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戰後체제 종언] 우등생 독일마저.. 6명 중 1명, 빈곤 문턱에

베를린·런던 2014. 1. 3.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풍요의 대륙으로 인식돼 왔다. 구대륙은 앞선 과학기술과 금융, 옛 식민지 무역과 관광 자원으로 일찍이 부를 쌓고 탄탄한 중산층을 형성했다. 유럽인은 음악·미술 등 수준 높은 문화, 긴 휴가도 향유했다. 하지만 오랜 경제 위기와 저성장, 개발도상국과 벌인 경쟁 등으로 이들의 풍족한 삶은 옛 추억이 되고 있다. 유럽 젊은 층은 특히 높은 물가와 저임금으로 내핍(耐乏) 생활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최우등생인 독일·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 베를린의 중산층 시민 베른트 슈마이허(35)씨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 본사의 마케팅팀 매니저다. 그가 주 40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2800유로(약 405만원). 이 중 각종 보험료와 세금으로 월급의 27%(748.9유로)가 빠지고, 아파트 월세 800유로 등 고정비용을 빼면 수중에 월 850유로(약 124만원) 정도 남는다. 네 가족은 이 돈으로 식비 등을 해결한다. 그는 "소득으로는 내 또래 중 중간 이상인데 외식이나 문화생활을 하기 버겁다. 대기업 중간 간부로 퇴직한 부모는 여전히 뮌헨에 집이 있고 여름엔 긴 휴가를 떠나는데 우리 세대에겐 꿈같은 얘기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약사 피에르 베르티옹(28)씨는 약대 7년 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약국에 취업했다. 그의 월급은 2900유로(약 420만원). 파리 월세가 워낙 세서 집에 친구 한 명을 들여 월세를 900유로(약 130만원)씩 나눠 낸다. 파리 도심에 방 하나 딸린 아파트 월세가 최소 1300유로(약 190만원)여서 동거가 불가피했다. 베르티옹씨는 "프랑스 일반 대졸자 첫해 월급이 2000유로(약 290만원)에 불과해 보통 청년들은 파리지엥(파리 거주자)이 될 꿈을 접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독일의 빈곤층 위험군은 1300만명에 이른다고 독일 연방통계청이 최근 발표했다. 독일 국민(전체 8200만명) 6명 중 1명꼴인 16.1%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1984년 첫 조사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EU는 소득이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의 60% 미만인 경우를 빈곤층 위험군으로 규정한다. 2005년 12.2%였던 빈곤층 위험군 비율이 8년 만에 3.9%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독일 사민당은 "독일이 유럽에서 최저 실업률을 보이는 것은 착시"라고 주장한다. 실업률은 낮은 편이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저임금 일자리가 매우 많다는 의미다.

영국 정부 산하 빈곤위원회는 영국 내 중산층 자녀가 어른이 되면 현재 부모 세대보다 궁핍한 생활을 할 것이란 보고서를 의회에 냈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자녀 세대가 등장하는 것은 영국에서 지난 100년 동안 처음이다. 영국 번영을 상징하는 중산층 상황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중산층 가구의 연소득은 2007~2008년 3만7900파운드(약 6600만원)에서 2011~2012년 3만2600파운드(약 5700만원)로 14% 떨어졌다. 2011년 등장한 신조어 '줄어든 중산층(squeezed middle)'은 이제 상용어가 됐다. 런던 시내 한 백화점의 비정규직 직원 조너선 레빈(26)씨는 "집값 등 생활 물가가 너무 오른 반면 정규직 일자리는 거의 없어 미래가 암울하다"고 말했다.

영국 16~26세 젊은이 216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281명(13%)이 실업 상태에서 교육이나 직업훈련조차 받지 않는 니트족(NEET)이며 이 중 166명(7.7%)이 6개월 이상 실직 상태라고 응답했다고 BBC가 프린시스 자선재단 발표를 인용해 2일 보도했다. 이 설문에서 전체의 9%(195명)가 "삶의 목표가 없다"고 답했다.

남유럽 국가 형편은 더욱 심각하다. 스페인·포르투갈 젊은이들이 아프리카나 남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게 특별하지 않은 상황이다. 포르투갈 사립 명문 카톨리카대학 재학생 타티아나(20·경영학)씨는 "포르투갈과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 다른 유럽 국가 대신 기회가 열려 있는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일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내핍과 달리 경제 성장기에 사회생활을 한 노년층은 연금으로 퇴직 전 임금의 70% 안팎을 받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이 때문에 세대 간 소득·생활수준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복지 혜택과 무상 의료·교육 등을 감안할 때 유럽 내 일반적 삶의 질은 개발도상국과 차원이 다르지만, 유럽 청년층이 현재 노년층과 같은 삶을 누리기 어려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모니카 크바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 연구원은 "유럽은 현재의 젊은 층이 노년이 되었을 때, 이들의 빈곤을 해결할 대책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