 무력 진압하려는 경찰의 대응에 20대 젊은이들이 분노했다. 그것은 시민들의 누적된 불만에 불씨를 당긴 것이기도 했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불편과 고통,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컨페더레이션컵,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 개최를 위해 12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붓는 것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상파울로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내연되던 버스요금 인상 반대 시위는 월드컵 개최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되면서 전반적인 정치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발전했다. 뚜렷한 조직체는 없었다. 하지만 시위대는 곧 전국적으로 200만 명에 육박했다. 누적됐던 거대한 불만과 분노, 좌절의 표출일 터이고, 구체적인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구의 내용과 수준이 다양하고 시위를 조직한 뚜렷한 정치적 구심 같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 사태 수습의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로서는 당장 사태 수습을 위한 방안을 협의할 파트너를 찾기도 힘든 상태다. BBC의 카메로 특파원이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까닭이다.

방식은 크게 셋이다. 첫째는 최근 시위사태에 대한 터키식 대응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시위대를 '과격분자'로 몰고 강경진압으로 일관했다. 시위사태의 발단이 됐던 탁심광장 게지공원의 농성 캠프를 해체하고 시위대를 일단 해산시키기는 했지만, '서있는 사람'으로 대표되는 '침묵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두 번째는 정치적 대응과 시위에 대한 대증적 대응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정치적 대응을 통해 시위대의 요구를 일정하게 수용하는 한편 시위 사태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대응하는 방식이다. 체면을 잃기 싫은 정치권력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로는 시위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다. 적극적인 정치적 대응으로 시위사태를 수습하는 방안이다. 정치권력으로서는 상당한 용기 혹은 자신감이 필요하다. 사태 수습에 실패할 때 정치적 부담이 크다. 반면 이를 통해 좋은 성과를 낼 경우 정치 사회 변화를 위한 사회적 에너지를 규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며, 향후 사회 변화의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시위의 규모와 정도가 권력이나 체제의 기반 자체를 흔들 정도로 위협적일 때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도 있다. 호세프 대통령 "시위대의 기여와 에너지, 능력 필요"

▲ 21일 TV를 통해 일련의 개혁 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사진=알자지라 방송 화면 갈무리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21일 일련의 개혁 정책을 발표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이날 TV와 라디오로 중계된 연설을 통해 대중교통체계 개선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석유 매출에 대한 로열티(유정 사용료)는 전액 교육비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외과의사 등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수천 명의 외국 의료진 초청 프로그램을 즉각 실시하겠다고 했다. 시위대의 불만과 요구 사항을 대부분 반영한 구체적인 정책들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국민들을 위해 사용해야 할 막대한 재원을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데 쓰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월드컵 경기장 재원은 경기장을 활용하게 되는 기업들이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으로 이를 부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때문에 의료 서비스나 교육 등 공공 서비스 재원이 줄어들거나 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키기 쉽지 않은 약속들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다만 "브라질은 (월드컵 등) 국제행사에서 항상 환대를 받았다"며 "내년 브라질 월드컵에 초청된 손님들을 존중하고 훌륭한 월드컵을 치르도록 하자"며 월드컵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다독였다.

호세프 대통령은 이번 시위사태를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 등을 위한 반전의 계기로 삼고 싶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의 정치 시스템을 활성화시켜야 하며,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며 "우리의 체제가 보다 투명하고, 부정부패를 견제하고 시정할 수 있는 체제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곧 만날 것"이라면서 "그들의 기여와 에너지, 그리고 능력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사회 변화를 위한 정부의 프로그램을 적극 지지하고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우리가 가장 먼저 경청해야 할 것은 시민들의 목소리이지, 경제적 강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면서 시민들 편에 설 것임도 분명히 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19일에도 대규모 시위사태에 대해 '브라질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며 시위대를 옹호해 화제가 됐다. 룰라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 노동자당 후보로 당선된 브라질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호세프 대통령은 "더 나은 국가를 위해 많은 사람이 투쟁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며 "시위대 규모는 브라질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이번 대규모 시위사태가 브라질 민주주의를 한층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정치 개혁을 이루고, 부패구조를 파타하고, 교육과 의료 등 공공서비스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호세프 대통령에게 달렸다. 그가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할 것인지가 일단은 관건이다. 1960년대 후반 군사정권에 저항해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한 전력이나 80년대 이후 공직 활동에서 보여준 일관성과 성실성 등을 고려할 때 그의 진의를 의심할 것은 아니다.

다만 군사정권 이후에도 여전히 특권 속에 젖어있는 정치권의 개혁이나 부패구조의 타파는 호세프 대통령 혼자만의 힘으로 될 일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시민들의 지지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다수가 무당파인 이번 시위세력이 그의 개혁 약속을 일단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중요해 보인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조직한 정치적 에너지를 집권세력이 수렴해 굳건한 사회 변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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