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내 몸을 만져요" 호소하던 소녀는..

2012. 3. 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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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낯선 도시로 끌려간 뒤 실종 5개월째인 네팔소녀 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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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디아(당시 13)가 사라졌다. 벌써 5개월째다. 카트만두의 한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디아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10월2일이었다. 그날 교복을 입고 등교한 것이 선생님과 친구들이 본 디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디아는 7살 때부터 일하던 집의 주인에게서 수없이 맞았고, 집주인이 불러들인 남자에게 성추행까지 당했다. 비정부기구(NGO) '희망의 언덕'은 디아를 '고통의 수렁'에서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린이 가사노동자' 디아는 구출 직전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겨울철 찬물 빨래 뒤 쪽방서 잠들어

네팔의 어린이 가사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디아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2001년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의하면, 디아처럼 가사노동을 하는 18살 이하 어린이들이 네팔에만 약 5만6천 명에 이른다. 이들은 5살 때부터 심부름과 아이돌보기, 애완견돌보기 같은 일을 한다. 아이들은 차츰 나이가 들면서 빨래나 부엌일, 치매노인 돌보기 등 점차 고된 노동을 하게 된다. 특히 겨울철에 빨래하기는 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네팔에서 고된 노동에 해당한다. 물을 먼 곳에서 길어와야 하는데다, 차가운 물에 주인 가족들의 빨래를 맨손으로 빨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이 끝난 뒤에는 쪽방이나 부엌에서 그대로 잔다.

아이들이 나이 들면서 감당해야 하는 것은 고된 노동만이 아니다. ILO 보고서는 가사노동 어린이 중 절반 이상인 54%가 주인집에서 성적 학대를 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34%가 손톱을 바늘로 찌르는 고문 등 다양한 형태의 학대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사소하게 때리는 것은 아예 학대 사례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성적 학대를 당하는 어린이 중 상당수는 '소년' 가정부다. 네팔의 가사노동 어린이 노동자 중 절반가량이 소년이기 때문이다. 상위 카스트 계급은 여성이 생리하는 것을 부정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년을 가사노동자로 들이는 경우가 많다. 5살의 어린 여자아이를 가사노동자로 들이더라도, 그 소녀가 18살이 되기 전 어느 때 생리를 시작하면 여인으로 변신하는 탓이다.

어린이 가사노동자들은 이런 고통 속에서 일하며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이 가사노동자의 월임금은 보통 500루피(약 7500원) 정도 책정되는데, 많은 고용주들이 아이들에게 음식과 주거지를 제공한다는 구실로 임금을 주지 않는다. ILO 보고서는 어린이 가사노동자 2명 중 1명은 임금 없이 노동한다고 지적한다.

어린이 가사노동자들은 대개 이웃 사람이나 친척, 심지어 부모의 소개로 주인집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들을 가사노동자로 보내는 쪽은 대개 신분이 낮은 카스트 출신이고,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쪽은 높은 카스트 출신이 많다. 일부에 국한되지만, 낮은 카스트족 출신 가정에서는 자녀를 모두 가사노동자로 보낸 뒤 한 달 임금인 500루피를 수금하기 위해 주인집을 돌아다니는 부모도 있다.

카트만두 부유층이 주로 어린이 고용

지역적으로 보면, 가사노동자들은 주로 카트만두와 지방 대도시에 밀집해 있다. 특히 수도 카트만두는 부유한 사람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돌깨기 노동자 등 많은 어린이 노동자들이 카트만두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많은 네팔 어린이들이 가정부 등으로 일하거나, 심지어 팔려가 무급으로 일하는 것은 네팔 사회가 어린이들을 위한 기본적 안전망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아이들의 노동 없이는 최저생계비를 확보할 수 없는 열악한 빈곤가정이 많다. 또한 가족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 때 안전망이 돼줘야 할 지역과 국가 공동체도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네팔의 최대 노동조직 '지폰트'(GEFONT)에서 어린이 노동자 부문을 담당하는 스미리티 라마 간사는 '네팔 사회가 심각한 어린이 노동자 문제를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가'라는 물음에 "가난과 전통적으로 어린이 노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정확히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라고 대답했다.

