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기업·反이슬람' 모디.. 인도 新정권에 기대半 우려半

이준우 기자 2014. 5.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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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의 대결로 비유됐던 '지상 최대의 민주주의 쇼' 인도 총선은 '거지' 출신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주(州) 주총리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1950년 인도 북서쪽 구자라트주에서 태어나 버스터미널에서 전통차와 빵을 팔던 소년이 총리가 되는 '반전 드라마'를 쓴 것이다. 모디가 속한 카스트(계급)는 '간치(Ghanchi ·상인에서 유래)'로 인도 4개 카스트 중 피지배계급인 바이샤(농민·상인)와 수드라(하급 노동자) 사이에 속한다. 반면 '인도의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네루·간디 가문 출신으로 모디에게 맞서 정권 재창출에 나섰던 라훌 간디 국민회의당(INC) 사무총장은 이번 참패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천출(賤出)에 가까운 모디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끝난 직후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에 가입하면서부터다. 버스터미널에서 행상하다 알게 된 단골손님의 영향으로 RSS에 가입한 그는 빈민층을 상대로 자원봉사를 하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1980년대 들어 RSS가 인도국민당(BJP)을 창설해 정치에 본격 참여하자 그는 선거운동 전략을 짜는 역할을 맡는다. 1995년과 1998년 BJP는 구자라트 주의회 선거에서 모디의 지휘하에 연이어 압승했다.

모디는 2001년 구자라트주 주총리에 당선되며 본격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모디는 취임 직후부터 '경제 살리기'를 내걸었다. 그는 "기업에 레드 테이프(관료들이 행정서류를 묶는 빨간 끈) 대신 (환영을 의미하는) 레드카펫을 선물해야 한다"며 강력한 개방 정책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 2001년 이후 10년간 구자라트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약 13%로, 인도 전국 평균(7%)을 훌쩍 뛰어넘었다. 외국인 투자 유치 및 사회 인프라 확충을 핵심으로 하는 '모디노믹스(modinomics·모디의 경제정책)'는 이번 선거에서 젊은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으며 승리의 밑바탕이 됐다. 모디는 인도 전역에 신도시를 100개 건설하고 백화점을 제외한 경제 전 부문을 외국 기업에 개방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일부에선 모디의 친(親) 힌두교 성향이 인도 내 1억 7500만명에 달하는 이슬람 교도와의 긴장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모디는 힌두교 최대 행사인 나바라트라 축제 기간 동안 빠지지 않고 단식을 하는 독실한 힌두교도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워커 홀릭'인 그는 "힌두교는 헌신을 의미한다. 나는 힌두교인의 의무를 다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2002년 구자라트주에서 이슬람 교도 1000여명이 극우 힌두교도들에게 집단학살당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총리로서 이를 방관했다는 의심을 받아 2005년 미국 입국 비자 발급을 거절당한 적도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세우고, 이슬람 교도 비율이 80%에 달하는 파키스탄 인접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자치권을 빼앗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취임 후 경제 회생에 주력하다 우익 성향을 드러내고 주변국과 갈등에 빠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처럼, 모디도 힌두교 중심 정책을 펼쳐 파키스탄 등 주변 이슬람 국가와 갈등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디는 이번 선거를 치르며 '패션 모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선거 유세 기간 내내 전국을 누비며 각 지역의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모디의 취미는 사진 찍기와 시 쓰기라고 힌두닷컴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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