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삼성 갤럭시S는 성공한 '베끼기 도박'이었나 ②

이현식 기자 2012. 9. 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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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사이에서 하는 말 중에 "묵히면 X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사가 좀 설익었거나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묵혀두면 어딘가에 먼저 나버리거나 시의성이 떨어져 못쓰게 된다는 건데요. 오늘 제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글을 쓰다 너무 길어져서 후반부 ⅓ 정도 상태에서 일단 앞부분만 먼저 올리고 다른 일들을 보았는데, 그사이에 상황이 조금 달라졌네요.

애플과 구글이 로열티 지급 및 특허 사용에 대한 계약에 전격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군요. 아래 5항은, 그 합의가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5. 구글은 삼성을 위해 싸워줄 것인가, 아니면 '도마뱀 꼬리자르기'를 시도할 것인가

(주 : 위 부제와, 아래 관련내용의 작성 시점은 한국시간 목요일 오후입니다.)

애플이 삼성 외에 HTC 등 다른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을 차례로 소송으로 공략한 뒤 결국 마지막엔 구글까지 법정으로 끌어낼 것이라는 예상도 많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구글의 태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글은 배심원 평결에 대해 아래와 같은 성명을 냈습니다. 영어 원문입니다.

"The court of appeals will review both infringement and the validity of the patent claims. Most of these don't relate to the core Android operating system, and several are being re-examined by the US Patent Office. The mobile industry is moving fast and all players - including newcomers - are building upon ideas that have been around for decades. We work with our partners to give consumers innovative and affordable products, and we don't want anything to limit that."

"항소법원은 앞으로 특허 침해여부와 (애플의) 특허주장이 유효한 것인지 여부를 검토할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안 중 대부분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코어와는 관계가 없다. 모바일 산업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신규참여자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들은 수십년간 주변에 있어왔던 아이디어들을 토대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구글)는 파트너들과 함께 소비자들에게 혁신적이며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은 제품들을 제공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제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 이런 내용입니다.

성명 발표 직후 이를 소개한 국내 기사들 중 상당수는, "구글도 삼성편에서 지원하고 나섰다"고 썼습니다. 그렇지만 실리콘 밸리의 전문 블로그 다수는, 좀 다르게 보았습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진영의 다른 파트너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안드로이드 자체는 안전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한편, 삼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겁니다.

위 구글의 성명을 보면, 구글은 안드로이드의 "코어"는 애플로부터 특허 소송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면상의 특정부분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 벌림으로써 확대하는 '핀치 투 줌' 기능은 어떻게 된 걸까요? 실리콘밸리의 IT/문화 전문지 '와이어드'(Wired)의 온라인판에서는, "삼성이 가미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문 링크) http://www.wired.com/business/2012/08/android-in-the-clear-for-now/

이 기사에 따르면, 구글은 삼성에 대해 '도마뱀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로펌 헤인즈 앤 분(Haynes & Boone)의 지적재산권 전문가 필립 필빈은 구글의 성명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It's essentially Google saying that the patent issues apply to Samsung's software changes and Samsung's hardware, but not to 'core' Android or other Android products,"(구글은 이번 소송이 삼성의 소프트웨어 변경과 삼성 하드웨어에 대한 것이며, 안드로이드의 '코어'나 다른 안드로이드 제품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노트르담 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 법대교수 마크 매케나(Mark McKenna)도 같은 의견입니다. 구글은 삼성이 자사 제품에 집어넣은 '핀치 투 줌', '탭 투 줌 (두번 두드리면 화면 확대)', 화면 끝에 이르면 튕겨 올라오기 등의 기능으로부터 거리를 두려 한다는 겁니다. "그러한 기능들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라이센싱하여 쓰는 다른 회사들에 의해 변형된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소송에서 배심원들은, 삼성 갤럭시 S가 '핀치 투 줌' 등의 기능도 베꼈다고 보았습니다. 이번 평결, 그리고 판매금지 신청 대상에선 '핀치 투 줌' 기능을 쓰고 있는 삼성의 신제품들 (갤럭시S3, 갤럭시 노트 등) 이 제외돼 있습니다만, 앞으로 이 부분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가 관심꺼리입니다.*

'핀치 투 줌' 기능은 이미 터치스크린을 쓰는 스마트 모바일 기기에 일반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애플이 이를 기화로 광범위한 판매금지 요청을 남발하기는 어렵겠지만 라이센스료를 요구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애플은 미국시간 31일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 S3와 갤럭시 노트 10.1 등에 대해서도 추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편집자 주)

6. 통신기술 특허로 맞불을 놓겠다는 삼성측의 소송전략은 얼마나 효과적인 것이었나?

