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판 도가니' 진실은 무엇인가
지난 7월25일 인도 언론은 한국인 70대 남성에 관한 소식으로 시끌시끌했다. 인도 남부 벵갈루루(옛 방갈로르)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던 최 아무개씨(72)가 10대 원생들을 수년간 성폭행하다가 잠적했다는 소식이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어린 시절 최씨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방송사 스튜디오에 위성으로 연결돼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얼굴 전체를 거의 가리고 나타난 피해자 카말라 씨(25·가명)는 “나는 열세 살 때부터 ‘아버지’ 최씨에게 보육원 ‘평화의 집(Peace Home)’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라고 고백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그녀는 한국어 단어 ‘아버지’를 또렷이 발음했다. 방송 화면에는 보육원 이름을 비꼰 ‘지옥의 집(Hell Home)’이라는 자막이 떴다. 카말라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여덟 살 당시 친언니와 함께 최씨가 운영하던 보육원에 맡겨졌다. 가난한 목수였던 아버지가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였다.
카말라 씨도 결혼해 두 자녀의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최씨의 보육원이 그녀의 인생에 또다시 걸림돌로 떠올랐다. 올해 초 또 다른 여성 라니(가명)가 최씨의 행적을 폭로하고 나서면서부터다. 라니와 카말라는 같은 보육원 출신이다. 지역 언론에서 라니의 폭로를 접한 그녀의 남편은 “당신도 라니처럼 최씨에게 당했던 거 아니냐”라며 매일같이 추궁했다. 결국 그녀는 집에서 쫓겨났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게 되자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7월 말부터 인도 전역을 뜨겁게 달군 최 아무개씨의 소식이 한국에 전해진 것은 8월 중순이다. 8월18일 시인 류시화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 소식을 자세히 올렸다. 류씨는 “인도인 친구가 보내준 기사를 읽고 울분이 치솟았다”라고 밝혔다. 이후 한국 언론은 류씨의 페이스북 글과 인도 현지 언론을 참고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나흘 뒤인 8월22일, 류씨의 페이스북에 최 아무개씨 소식이 또다시 올라왔다. 최씨가 류씨에게 이메일로 긴 해명 글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류씨는 “이 모든 일은 자신이 운영하는 평화수련센터를 강탈하기 위해 또 다른 한국인 선교사가 인도인 목사와 공모해 카말라에게 거액의 돈과 땅을 주기로 약속하고 자신을 음해한 사건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두 선교사 간의 고소고발이 여러 건 진행 중이라고도 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류씨는 “선교사를 파견한 한국 기독교에서 피해 보상을 해야 합니다. 사건의 조사 또한 부패하고 무능한 인도 경찰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협회에서 나서야 합니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최씨도 자신을 선교사로 소개했다. 최씨는 본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개인택시를 하다가 선교 열정이 불타 장로가 된 지 한 달 만에 인도에 왔다. 1994년 인도로 와서 20년째 선교 활동을 하며 현재 교회 68개를 개척하고 이 중 41개는 건축을 했다. 교회 100개 건축이 목표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미성년자와 성관계 맺은 사실은 인정
최씨와 카말라 씨의 주장은 엇갈린다. 카말라 씨는 ‘원생들이 상습적으로 보육원장 최씨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했다. 그리고 이것이 녹화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씨의 주장은 다르다. 최씨는 ‘음해 세력들의 모함으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긴 했지만 이미 고해성사를 했다. 억울하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최씨가 말하는 미성년자는 카말라 이전 폭로자인 라니다. 음해 세력에게 고용된 라니가 술에 취한 본인에게 먼저 안겨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최씨의 주장이다. 9월3일 밤 방영된 SBS 〈현장21〉에도 최씨의 인터뷰가 나온다. 최씨는 인도 경찰의 눈을 피해 도주하던 중 SBS 취재진을 만나 “이게 왜 도가니인가. 나처럼 어수룩한 사람이 혹독하게 하겠나. 음해를 꾸미면 누구나 당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라니와의 성관계가 담긴 비디오 때문에 이미 한국인 목사에게 협박을 당했고 2000만원을 뜯겼다’고 주장했다.
기자도 8월28일부터 최씨에게 이메일과 전화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가 9월4일 어렵게 최씨의 부인과 전화 연락이 닿았다. 최씨의 부인 김 아무개씨는 “인도가 워낙 후진국이라서 억울한 일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주장도 남편 최씨와 같았다. 최씨는 “선교센터 부지 3600평을 처음에 살 때는 8000만원이었는데 이 땅이 너무 (값이) 올랐다. 여기에 병원·교회·수련원을 지었는데 관리를 하려니까 (힘이) 많이 들어서 한국에서 선교사를 한 명 더 보냈다. 그런데 (그 선교사가 인도) 현지 목사하고 짝을 지어서 우리를 쫓아내려고 우리가 불을 지르려 했다는 둥 아이를 납치했다는 둥 온갖 말을 지어내 고소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있으니까 어려움을 이겨낼 거다”라고 말했다.
부인 김씨가 말한 또 다른 선교사는 대구의 한 교회 관련자를 가리킨다. 최씨는 애초에 대구 한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고, 이 교회의 도움으로 선교센터 터를 매입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교회 사람들이 최씨 부부를 내쫓고 땅을 가로채려 한다는 것이다. 최씨 부부는 ‘카말라가 일을 성사시키면 대구의 교회로부터 1000평(3300㎡)이 넘는 땅과 한국 돈 100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씨 부부가 지목한 대구 교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씨 부부는) 인도 경찰도 돈으로 매수해 살인사건마저 묻을 정도로 무서운 부부다. 인터뷰에 응할 수 없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어찌됐든 최씨는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시인했다. 인도 경찰은 최씨가 라니와 성관계를 맺은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확보하고 최씨를 쫓고 있다. 인도 시민단체가 가세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인도 시민단체들은 카말라 외에도 피해자가 더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피해는 애꿎은 인도 현지 교민들에게 간다. “최씨가 연일 언론에 나오니 한국인에 대한 눈초리가 매섭다. 애들도 학교에서 눈치가 보인다고 하더라”고 입을 모았다. 9월4일 현재 최씨는 벵갈루루에 은신 중이라고 알려졌다. 하루빨리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인도 교민사회가 안정되리라 보인다.
허은선 기자 alles@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