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는 미국 쇠고기 저지 투쟁단

2007. 5. 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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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영신 기자] 김훈 世設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196쪽을 넘겨보면 다음과 같은 단락이 나온다.

…라면이 처음 나온 것은 60년대 초였다. 오늘 쌀값이 얼마라는 기사는 일기예보나 증권시세처럼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춘궁기에는 2맥만 명 이상이 굶주렸다. '기아 퇴치' 또는 '절량 농가 근절'이라는 국정지표를 써붙인 현수막이 관공서 건물마다 걸려 있었고, 박정희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국민을 굶기지는 않겠다"며 울먹였다. 이 배고픈 시절에 나타난 라면의 맛은 경이로운 행복감을 싼 값으로 대량공급했다. 그 맛의 놀라움은 장님의 눈뜸과도 같았고 '빛의 발견'과 맞먹을 만했다…

글의 제목은 <'후루룩 목이 멘다' 라면>이다. '국민을 굶기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눈물과 함께 태어났다는 라면은 어쩌면 국민을 굶기지 않을, 구체적인 대책이었을 것이다. '포만감'을 대량생산해야 했던 당시, 라면의 화학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폐해를 떠드는 것은 한 마디로 '배 부른' 소리였을테다.

FTA 원정투쟁단이 파리까지 날아가는 이유

▲ 박석운 한미FTA저지 범국본 위원장.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

라면에 '후루룩 목이 멘' 시절로부터 강산은 네 번 이상 변했다. 세계 11대 경제 대국이라는 2007 한국은 그러나 또 다른 '경이로운 행복감'이 싼 값으로 대량공급될 꿈에 부풀어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그날의 라면을 밀어내고 당당하게 자리잡았다. 라면의 그날과 같이 미국산 쇠고기가 인체에 미칠 폐해는 묻지말고 '마음껏 싸게' 먹으라는 정부의 구호가 40여 년 전과 절묘하게 닮았다.

쌀값이 얼마라는 기사가 일기예보나 증권시세처럼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되지 않는, 더 이상 배 고프지 않은 시절인 오늘이 40여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포만감에 만족하지 말고 폐해도 생각해 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파리에 온다. 그들의 이름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산하 파리 원정투쟁단(이하 투쟁단)이다.

오는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 파리에서 열리는 제75회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 때문이다.

"한미FTA 협상 막바지인 지난 3월 말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OIE 총회가 미국을 '광우병위험 통제국가'로 등급 판정 하면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박석운 범국본 집행위원장은 기자와의 이메일인터뷰에서 이럴게 말했다. 올해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위험 통제국가로 판정되면 우리 정부는 마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정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는 것인양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OIE는 각국의 가축 관련 정부기관 소속 공무원으로 구성된 국제기구이나 국제연합(UN) 산하 공식 기구는 아니다.

"식품안전 보다는 축산 제품의 국제적 유통 활성화가 주요 관심사인 OIE는 미국 정부가 장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정치적 측면에서 국제적 의사결정을 해온 OIE의 전문성이나 과학성이 의심받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2003년 이후 10차례, 올해 5월에도 광우병이 발생한 캐나다조차 미국과 함께 '광우병 위험 통제국가'라는 등급을 받는다고 해도 미국이나 캐나다가 광우병 위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심지어 우리 축산 당국도 미국에 광우병의 구조적 위험이 있다는 공식의견서를 OIE에 제출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 통상관료들은 마치 OIE가 국제적 권위를 가진 전문가 집단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 지난달 3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한미FTA 타결안 긴급 평가 토론회'에서 박석운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국가주권의 문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고 평가한 박 위원장은 이것이 "통상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국가주권의 문제"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한미 FTA의 협상의제가 아니라고 정부 당국은 주장해왔으나 실상은 협상의 핵심 과제가 됐다는 것. 투쟁단이 급히 꾸려진 배경이다. 고육지책이었다.

"실제로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여전하다. 미국의 사료정책은 소 등 반추동물(되새김 동물)의 육골분을 비반추 동물(닭, 돼지 등)에게 먹이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때문에 반추동물의 육골분을 먹고 자란 비반추 동물의 육골분을 다시 소에게 먹이는 과정에서 '교차오염'의 위험은 필연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 소의 0.1%만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축산 검사 제도가 과연 광우병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더욱이 광우병이 발생한다 해도 어느 농장에서 발생했는 지 밝혀내지도 못할 정도로 이력 추적제가 엉망인 상황이다."