삼성의 이번 소송 전략은, 애플이 주장하는 디자인 특허의 무효성을 지적한다는 것 (애플 이전에도 유사한 디자인을 썼던 회사들이 있다/비슷한 카테고리의 기기들을 만들려면 기능상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면서 삼성의 통신기술 특허를 사용했다는 점을 부각해 맞불을 놓겠다는 것, 애플의 자국인 미국 이외에 다른 나라들에서 소송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삼성은 "애플이 절대 삼성의 통신기술 특허를 피해갈 수 없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삼성이 개발한 기술은 3,4세대 이동통신의 표준에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에, 삼성이 그렇게 자신감을 표현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삼성의 특허기술 다수가 이동통신산업의 '표준'으로 지정돼 있다는 점입니다.

프랜드(FRAND)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의 약자입니다. 기술표준을 지정하는 산업 (대표적으로 통신산업)에서, 특허기술이 없는 후발주자가 일단 표준특허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나중에 협상을 통해 적절한 기술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허기술을 가진 쪽은 이때, 특허기술을 쓰는 후발주자들에 대해 '공정한' 요구를 해야 하며, 특정 후발주자에게 차별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면 '경쟁을 제한하는 불공정 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돼 제재를 받습니다.

삼성은 애플이 자사의 특허 통신기술을 침해했다며 아이폰의 판매금지를 요구하는 맞불을 놓았지만, 미국 뿐 아니라 소송이 진행중인 대부분의 유럽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삼성은 이미 1988년에 프랜드 선언을 했는데, '판매금지 요구'는 지나치다는 취지였습니다.

삼성은 오히려 올해 1월말부터, EU집행위원회로부터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남용해 반독점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만일 삼성이 '부당하게 표준기술을 남용해 애플 제품을 시장에서 밀어내려 했다'고 인정되면, 관련 매출('이익'이 아닙니다.)의 10%를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삼성이 표준 특허기술을 들이대 애플을 압박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런 상황까지 상정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자칫하면 미국 패소에 따른 벌금보다 이쪽 벌금이 더 큰 부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이 문제와 관련해, 현직 변리사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추천합니다. 소송의 글로벌 확전은 삼성이 주도했다는 점, 삼성이 '디자인'을 '기술'보다 경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짚고, 삼성 입장에서 어떻게 현 상황을 진정시켜 나가면 좋을지 조언했습니다. (원문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2154&CMPT_CD=P0000

7. 루시 고 판사가 배심원들의 평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는가?

실리콘밸리 전문 웹진 '기가옴(GigaOM.com)'은 어제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Are Samsung's new patent threats an offer to cross-license with Apple?" (삼성의 새로운 특허 위협은 애플과 크로스 라이센스를 맺기 위한 제안인가?) (원문링크) http://gigaom.com/mobile/are-samsungs-new-patent-threats-an-offer-to-cross-license-with-apple/

기사의 취지는 이렇습니다.

"삼성은 미국과 유럽을 합쳐 이동통신 관련 특허가 가장 많은 기업이고, 4세대 통신인 LTE와 관련해서도 가장 광범위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이 특허들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 일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삼성은 LTE 관련 특허로 애플을 압박하고 있다. 애플은 9월 중순 내놓을 신형 아이폰에 LTE를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플은 이미 최신형 아이패드에 LTE를 채택한 바 있다. 그때는 가만히 있었던 삼성이 하필 이 시점에 LTE 특허 공세를 들먹이는 이유는, 크로스 라이선싱을 애플이 수용하도록 압박해 이번 소송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요약 의역입니다.)

애플이 이번 재판과정에서 공개한 바에 따르면, 애플은 2010년 10월, 삼성에 대해 스마트폰 대당 30불, 태블릿 대당 40불의 로열티를 낼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만 삼성이 보유 특허 기술들을 크로스 라이선싱 해 준다면 로열티를 20% 깎아줄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2010년 한해분으로 삼성은 애플에 2억5천만 달러를 냈어야 하는데, 삼성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소송전을 벌이게 됐다는 것이 애플의 주장입니다.

