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돈 쓰고도 욕 먹는 이유

최종일 기자 2012. 3. 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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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독주와 한계]③독일 독주의 걸림돌

[머니투데이 최종일기자][[독일의 독주와 한계]③독일 독주의 걸림돌]

↑ 그리스 유명 만화가 스타티스 스타브로폴로스의 최근 작품.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그리스 지원 태스크포스의 독일 대표 호르스트 라이헨바흐가 나치 장교로, 그리스 정치인들은 꼭두각시로 묘사돼 있다. ⓒ스타티스 스타브로폴로스

세계 2차 대전 이후 피혜화된 국가 경제를 추스르기 위해 정치적으로 몸을 바짝 숙여야 했던 독일은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자국의 경제 모델을 유럽 각국에 전파시키며 경제적 초강대국의 역할에 점차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리더십이 단기간에 부상한 만큼 그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가혹한 긴축을 요구받고 있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민들은 과거 나치 독일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독일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고, 국제사회는 독일이 리더로서 역할에 맞는 책임의식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며 질타하고 있다. 유럽 내 경제 1위, 인구 1위국 독일은 '해도 욕먹고, 안해도 욕먹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 거센 반독일 정서

연일 독일에 대한 날선 비판을 담은 만화로 최근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그리스의 유명 풍자 만화가 스타티스 스타브로폴로스는 최근 BBC에 "독일은 전 유럽을 독일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두 차례 했다. 이번에는 경제적 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독일인들에게 악감정은 없으며 독일 정부와 유럽 은행들에 대한 반감이다"고 말했다.

스타브로폴로스의 말은 남유럽 국민들 상당수가 독일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그리스 내 반독일 정사는 과거엔 용납될 수 없었던 모습들이 이제는 대세를 이룰 정도로 험악해져 있다. 최근 아테네에서 진행된 시위에선 히틀러 복장을 입은 한 시위 참가자가 그리스를 대변하는 한 여성을 겁탈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나치 독일 점령이란 '구원(舊怨)'이 가혹한 긴축 요구와 맞물려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아테네의 한 시민은 지난달 말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세금을 낼 형편도 안된다. 봉급은 떨어졌는데 세금은 올랐다. 그마나 나는 행운아다. 주변 사람들 절반은 아예 일자리를 잃었다"며 "독일은 빈주머니인 우리에게 돈을 내놓기를 항상 강요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독일 정서는 그리스에서만 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남유럽 전역에서 '추한 독일인' 이미지가 되살아나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정부를 무너뜨렸으며 온갖일에 개입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독일을 주도로 한 EU의 요구에 따라 기존 정부가 물러나고 기술관료 정부가 들어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이 독일어를 말하기 시작했다"...미숙한 리더

이 같은 비난은 '엄한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국가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만은 아니다. 독일 역시 반감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달 15일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앞두고 그리스를 "밑 빠진 독"이라고 비유하며 그리스는 총선을 연기하고 정치인이 배제된 행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훈수를 뒀다.

이에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는 대통령은 "우리는 그리스와 유럽의 자주를 항상 지켜왔다"며 "쇼이블레 장관의 발언은 용납할 수 없다"며 크게 분개했다. 독일은 이외에도 그리스 긴축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 독일 정부관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그리스 탈세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만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례는 여러 차례 목도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CDU)의 볼커 카우더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당 연례회의에서 독일식 예산제약이 유럽연합(EU)의 모델이 됐다며 "유럽이 갑자기 독일어를 말하기 시작했다"며 말했다. 독일 일간 슈피겔은 이에 대해 "독일의 독주에 대한 일부 국가의 불만을 메르켈 총리의 일부 측근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십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국제사회가 독일에 요구하는 것은 남유럽 국민들의 불만과는 궤를 달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다른 국가 정상들은 위기 해소를 위해 독일이 '유로안정화기구(ESM)'에 더 많은 돈을 내놓길 요구하고 있지만 독일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위기 해소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유로존 구제기금 최대 출자국인 독일은 자국민들의 세금을 제정위기 해소에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와 국방에서도 경제 강대국으로서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이 지난해 초에는 서방의 리비아 군사 개입에 반대하거나 소극적 지지 입장을 표명해 비난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에 대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헤더 콘리 연구원은 글로벌 경제강대국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메르켈 총리의 측근인 토마스 데 마이치에레 독일 국방장관은 지난달 열린 뮌헨 연례안보회의에서 독일이 처한 딜레마를 설명했다. 그는 "권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따른다"면서도 "유럽에선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리더십이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내 나치 독일에 대한 기억으로 독일은 여전히 자유스럽지 않다는 설명이다.

경제적으로는 심화된 무역불균형에 따른 남유럽 국가들의 불만도 독일이 직면한 문제이다. 남유럽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재정위기와 무역적자로 인해 어려움이 커지면서 독일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유로화 사용에 따라 수혜를 입었지만 위기 해결에선 희생보다는 긴축과 예산절감만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독일 일간 디차이트의 편집장 조세프 제페는 최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경제대국이면서 정치적으로 소국이었던 시절은 지났다고 지적한 뒤 "(하지만) 독일은 리더의 역할을 하기 위한 장치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 리더로서 편안함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 역사학자 프리츠 스턴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유럽의 최강대국이 될 수 있는 두번째 기회를 어렵게 얻었다고 지적하며 첫번째 기회는 20세기 초에 날려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일이 유럽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테스트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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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종일기자 allday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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