투쟁단은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만 머물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미 FTA 협상을 통해 우리 정부는 섬유 부분의 이익을 얻기 위해 유전자조작생물체(LMO)의 표시제도를 양보했다"고 지적한 박 위원장에 따르면 유전자조작식품(GMO)의 위험성을 비롯한 식품 안전 문제를 국제적으로 여론화 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지난 7일 협상이 시작된 한-EU(유럽연합) FTA 사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FTA편집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EU FTA 협상도 한미 FTA 협상 당시와 거의 비슷한 문제점을 확대재생산 하고 있다. 국내 산업 영향의 분석이나 평가, 차후 한국경제발전의 전략 등에 대해 진지한 연구는 물론이요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나 합의과정도 배제된 상태에서 졸속 강행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허영구 부위원장,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기환 사무총장,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홍하일 대표 등 총 26명으로 구성된 투쟁단에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위원도 동행한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의원들의 의견서를 OIE총회에 전달하는 것이 목적. 그리고 현재 브뤼셀에서 활동중인 가톨릭농민회 정기환 사무총장도 현지에서 합류할 예정이다.

정작 박 위원장은 제외됐다. 지난해 11월 22일 전국 13개 지역에서 동시 개최된 한미 FTA저지 범국민 총궐기 집회 여파다. 각 지역마다 1~2만 명이상의 시위대가 집결한 대규모 집회였다.

"'문제의' 집회 중 5개 지역에서 경찰과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내가 직접 집회를 주관한 서울 지역을 비롯한 나머지 지역은 평화적으로 집회가 진행됐다. 그러나 정부는 마치 범국본이 폭력집회를 기획한 것으로 매도하면서 나를 포함한 40여 명의 간부들에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박 위원장은 현재 6개월 째 수배 상태에 있다.

▲ 3월 16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미국산 수입쇠고기 상징물을 불태우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OIC총회 열리는 20일부터 본격 투쟁

이런 가운데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서울과 파리를 연결하는 대규모 원정 투쟁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파리 현지의 유학생, 동포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현지 유학생들은 기꺼이 투쟁단의 발이 됐다. 언어가 낯선 파리 시민들을 대상으로 통역 등 선전작업을 펼칠 최현정, 최정민, 이진랑, 김신양씨 등은 기꺼이 투쟁단의 입이 된다.

파리 현지의 투쟁 열기도 뜨겁다. 대표적인 대안세계주의 시민단체인 아탁(ATTAC, 시민지원 금융투기거래 과세운동연합)과 같은 반세계화 운동 단체, 프랑스 최대의 노동조합 중앙조직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 프랑스 농민동맹과 같은 농민단체들이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 투쟁을 약속한 것. 지난 15일 파리에 도착한 범국본 김애화 국제담당 부장은 이들과 만나 OIE 총회 현장에서 벌어질 항의 시위의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OIE 총회 개막 전날인 19일 파리에 입성하는 투쟁단은 20일부터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간다. 21일 프랑스 현지 언론 기자회견이 끝나면 파리의 풍물패 '얼쑤(대표 이현옥)'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삼보일배, 촛불문화제 등이 펼쳐진다. 2007 프랑스 대선 후보였으며 대안세계주의 농민 운동가 조제 보베 등 현지 인사들이 투쟁단과 함께 시위를 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칸에서 만난 프랑스노동총동맹의 베르타르 티보 위원장은 집회 당일 열리는 세비야 국제회의 일정때문에 시위에 참가할 수 없으나 "마음만은 한국 투쟁단과 함께 한다"는 격려의 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힘 든 여건 속에서 범국본은 파리 원정투쟁을 준비했다. 프랑스인은 우리와 함께 한다. 동포, 유학생의 도움이 필요하다.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에 흩어져 있는 동포, 유학생들이 집회에 적극 참가해주기 바란다."

파리 원정투쟁을 이틀 앞두고 박 위원장은 이렇게 호소했다.

/박영신 기자

덧붙이는 글기자소개 : 박영신 기자는 <오마이뉴스> 해외 통신원이며, 파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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