(사진: 애플이 재판에서 공개한, 당시 제안의 근거 프레젠테이션)

http://allthingsd.com/files/2012/08/2010-estimate.png

이번에 배심원들이 평결한 배상액은 10억5천만 달러를 넘습니다. 애플이 2010년 1년치 로열티로 요구한 금액의 4배 이상입니다. 그런데, 루시 고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 이 액수는 다시 3배까지 불어날 수 있습니다.

평결 다음날의 국내언론 기사 가운데는 '판사가 배심원들의 평결에 오류가 있다고 본다면 평결을 뒤집을 수도 있고 배상액도 줄일 수 있다'는 내용들이 더러 나오던데, 이곳 분위기는 다릅니다. 삼성의 디자인 '베끼기'가 "의도적이었다"는 배심원단 평결을 판사가 받아들인다면, 배상액수를 3배까지 늘릴 수 있다는 예측이 더 많습니다. '기가 옴' 기사는 이 점 때문에 삼성이 앞으로 소송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것에 리스크가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루시 고 판사가 한국계니까 어떻게 좀 봐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피력하는 분도 있던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마 한국계이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더 좁을 겁니다.

8. 미국 특허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이번 배심원 평결을 두고, '뭐 그런걸 다 특허로 인정해 주나?' 하는 문제들을 많이 제기합니다. 실제로, 유럽 법원들은 디자인 관련 애플의 특허 주장을 다 받아들이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죠. 그렇다면 미국 특허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런 문제제기가 미국 언론에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배심원단이 보호해준 애플의 디자인 특허 중 상당수는 애초에 특허 '꺼리'가 안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 국내에도 많이 인용 보도 되었습니다.) 미국의 현 시스템이 소프트웨어적인 특허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어서 소송이 남발되고 경쟁이 제한된다는 지적은 많습니다. 이번 평결에 "용기를 얻어" 현재 개발중인 소프트웨어의 모양새를 특허내려는 벤처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유명한 IT관련 팟캐스트인 'This Week in Tech (TWiT)'의 진행자 리오 라포테, IT웹진 '더 버지(The Verge)'의 주요 필자이자 변호사인 특허 전문가 닐라이 파텔 같은 이들은 이번 소송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이 문제를 지적해 왔습니다. 혁신에 쓰여야 할 업계의 에너지가 소송전 또는 소송 회피에 소진되면, 결국 돈은 변호사만 벌고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애플이 안드로이드 기기 제조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목적을 바로 이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기기들을 물리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경쟁사들이 안드로이드 기기를 개발하는 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높이는 작전을 쓴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한 미국 여론을 읽을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다수의 미국 전문가들과 언론은 갤럭시S가 ''아이폰을 카피했다'는 배심원들의 평결은 큰 틀에서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쟁을 하려면 제대로 차별화된 제품을 들고 나와서 경쟁하라"는 메시지를 업계에 던졌다는 겁니다. 특허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건 그 다음 얘기입니다. 이 두 개의 사안을 섞어서 '미국이 소프트웨어 관련 특허를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하니 이번 평결은 잘못'이라고 접근하면, 우리에게 위안은 될 지 몰라도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9. "애플도 결국 남의 것 베낀 것 아닌가?" - "베끼지 말고 훔쳐라"

1970-80년대 애플이 매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들 (마우스를 이용한 입력이나 그래픽한 화면 등)을 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소(PARC)에서 훔쳐오다시피 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얘기입니다. 잡스는 당시 IT업계에서 영감의 샘물같은 존재였던 PARC가 혁신적인 컴퓨터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애플 직원들과 함께 견학을 갑니다. 그때 가서 보고 온 것들을 토대로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었죠.

(사진: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PARC)에서 개발한 Alto 컴퓨터)

http://www.computerhistory.org/internet_history/full_size_images/alto.jpg

만일 제록스 연구소가 당시 애플을 상대로, 지금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건 것과 같은 소송을 걸었다면 오늘날 애플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라는 불만을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에게 제기하는 것은 일단 미뤄두고, 여기서는 애플의 행위와 다른 기업들의 행위가 어떻게 다른지 (미국 언론은 어떻게 다르다고 보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진: 팟캐스트 This Week in Tech 의 로고. )

http://3.bp.blogspot.com/_uYDWAuEWK04/Reu3x51GyfI/AAAAAAAACaw/yarax_2RV14/s320/podcast_1.jpg

지난주 일요일 'This week in tech' 팟캐스트에서 언급됐던 내용인데요. 실리콘 밸리에서는 '베끼지 말고 훔쳐라 (Don't just copy it. Steal it.)' 라는 말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리오 라포테와 닐라이 파텔 외에 패널이 여러명이었는데, 중구난방으로 얘기하던 중 나온 내용이어서 정확한 발언자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지 말고, 남에게서 받은 영감(inspiration)을 가져와 ,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자기 것을 만들어 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방 대상인 선행 제품이 소비자에게 주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죠.

