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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당' 중국의 귀족계급으로 부상>

(서울=연합뉴스) 중국 혁명원로의 자제들을 일컫는 '태자당'이 중국 정계에서 발언권이 막강한 귀족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에 이은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를 거쳐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習近平)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하고 태자당 출신 정치인 2명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함으로써 태자당의 부상이 절정에 달하게 된다고 평했다.

태자당 대다수는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재계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이미 확고한 기반을 잡았으며 개인적인 '관시(關系)'가 중요한 금융이나 로비업계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류샤오보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들도 권력 있는 집안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이들이 정계와 재계의 주력군"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권력을 잡는 태자당의 상당수는 1958년 대약진운동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66년 문화대혁명 시절 10대 청소년기에 시골로 쫓겨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태자당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한 고위 언론인은 익명을 전제로 "이들은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하고 공산주의 혁명의 나쁜 면을 목도한 격렬한 세대"라면서 "이들이 배운 것은 단 하나,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뿐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18차 당대회 기간이라 공안의 감시를 받고 있는 중국의 한 정치 평론가는 "중국에는 선거도 없고 제도도 없다"면서 "따라서 이들은 고위직에 오르기 위해 가장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시진핑 부주석이 5년 전 후진타오(胡錦濤)의 후임으로 선택된 것을 보면 명확하다. 당시 차기 지도자로 유력했던 것은 후진타오 측근인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였다.

그러나 시진핑 부주석은 태자당 출신인 쩡칭훙(曾慶紅) 당시 부주석의 도움을 받아 차기 지도자 자리를 낙점받는데 성공했다. 반면 리커창 부총리는 집안의 권력 네트워크가 없었으며 후진타오 주석의 지원밖에 없었다.

정융녠(鄭永年) 국립 싱가포르대학 동아시아연구소장은 "이번 18차 당대회에서 배출되는 지도자들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도자로 지명하지 않은 첫번째 세대"라면서 "이들은 정치적 경쟁을 통해 지도자가 되는 첫번째 세대"라고 말했다.

중국의 10대 혁명원로로 꼽히는 예젠잉(葉劍英)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자녀들은 부모들이 지난 1976년 4인방 검거에 참여했던 자녀들로 구성된 태자당 모임을 지난해 주선한 바 있다.

이들 태자당은 중국 공산당이 너무 썩었으며 인민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난하며 중국이 현재 나아가는 방향을 비판했다. 이들은 그러나 추진해야 할 정치적 변화의 수위를 놓고 서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1980년대 개혁 노선을 주창하다 실각한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장남인 후더핑(胡德平)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은 정부와 재계에 대한 공산당의 지배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젠잉 자녀들을 포함한 다른 태자당은 경제적인 이권을 잃을 것을 우려했다.

태자당 출신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거론되고 있는 위정성(兪正聲) 상하이(上海)시 당서기의 가계는 청왕조에서부터 국민당 정부, 중국인민공화국 시절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또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거의 확실한 태자당 출신인 왕치산(王岐山) 부총리는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딸과 결혼했다. 상하이방으로 분류되는 장더장(張德江) 충칭(重慶)시 당서기도 장군의 아들로 태자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시진핑이 군부와 관계에 심어 놓은 폭넓은 인맥으로 인해 후진타오에 비해 더욱 왕성하게 국가를 통치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다른 태자당과의 관시로 인해 과감한 행동이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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