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모두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선 안돼

2005. 5. 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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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동현 기자]나흘간의 진통 끝에 19일 끝난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3개항의 공동 합의문이 발표됐다. 6월 21일 장관급 회담을 서울서 개최하고, 평양서 열리는 ‘6.15 민족 통일 대축전’에 장관급을 단장으로 한 당국 대표를 파견키로 했다. 또 남측은 이달 21일부터 북측에 비료 20만톤을 지원키로 했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은 각각 실리를 챙겼다. 먼저 남측은 지난 10개월간 꽉 막힌 당국간 대화를 복원시켰다. 남북관계에 숨통을 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린 셈이다.

게다가 그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할 말을 못했던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속 시원히 할 말을 했다.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한 화해․협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오해도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 그간 미국은 우리 정부에 ‘적과 아군을 분명히 하라’고 압박을 가해왔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

반면 북측도 나름대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화급을 다투던 비료 20만톤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올해 농사를 망칠 뻔한 북한으로서는 일단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나아가 남측으로부터 추가 지원에 대한 언질도 받았다. 소기의 성과는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또 그동안 국제사회로부터 6자회담 복귀 압력을 받아온 북한은 일단 남북대화에 나섬으로써 국제사회의 예봉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국제사회로 하여금 6자회담 재개 희망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6자회담 복귀 땐 남측으로부터 ‘뜻밖의 선물’까지 챙길 수 있게 됐다. 북한으로서는 철저히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남북한 당국이 명심할 게 있다. 눈앞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러다간 남북관계는 예전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할 것이다. 지금까지 당국 회담에서 얼마나 많은 합의조항들이 발표됐는가. 하지만 이들 조항은 얼마 못가 ‘공수표’로 끝나고 말았다. 코앞의 실리만 챙기려 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이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남북간에 신뢰가 쌓여야 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 국내외 정치 상황에 연계시키지 말아야남북이 어떻게 상호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먼저 남측은 인도적 지원을 국내외 정치 상황에 연계시키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쌀과 비료는 북핵 문제와 관계없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얼마 못가 이 말을 뒤집고 말았다. 당국간 대화와 비료 지원을 연계시킨 것이다. 이래 가지곤 북한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상황이 꼬이고 답답해도 꾸준하게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때, 북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래도 믿을 건 남한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바로 이런 신뢰가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대북 쌀-비료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부터 통일비용을 미리 지불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퍼주기’ 논란이 한창 일던 김대중정부 시절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액은 5년간 2350억원(1억8830만 달러)으로, 연간 587억원(470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서독은 1972년 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통일이 된 90년까지 정부 차원에서 연평균 9900억원(16억5000만 마르크-7억4000만 달러)을 동독에 지원했다. 그럼에도 통일이 되고 난 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엄청난 액수의 통일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우리 사회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데, 왜 이들은 돕지 않고 북한만 지원하느냐고 항변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은 ‘가난의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북한은 ‘죽느냐 사느냐’는 생존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차원이 다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 대화의 문 항상 열어놔야한편 북한도 장기간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민족 공조’를 주장하면서 남측과의 대화마저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공조할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을 붉힐 일이 있으면, 회담장에 나와 붉혀야 한다. 그래야 오해가 풀리고, 문제를 풀 수 있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하지 않았나.현재 동북아 정세는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일본은 다시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독도문제와 과거사를 노골적으로 들먹이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도 우리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아예 없애 버리지 않았나. 우리 끼리 다툴 만큼 한반도의 주변 상황이 결코 한가롭지 않다.

다른 민족은 이미 18-19세기에 통일민족국가를 세웠는데, 우리 민족은 21세기가 돼서도 여지껏 통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남북이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남북이 더 이상 반목하지 말고,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의 미래가 열린다./이동현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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