미국사람들의 눈에, 잡스는 제록스의 '알토(Alto)' 컴퓨터를 베낀 짝퉁을 만든 게 아니라, 제록스 컴퓨터가 준 영감을 가져다 잡스만의 애플 제품을 만든 것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애플이 오늘날처럼 혁신의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지 않겠죠.

그렇다면 삼성은 어떨까요? 위의 표현을 빗대어 말하자면, 저는 'copy'에서 'steal'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말하겠습니다.

10. 애플의 승승장구는 계속될 것인가

저는 2010년초 뉴욕에 부임한 이후 아이폰 3GS와 아이폰4를 써 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 길바닥에 아이폰4를 떨어뜨려 앞면 유리가 완전히 박살난 것을 계기로 휴대폰을 갤럭시S3로 바꾸게 됩니다.

2년반 이상 아이폰에 길들여진 제가 갤럭시S3로 갈아탈 마음을 먹게 만든 것은, 뉴욕타임즈의 테크 리뷰어인 데이비드 포그(David Pogue)의 리뷰였습니다. 그는 제품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날카로운 비평, 번쩍이는 위트로 매우 영향력이 큰 리뷰어인데, 지난달쯤 게재되었던 그의 갤럭시 S3 리뷰는 그간의 비평 스펙트럼으로 볼 때 놀랄만한 찬사였습니다. 아이폰에 없는 멋진 기능들이 많이 들어있으며, 아이폰 외에 다른 스마트폰은 쓰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설득력 있는 대안이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달 가까이 S3를 사용해 본 느낌은 "과연 그렇게 말할 만 하다"는 것입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다 싶은게, 요즘은 뉴욕 시내에서도 갤럭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갤럭시S3나 갤럭시 노트 괜찮더라고 말하는 IT 전문가들도 늘고 있습니다. 이들의 견해를 뭉뚱그리면 이렇습니다.

"아이폰은 화면이 너무 작다. 그리고, 이제 아이폰은 슬슬 지겹다. 뭔가 새로운 것 없을까 둘러보다가 갤럭시S3 (또는 노트)를 써 봤다. 아이폰보다 더 좋냐고? 그렇게 물어보면 답하기 어렵지만, 아이폰에서 안되던게 되는구나 하는 재미, 뭔가 새로운 제품을 갖고 놀 때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포브스 편집인 리치 카알가드(Rich Karlgaard)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 "Apple's lawsuit sent a message to Google (애플의 소송은 구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을 이렇게 끝맺습니다.

"지난주에 나는 삼성 갤럭시 노트 폰을 샀다. 놀라운 기계다.(It's a marvel of machinery.) 아이폰보다 더 크고, 얇고 가볍다. 갤럭시 노트의 스크린이 워낙 크다보니 사람들은 내가 미니 아이패드의 초기버전을 먼저 입수한 것인 줄 안다. 노트는 아이폰의 하드웨어와 디자인을 가져와, 이를 훨씬 낫게 만들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건 바로 애플이 제록스 알토에 대해서 했던 일인데."

삼성이 "copy"의 단계에서 "steal"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앞서 말씀드린 제 의견과 궤를 같이 합니다.

스마트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여전히 애플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1~2년전과 사뭇 다릅니다. 삼성이 노트, 노트 10.1, 노트 2, S3 등 신제품을 연달아 내놓으며 애플에 대해 대규모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국 IT 기자들도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화기는 아이폰보다 크게, 태블릿은 기존 아이패드보다 작게 만드는 경향이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상당부분 삼성이 주도한 변화라는 것입니다. 9월 중순 아이폰5 (아직 확정된 이름은 아닙니다만)가 발표되기까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이폰은 지금보다 화면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고, 10월중엔 7인치급 안드로이드 태블렛에 대응하는 미니 아이패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정설처럼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삼성은 이번주 독일 베를린 IFA('이파'라고 읽습니다) 전시회에서, 안드로이드 카메라 등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습니다. IFA는 연말연시 대목에 앞서 유럽-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겨냥하는 신제품들을 내놓는 자리인데, 삼성은 IFA를 통해 '갤럭시S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앞으로는 다른 경쟁을 펼칠 것'을 공언한 셈입니다.