부르트고 갈라져 고목처럼 딱딱해진 손

디아도 가족관계가 무너지면서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안전망 구실을 못한 탓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디아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7살에 아버지마저 잃은 고아다. 더욱이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디아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그 집에 오게 되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디아의 삼촌이 주인집과 안면이 있는 것을 보면 삼촌이 디아를 주인집에 소개하거나 팔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경로로 주인집에서 일하게 됐건 디아는 그곳을 떠나갈 어떤 방법도 상상하지 못한 채 13살이 될 때까지 주인집에 봉사했다. 디아의 하루하루는 폭력과 성추행이 난무하는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

'희망의 언덕'에서 디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너무나도 거친 그녀의 손 때문이었다. 나는 2010년 12월, 희망의 언덕에서 후원하는 어린이 노동자들이 다니는 학교 '아다르샤 칸야 니케탄'에서 선생님의 소개로 디아를 처음 만났다. 첫 만남에서 디아의 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부르트고 갈라져 고목처럼 딱딱해진 손은 13살 소녀의 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디아에게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핸드크림 하나를 사주는 것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받은 핸드크림 때문에 디아는 더 고통을 당하고 말았다. 3개월 뒤, 학교에서 다시 만난 디아는 집주인이 핸드크림이 어디서 난 것이냐며 몹시 때렸다고 한다. 사실 주인은 매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디아를 폭행했기에, 핸드크림은 어쩌면 하나의 빌미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선물조차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디아를 그 집에 더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건 2011년 9월, 어떤 남자들이 와서 디아를 괴롭힌다는 말을 듣고부터였다. 디아는 집주인이 모르는 남자를 데려와 자신을 만지게 한다며 괴롭다고 호소했다. 희망의 언덕은 10월 말 정도에 디아를 구출하기로 결정했다. 주인이 상당히 위험한 인물로 알려졌기에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하지만 희망의 언덕은 이 결정을 실행할 수 없었다. 그사이 2011년 10월2일 등교를 마지막으로 디아를 다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디아가 사라진 뒤 희망의 언덕 네팔 활동가인 키마 싱(23)이 몇 차례 주인집을 찾아갔다. 디아의 여러 증언으로 판단해볼 때 주인이 디아의 실종에 관련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집주인이 겨우 문을 연 건 디아를 찾을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는 희망의 언덕의 압력이 학교와 같은 카스트 사람들을 통해 전달된 지난해 12월 초였다. 나는 키마 싱 간사와 함께 주인집을 찾아갔다.

주인 명령 따라 낯선 이에게 넘겨

디아의 주인은 5층 빌딩에서 살았다. 카트만두에서 5층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재력가임을 의미한다. 여주인과 남자주인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마 남자아이와 바람나서 도망갔거나, 누군가 팔아먹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강하게 자신의 관련성을 부정했다. 이 부부는 자신들이 디아의 실종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경찰 보고서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디아를 상담했던 키마 싱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디아에게는 남자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은 이 사건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희망의 언덕 네팔 상근자인 싱에게 "계속 개입하면 너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 또한 돈을 원하고 그들은 이 일을 심각하게 처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자신의 힘을 은근히 과시했다.

희망의 언덕은 이런 위협 속에서도 경찰에게 계속 디아의 소재를 파악하도록 촉구하는 등 디아를 무사히 데려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월 초 디아의 소재를 알 수 있는 단서를 확인했다. 한 청년이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그는 디아를 카트만두의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가 시작되는 탄코트라는 동네로 데리고 가서 누군가에게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디아 주인과 1년 이상 함께 일한 사람이었다. 지난 2월7일 이 청년이 경찰에 한 진술에 따르면, 그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탄코트에서 자동차를 끌고 온 어떤 사람에게 디아를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 일로 청년은 주인에게서 5천루피(약 7만5천원)를 받았다. 그가 디아를 넘겨줄 때, 차 안에는 다른 소년 둘과 소녀 하나도 있었지만 자세히 보지는 못했단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주인은 다른 아이들의 매매에도 관련 있다고 추측된다. 주인은 청년에게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말하면 재미없을 거라고 협박도 했다. 청년은 이런 사실을 말하면서 "주인은 매우 위험한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디아를 넘겨받은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가 누구인지는 디아의 주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디아의 주인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지만,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확신할 수 없다. 주인은 경찰로부터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보고서를 받을 정도로 힘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네팔에서는 인신매매가 극성이다. 한 해 사라지는 인구가 1만7천 명 정도에 이른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다. 이들은 국경지대에서 많이 사라진다. 납치하거나 거짓말로 속여서 아이나 여성을 국경지대로 데려온 뒤, 인도로 인신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와 네팔 국경은 아직 여권 검사 없이 통과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경에서 밀수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노동·구타·성추행 등 고통만을 맛본 13살의 어린 소녀를 이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희망의 언덕은 되도록 이른 시일에 이 사건을 법원에 제소하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디아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디아를 이름 모를 남자에게 넘겨준 청년은 당시 디아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디아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에서 열이 났고, 다리를 다쳤다. 디아의 아픈 다리를 살펴보진 않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글 / 김요한 바보들꽃공동체 '희망의 언덕' 활동가 hyimang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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