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년을 쏘았나

2013. 7. 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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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계] 지머먼의 방아쇠를 당긴 건 혐오일까 공포일까 공명심일까

트레이번 벤저민 마틴은 1995년 2월5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사브리나 풀턴과 아버지 트레이시 마틴은 그가 네 살 때인 1999년 이혼했다. 어머니·형과 함께 마이애미 가든 지역에 살던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2012년 2월26일 마틴은 플로리다주 샌퍼드의 트윈레이크 지역에 있는 아버지의 약혼자 집을 찾았다. 전에도 여러 차례 아버지와 함께 찾았던 곳이다. 마이클크롭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마틴은 당시 정학 기간이었다. 전에도 지각·무단결석과 허락 없이 벽화 그리기 등의 이유로 두 차례 정학을 당한 일이 있단다. 문제아였을가? <올랜도센티널>은 지난해 3월17일치에서 마틴의 영어교사인 미셸 카이프리스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다. 성격은 아주 활달했다. 뭔가 만드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여러 물건이 합쳐져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날은 마틴이 태어난 지 17년11일째 되는 날이었다. 저녁 무렵 그는 과자 따위를 사러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평소 즐겨입는 모자가 달린 회색 웃옷(후드티)을 입은 채였다. 그는 180cm의 키에 몸무게가 72kg으로 체격이 좋았다.

조지 마이클 지머먼은 1983년 10월5일 버지니아주 마나사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글래디스 지머먼은 페루 태생의 이민자였고, 아버지 로버트 지머먼은 독일계였다. 말하자면, 그는 '히스패닉의 피가 섞인 백인'이다.

경찰 기록을 보면, 지머먼은 21살 때인 2005년 술에 취한 상태로 경찰관과 싸우다 체포된 일이 있다. 같은 해엔 당시 그의 약혼자가 '가정폭력'을 이유로 지머먼을 상대로 '접근금지 명령' 신청을 하기도 했다. 폭력배였을까? 결혼한 뒤인 2009년 트윈레이크 지역으로 이사를 온 지머먼은 보험설계사로 착실히 일했다. 저녁엔 집 근처 세미놀전문대학에서 형사법을 공부하며 법률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지역 자율방범대원으로도 활동했다.

'운명의 그날' 지머먼은 동네에서 차를 몰고 있었다. 저만치에 후드티 차림의 흑인이 보였다. 수상했다. 그는 휴대전화로 샌퍼드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경찰 기록을 보면, 지머먼과 경찰 당직 근무자의 통화는 그날 저녁 7시9분께 시작돼 7시15분께 끝났다. "최근 몇 차례 절도 사건이 났는데,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수상쩍은 흑인 남성이 거리를 서성이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 통화는 지머먼이 '거동수상자'를 뒤쫓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잠시 뒤, 조용하던 거리에서 총성이 울렸다. 바닥에 쓰러진 것은 마틴, 코피를 흘리며 총을 들고 선 것은 지머먼이다. 아버지 약혼자 집에서 불과 64m 떨어진 거리였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주장이 엇갈린다. 지머먼은 2012년 4월11일 '2급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수감 당시 경찰 기록을 보면, 지머먼은 170cm의 키에 몸무게는 84kg이 나갔다. 마틴에 견줘, 왜소하다 할 만하다.

미국에선 이른바 '정당방위'에 관한 법 규정이 주마다 다르다. 일부 주에선,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심각한 신체적 위해가 가해질 것이란 '합리적 위협'을 느낀 사람은, 치명적인 위력을 동원해 대항하기 전에 최소한 상황을 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플로리다주를 포함한 17개 주에선 '회피 노력'을 강제하지 않는다. 이른바 '제자리 지키기' 조항이다. 사건 당시 지머먼은 마틴의 뒤를 쫓았다.

지머먼의 재판은 2013년 6월24일 시작됐다. 진행이 빨랐고, 결과도 쉽게 나왔다. 7월13일 샌퍼드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머먼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배심원단 6명 가운데 5명이 백인이었다. 지머먼은 마틴을 살해하는 데 사용했던 권총까지 되돌려받게 됐다. <ap신>은 그의 변호사 말을 따 "인종차별 논란이 커진 마당이니, 지머먼에게 그 어느 때보다 총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인종과 총기, 미국을 옥죄는 '두 가지'가 만났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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