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화학무기, 그 진범은 누구인가

2013. 5.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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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의 글로벌포커스] 최대 수혜자는 이스라엘?…미국과 서방언론의 이중 잣대도 도마에

[미디어오늘 백병규 언론인]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였다.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위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명분은 처음부터 명백한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는 조작됐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썼던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나중에 낯 뜨거운 반성문을 써야 했다. < 뉴욕타임스 > 같은 신문은 1면에 사과문을 싣고 한 때 언론자유의 표상으로 부상하기도 했던 관련 기자를 해고하기도 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빌 켈러 < 뉴욕타임스 > 전 편집국장의 시리아 관련 칼럼이 당시의 정보조작 논란을 새삼 환기시켜 주고 있다. 그는 이라크 전쟁 관련 보도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시리아 침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5일 < 뉴욕타임스 > 에 쓴 칼럼에서다. 칼럼 제목처럼 '시리아는 이라크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다르다" 도대체 무엇이…

▲ 지난해 12월 시리아 홈스 지역에서 사린 화학무기 사용 장면으로 추정되는 현장 사진. < 가디언 > 은 사린가스는 무색무취해 하얀 뭉게구름이 일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이 다를까? 그는 칼럼에서 먼저 편집국장 때 '지은 죄'를 사과했다. 정보 조작에 휘둘린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반성했다. 그래서 총소리에 놀라는 사냥개마냥 소심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는 단호한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라크와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이유다. 확실한 물증이 나왔는데도 더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군사 개입을 주저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 가디언 > 의 칼럼리스트 글렌 그린월드는 이런 그를 두고 "이라크 전쟁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이 그 때 그대로"라고 힐난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은 지난 4월 24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제기됐다. 그 진원지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다. 이스라엘 언론들이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시리아 정부군이 제한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샘플'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역시 정보기관이 입수한 사린가스가 검출된 '샘플'을 증거로 유엔에 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 확인되면서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설'은 기정사실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허술한 구석이 많았다. < 가디언 > 은 화학무기 사용설이 나온 직후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 가디언 > 은 4월 26일 사설을 통해 "유엔 차원에서 긴급 조사팀을 구성해 화학무기 사용 여부에 대해 확실하게 검증해야 한다"면서 "섣부른 예단으로 이라크전쟁 때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 가디언 > 의 자매지인 < 옵서버 > 국제 담당 부장인 피터 베아몽은 보다 구체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첫째, 이른바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로 제시된 샘플의 출처. 당초 서방 정보기관이 직접 현지에서 샘플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리안 반군을 통해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샘플의 출처와 신뢰성에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둘째, 사린가스의 특성과 샘플 채취 지역의 당시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점. 서방 정보기관들은 샘플의 출처와 시기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베아몽 부장은 정보기관 취재와 반군의 주장 등을 통해 이 샘플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11월 시리아 홈스 지역 전투 현장에서 채취된 것임을 밝혀냈다. 당시 전투 상황과 그 현장을 기록한 비디오와 사진 판독 결과 당시 사용됐다는 사린가스 화학무기는 하얀 뭉게구름을 피워 올렸다. 그러나 사린가스는 무색무취하다. 목격자 증언이나 현장 사진 등으로 볼 때 사린가스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

시리아 정부군 자멸적 자충수 둘 이유 있나

그 뿐 아니다.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면 왜 국지적으로, 그것도 아주 소량만 사용했겠느냐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화학무기 자체가 대량 살상용이라는 점에서 아주 제한적이고 국지적인 사용은 기껏해야 '심리적인 효과'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험부담은 크다.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 그것이 초래할 국제정치적 파장 때문이다. 가뜩이나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인 아사드 정권으로서는 자멸적 자충수에 가깝다. 최근에는 반군이 장악했던 해안 도시 가운데 일부를 탈환하는 성과도 올렸다. 굳이 화학무기라는 '위험한 카드'를 사용할 긴급한 사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 이스라엘군의 다마스쿠스 폭격으로 군인 40여명과 민간인 100여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사진은 < 뉴욕타임스 > 기사.

