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죄목 없이 죽은 '재소자X' 이스라엘 정부는 왜 그를 가뒀나

박우진기자 2013. 2. 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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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호주인" 주장 나오며 인권침해 논란

2010년 초 이스라엘 라믈라에 있는 아얄론 교도소에 신원불명의 남성이 수감됐다. 그는 '재소자 X'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 교도관조차 그의 본명과 죄목을 알지 못했다. 그는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 암살범인 이갈 아미르를 가두기 위해 지어진 독방 15호에 수감됐으며 수개월 간 단 한번의 면회도 허용되지 않은 채 철저히 고립된 상태로 지냈다. 그는 그해 12월 감방 안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재소자 X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당시 이스라엘 웹사이트 와이넷 보도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기사는 이스라엘 정부의 검열로 바로 삭제됐다. 기자들은 경찰에 소환돼 심문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이스라엘의 모든 매체에 재소자 X에 대한 보도금지 명령을 내렸다. '미스터 X' '아얄론 교도소 15호 감방'도 금지어가 됐다.

언론에 재갈은 물렸지만 그에 대한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가 2007년 터키에서 실종된 알리 레자 아스가리 전 이란 국방차관이라는 추측도 나돌았다.

12일 호주 국영 ABC방송이 시사프로그램에서 "재소자 X는 이스라엘 비밀 정보기관인 모사드 요원이었던 유대계 호주인"이라고 주장해 논란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방송은 10개월의 조사 결과 "재소자 X가 죽기 10년 전 이스라엘로 이민 간 '벤 자이지어'이며 이민 후 '벤 알론' 또는 '벤 알렌'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호주 외무부도 그가 벤 알렌이라는 이름으로 된 여권을 소지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사망 당시 34세였으며 이스라엘 여성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호주 멜버른으로 송환돼 근교 스프링베일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국내 매체 단속에 나섰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정부가 매체 편집자들을 호출해 긴급회의를 갖고 재소자 X에 대한 보도금지 명령을 상기시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의회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태는 확산되고 있다.

인권침해 논란도 불붙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빌 반 에스발트는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며 "이스라엘 정부가 변호사 선임 등 국제법상 의무를 하지 않은 데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호주 정부도 자국민의 구금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서 곤혹스런 처지다. 밥 카 외무장관은 "이스라엘 정부는 그의 구금과 사망에 대해 통보하지 않았으며 고인의 유족도 유해의 고국 송환 외 다른 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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