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일본제국' 꿈꾸는 우익..과거사 부정

2012. 12. 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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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총선 자민당 압승

차기 총리 확실시 아베 신조는

16일 치러진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차기 총리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58) 자민당 총재는 나카소네 정부에서 외무상을 4번 연임하고 급사만 하지 않았다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아베 신타로의 차남이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그의 외할아버지이고,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는 기시의 친동생이다. 화려한 정치가문 출신으로 '일본 정계의 황태자'라 일찍부터 불렸던 그는 '어려서부터 내 주변엔 정치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치가 집안 출신 '정계 황태자'사상 두번째로 두번 총리직첫 총리 때 각료부패 등 발생참의원 선거 패배한뒤 사임

세이케이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1년만에 중도 포기한 그는 사회에 진출해 처음엔 철강회사에 다녔다. 그러나 3년 뒤 아버지가 외무상을 맡게 되자 비서가 되어 정치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1991년 아버지가 급사하자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이 됐다. 그는 2002년 관방부장관으로 북일 정상회담에 수행했다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대북화해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정치적으로 크게 부상했다. 그 뒤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하면서 총리 후보로 자리를 굳혀 고이즈미의 뒤를 이어, 전후에 태어난 첫 총리가 됐다.

그의 정치이념은 외할아버지 기시와 나카소네 정부 외무상이었던 아버지의 것을 계승하고 있다. 기시는 1955년 자민당 결당의 주역 가운데 한명으로 미국과 안보조약 개정이 총리시절의 숙제였다. 기시를 비롯한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은 안보조약 개정을 통해 일본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기를 바랐고,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해 이를 완성하고 싶어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아베는 외할아버지와 같은 정치이념을 공공연히 표방했다. 그는 2006년 관방장관시절에 쓴 정권 구상집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그는 친미성향의 나라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 대국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자신의 정권을 전후체제를 벗어나 새롭게 출항하는 '배'라고 정의하고, "현행헌법을 정점으로 한 행정, 교육, 경제, 안보의 틀을 시대 변화에 맞춰 대담하게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총리' 외조부·부친처럼미국과 대등관계 맺기 바라군위안부 부인·핵무장 주장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목청

그는 일본이 식민지 시대에 저지른 잘못을 바탕으로 과거사를 반성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위안부는 지어낸 이야기'라는 그의 주장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위안부 역사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을 '자랑스런 나라'라고 교육해야 한다며, 총리 시절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애국심 고취'를 교육 목적에 추가했다.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무력으로 도울 수 있는 '미국과 대등한 동맹관계의 일본'을 꿈꾸는 그는 평화헌법을 고쳐 일본의 방위력을 키우고 실력행사를 가능하게 하자고 주장한다. 첫 총리시절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시킨 그는 이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헌법에 명시해, 일본이 합법적으로 군대를 보유하자고 주장한다. 또 동맹국이 공격을 당했을 때 반격에 참가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가능하게 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과거에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발언도 공공연히 했다.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이다. 하지만 첫 총리 재임 때 그는 고이즈미 전 총리시절 악화된 중일, 한일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한 일도 있다.

큰 기대를 모았던 그의 첫 총리 시절(2006년 9월~2007년 9월)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각료들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농수산상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의 위안부 부정 발언 탓에 미국 하원은 '위안부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내각 지지율이 급락하고 참의원 선거에서도 패배한 뒤 건강 악화를 이유로 그는 전격 사임했다. 그런 그가 6년만에 다시 돌아온다. 한번 총리를 지낸 이가 사임했다가 다시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일본 정치사에서 요시다 시게루(1946년, 1948년)에 이어 두번째이며, 1955년 자민당 체제가 성립한 이후엔 처음이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군대 보유·센카쿠 실효지배 강화"자민 안보정책, 한·중과 갈등 예고

아베 신조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이 이번 총선에서 내놓은 외교·안보 공약은 동아시아 주변국 특히 한국·중국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아베 총리가 과거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에 저지른 잘못을 상당부분 부정하고 있는 가운데, 군대의 보유와 교전권 행사를 포기한 평화헌법을 고치고, 일본의 방위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강고한 미일동맹을 재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바탕 위에 방위력을 양적,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자위대의 인원과 예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 총리 직속 기구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평화헌법과 관련해선 아베 총재가 '헌법을 고쳐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시하겠다'고 밝혀, 군대의 보유를 정당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의 안전을 지킬 최소한의 자위권 행사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을 제정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확히 한다'는 내용도 공약에 담았다. 외국에서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인 보호를 위한 자위대 파견이 가능하도록 자위대법도 고치겠다고 밝혔다.

영토문제에서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영토·주권 문제를 담당하는 조직을 정부 안에 두고, 연구·조사 기관을 설치하며, 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는 실효지배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에 대해서는 '성역없는 관세철폐'를 전제로 한다면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리더 허약·공약 불이행…민주당 몰락 자초했다어린이 수당 등 제대로 실현 못해

2009년 8월31일 일본 총선 결과는 전후 일본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끄는 민주당은 중의원 480석 가운데 308석을 얻어 1955년 결당 이후 한번도 제1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자민당을 119석의 힘없는 야당으로 밀어내고 명실상부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자민당 탈당 세력과 옛 사회당 세력 등이 모여 1998년 당을 결성한 지 11년만의 일이었다.

민주당이 세력을 크게 키운 것은 2006년4월 오자와 이치로가 당 대표가 되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정책을 부정하면서 기존 정책의 대전환을 이룬 것이 전기가 됐다. 민주당은 성장 우선 정책을 버리고, 어린이 수당, 농가 호별 보상제 도입 등 국민의 생활을 중시하는 정책을 전면에 내걸었다.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의원 제 1당으로 떠오른 민주당은 기세를 몰아 2009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런 민주당이 3년4개월 만에 치러진 선거에서 100석에도 못 미치는 정당으로 쪼그라들게 된 것은 '리더의 능력 부족 탓'이란 지적이 많다. 초대 총리를 맡은 하토야마 유키오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오락가락한 끝에 1년도 되지 않아 물러났다. 뒤를 이은 간 나오토 총리는 3·11 대지진 수습 과정에서 수많은 정책 혼선으로 크게 점수를 잃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중국과 센카쿠열도 갈등에서 계속 수세에 몰리면서 지지율이 20% 안팎까지 떨어졌다.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은 민주당을 국민의 지지에서 멀어지게 했다. 중학교 졸업 이전의 어린이 한 명에 월 2만6000엔씩 어린이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은 간판 공약이었으나, 정권 초기 절반을 지급하다 재원 부족으로 사실상 폐지했다. 재원 마련 방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이었다. 민주당은 노다 내각 들어서 세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공약과 상반되게 소비세를 증세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가결을 주도하기도까지 했다. 결국 노다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고속도로 무상화, 공무원 임금 삭감 등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고바야시 마사야 지바대 교수(법경학부)는 "이념의 주요 부분을 유지한 채 총선에 임했다면, 민주당은 실현하지 못한 정책에 대해 비판을 받기는 해도 이 정도로까지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당이 추구한 가치를 내려놓은 것이 무엇보다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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