< 가디언 > 은 샘플에서 사린가스가 검출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관리 소홀이나 사고, 실수 등으로 일부 화학무기가 유출되거나 노출됐을 가능성, 또 반군에서 이들 화학무기를 입수해 '전략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국제 사회의 여론의 반전시켜 시리아 사태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군사 개입 등을 유도하기 위한 반군 쪽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전은 극적으로 이뤄졌다. 시리아 내전의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있는 유엔 독립조사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카를라 델폰데 위원이 지난 6일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시리아 정부군이 아니라 반군(자유 시리아군)"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조사관들이 시리아 인접국에서 피해자와 의사, 병원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라고 발표했다. 그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면서도 "반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했다는 강력하고 구체적인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파장이 커지자 조사위는 "정부군이나 반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입증할 결정적인 단서는 없다"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스위스 검찰총장 출신으로 유고슬라비아 전범 재판소 검사를 지낸 델폰데 위원의 경력에 비춰볼 때 그의 주장을 무책임한 발언으로 일축하기도 쉽지 않다.

이스라엘의 시리아 폭격은 정당하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은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두 곳을 포격했다. 명백한 '침공'이자, '전쟁행위'다. 40여 명의 군인들이 사망했고, 100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났다. < 예루살렘 포스트 > 는 시리아 고위 군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스라엘이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첫 번째 폭격은 다마스쿠스국제공항 창고였다.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이었다. 두 번째 폭격은 다마스쿠스 인근 자무라야 지역 군 연구소였다. 미사일 타격이었다. 다마스쿠스국제공항 창고에는 레바논 헤즈볼라에게 인도될 미사일이 적재돼 있었으며, 군 연구소는 생화학무기 연구소라는 게 미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즉각 '자위권의 행사'라며 이스라엘의 폭격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의 '침공'을 비난하고 나선 서방언론도 거의 없다. 이스라엘은 마치 '전쟁면허'를 갖고 있는 나라 같다.

< 가디언 > 의 칼럼리스트인 글렌 그린월드는 이를 미국과 서방언론의 이중 잣대라고 비난한다. 그는 6일 칼럼에서 이를 전형적인 '도덕적 상대주의'라고 비판했다. '행위' 자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같은 행위라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시리아가 미국 영토 안에 있는 미군 기지를 폭격해 사상자를 내고 미국이 시리아 반군을 지원해서 그랬다고 하면 미국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그것을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화학무기에 대한 미국의 시각 또한 이중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표현대로라면 화학무기의 사용은 시리아 사태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다. < 가디언 > 은 사설을 통해 화학무기 사용은 금지선인데, 왜 내전 2년 동안 7만 명이나 죽은 것은 금지선이 안 되느냐고 묻는다. 인도주의 관점 보다는 결국 자국 이해 중심의 발상 아니냐는 물음이다. 정작 시리아 국민들이 겪고 있는 전쟁의 참상과 곤경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비판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 사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국제회의를 개최하자는 데 합의했다. 화학무기 사용설로 한껏 높아졌던 군사적 개입 여론도 일단은 한 풀 꺾였다. 화학무기 사용 여부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시리아 정부군의 짓일까, 아니면 반군의 자작극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조작된 정보였을까?

그 진실은 쉽게 가려질 것 같지 않다. 또 하나의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과 폭격만 정당화해주는 좋은 방패막이가 된 셈이다. 전쟁의 그 첫 번째 희생자는 바로 '진실'이라고 했던가.이스라엘군의 다마스쿠스 폭격으로 군인 40여명과 민간인 100여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사진은 < 뉴욕타임스 > 기사.

< 뉴욕타임스 > 는 5일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폭격 기사에서 "전쟁 2년 동안에 가장 무시무시했던 폭발이었다"는 다마스쿠스 시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지만 나중에 이를 삐 의도적인 삭제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사진은 빠진 인터뷰 내용. '침공'이 아니라 '공격'이라는 표현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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