(사진: 삼성의 신형 안드로이드 카메라)

http://phandroid.s3.amazonaws.com/wp-content/uploads/2012/08/samsung-galaxy-camera1.jpeg

반면 애플의 가칭 '아이폰 5'에 대해서는, 아이폰 4의 등장이나 시리(Siri)의 상용화 때만큼 소비자들을 흥분시킬 만한 뭔가가 부족할 지 모른다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물론 루머는 루머일 뿐이니까 9월중순에 애플이 또 어떤 화제를 몰고 올지 모릅니다만, 아무튼 최근 2-3개월의 미국 시장 분위기는 그렇습니다.

좀 더 큰 틀에서 애플의 장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잡스 시절 개발된 제품들을 능가할 새로운 것(something new)은 보여주지 못하고, 후발 주자들을 소송으로 때려잡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1980~90년대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은, 제품력으로 우월한 매킨토시를 갖고도, 소프트웨어는 공짜로 풀고 하드웨어는 저가 양산을 유도해 포위전략으로 나오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패배했던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를 찾아가, "MS의 소프트웨어를 맥킨토시에서도 구동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던 일은 애플 사상 최대의 치욕 가운데 하나로 회자될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애플은 모바일 시장에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 잡혀 방어에만 열중하는 기업이 끝까지 성공한 예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애플 사용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11. 삼성의 "도박"은 절반의 성공?

한때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 휴대폰 제조사로 꼽히던 HTC가 요즘은 노키아와 비슷한 신세가 되고,LG는 거의 회자조차 되지않는 가운데, 애플과의 경쟁 전선을 이렇게 바꿔나가고 있는 삼성의 저력은 결국 "베꼈다"는 평결을 받은 갤럭시S에서 나온 것입니다. 갤럭시S를 만들면서 쌓은 경험, 갤럭시S가 시장에서 버텨주는 동안 번 시간이 최근 잇따라 나오는 신제품의 밑거름이 됐을 것입니다.

제가 글 제목에 따옴표를 쳐서 "도박"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삼성의 행보를 설명하기에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되어서입니다. 저는 명절날 점백짜리 고스톱도 칠 줄 모릅니다만, '타짜'의 스토리를 쓴 김세영 작가의 만화들을 통해서 보니, 고도의 도박 게임은 특정 카드가 나올 경우의 수에 대한 수학적 계산, 상대의 수 읽기와 심리 싸움 등 모든 이성적.감성적 요소가 융합된 승부더군요.

삼성이 갤럭시S를 아이폰 3GS와 비슷하게 만들고, 애플과의 소송전을 확전 양상으로 끌고 온 과정도 그러한 도박 게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단 첫 게임은 애플의 '하우스'에서, 애플이 '설계'한 대로 끌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송전은 삼성으로 하여금 요즘 칭찬받는 여러 제품들을 개발해 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소송을 당하지 않았어도 삼성이 S3나 노트같은 차별화된 제품을 필사적으로 개발했을까? 아마, 아이폰 유사품을 중하급 시장에 팔아 적당히 돈 버는 현실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현재 모바일 시장은 OS를 보유한 소프트웨어 자이언트들이 제조에까지 직접 뛰어들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격전지에서, 삼성은 좋으나 싫으나 한국의 대표선수입니다. 삼성이 돈 많이 번다고 해서 서민들의 생계가 금방 나아지진 않겠지만, 삼성이 모바일 전쟁에서 패배하면 적지 않은 서민들의 생계에 더욱 깊은 주름이 질 겁니다. 삼성의 정정당당한 건투를 기원합니다.

p.s. 지난 1편이 SBS 뉴스사이트와 미디어 다음에 나간 이후 댓글로 '걱정'을 해 주신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삼성에서, 또는 회사를 통해서 제가 연락 받은 거 아무 것도 없습니다. 1편이 삼성에 다소 비판적이더니 2편에선 삼성을 다소 옹호한다고 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양을 나누어서 그리 되었을 뿐 처음부터 제 생각은 한 줄기였습니다. '소송의 각론과 상관 없이 구형 갤럭시S는 '베낀'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 '짝퉁'이 아니라 나름의 전략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전략은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파문이 쓴 약이 되어, 삼성이 앞으로 보다 창조적인 회사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현식 기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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