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속이면 문제 없다" 거짓 권하는 일본 사회?
제3자에게 의뢰한 곡을 자신이 만든 것처럼 행세한 가짜 베토벤, 획기적인 만능세포 발견 논문은 물론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까지 조작의혹을 받고 있는 30대 여성 연구원, 지금도 지속적으로 유출중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총리와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거짓은 허용할 수 있다는 국민….
도쿄(東京)신문이 18일자 '속이고 싶은 국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거짓으로 만연한 일본 사회를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이 신문은 제대로 속인다면 별 문제가 없다는 풍조가 일본 사회에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특정한 계층의 형편이나 사정을 개인의 의견보다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입장(立場)주의'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입장주의는 야스토미 아유무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가 <재팬이즈백>이라는 저서에서 소개한 용어다.
야스토미에 따르면 입장주의는 군인들이 군국주의 분위기에 이끌려 전쟁을 주도했으면서도 시대적 이유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한 것이 근원으로, 이후 상사의 체면을 위해 후배를 책망하는 일본 기업문화로 자리잡았다.
정계에 만연한 입장주의는 1999년 자민당 간부들의 밀실담합에 의해 탄생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정권 시절 뿌리내렸다. 야스토미 교수는 "모리의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자신의 정치 신념이라기 보다는 당내에 치열한 정쟁속에서 상대방 파벌을 구슬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이즈미의 뒤를 이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원전 오염수가 통제되고 있다거나 성역 없는 관세철폐를 전제로 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 역시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작성한 자민당 공약집에 '장기적 탈원전'을 명기했지만, 집권 1년 남짓만에 "원자력을 베이스로드 전원"으로 명기한 새로운 에너지 기본계획안을 발표, 스스로 공약을 뒤집었다.
정치인의 거짓은 자민당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 정권을 이끌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는 2011년 12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8개월 만에 "원전사고는 수습됐다"고 발표, 전세계의 공분을 샀다.
거짓을 일삼는 풍토는 학계, 예술계에도 만연해있다.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 연구주임은 30세의 나이에 유도만능줄기(iPS)세포의 업적을 뛰어넘는 STAT세포의 존재를 알리는 논문을 발표한 지 한달 만에 논문 조작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박사논문에서도 의혹이 발견돼 학위박탈 위기에 놓였다. 2012년에는 모리구치 히사시(森口尙史)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iPS세포를 응용, 중증 심부전증 환자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거짓으로 판명됐다. 청각장애 작곡가 행세로 현대판 베토벤이라는 별명을 얻은 사무라고치 마모루(佐村河內守)는 다른 사람의 곡을 자신의 곡으로 속여 발표한 데다, 청각장애마저 거짓으로 드러났다.
작가 미야자키 마나부(宮崎學)는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면서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어려워진 시대적 배경속에서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믿고 싶어하는 대중 심리가 더해져 거짓이 판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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