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언론, 간토 조선인대학살때 유언비어 확산에 가세"

2013. 8. 3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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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민단체 관계자, 90주년 집회서 관련 증언 공개

일본시민단체 관계자, 90주년 집회서 관련 증언 공개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대지진의 와중에 무고한 조선인 수천명이 일본 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된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대학살 당시 일본 언론과 그 종사자들도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 유포에 가세했다고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가 밝혔다.

'간토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해 추도하는 모임'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53)씨는 31일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메이지(明治)대학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90주년 집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료를 발표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거나 방화를 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확산하고, 일본인들에게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조선인 학살극이 벌어지는데 언론이 기여했다는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간토대지진(1923년 9월1일) 발발 직후인 1923년 9월 도쿄일일신문은 '불령선인(不逞鮮人·일본에 불복종하는 조선인)들, 곳곳에 방화'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간했다.

또 '시민들은 군인, 경찰과 협력해 조선인을 경계하라. 우물에 독을 푸는 사람이 있으니 우물물에 주의하라', '도쿄 시나가와에서 불령선인 3천명이 폭동을 일으켰다. 자경단이 이들과 싸웠으나 패했다'는 등 허무맹랑한 내용을 담은 포스터와 전단지가 도쿄일일신문같은 신문사 이름으로 유포됐다는 증언들이 존재한다고 니시자키씨는 소개했다.

이와 함께 경찰의 의뢰를 받은 일부 신문사가 메가폰 등을 이용해 조선인이 폭동 등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선전했다는 목격담과, 기자들이 경찰로부터 조선인 관련 유언비어 유포를 부탁받았다는 전언도 자료집에 소개됐다.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이 1945년 해방 후 세상에 알려지기 전 일제가 자국민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은폐·왜곡한 정황도 나왔다. 대지진 이듬해인 1924년 '조선인 변사'라는 사람 2명이 현지 학교들을 돌며 조선인의 '잘못'을 사죄하고 화해를 언급하는 강연회를 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니시자키씨는 소개했다.

이와 관련, 이날 발표자로 나선 정영환 메이지학원대학 교수는 "학살 발생 이후 조선인에 의한 진상규명 움직임을 일본 정부가 엄격히 통제했다"며 그 때문에 해방전까지 조선인들이 대학살과 관련, 위령제나 추도식 이상의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도쿄와 요코하마(橫浜) 등 일본 간토지방 일대를 강타한 간토대지진(규모 7.9)으로 10만5천명 이상(행방불명자 포함)이 사망했다.

이 대지진 이후의 혼란 상황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다닌다'는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현 등 간토 일원에서 조선인들이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학살됐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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