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대전환 시점 왔다]방폐장 유치한 경주 - 거부한 부안 '다른 길' 그후

백승목·박용근 기자 2011. 4. 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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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동안 전북 부안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낳았던 방폐장(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은 마침내 2005년 11월 경북 경주에 세워지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예의 '지역발전'이란 명분과 수사가 뒤따랐다. 6년이 지난 지금 두 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방폐장을 거부한 부안은 그 때문에 낙후됐고, 이를 받아들인 경주는 발전했을까.

■ 받아들인 경주"방폐장 오면서 시끄러운 일뿐, 뭔 혜택 본 건지…"지원금·한수원 이전 등'이권' 놓고지역간 분열… 시설 안전성도 논란

"방폐장 오면서 시끄러븐 일은 많은데 뭔 혜택을 봤는지는 잘 모르겠심더."(박영호씨·50·경주시 동천동)

2003년 10월 방폐장 건설 예정지였던 위도로 해가 지고 있다. 부안에서 위도로 가는 길목, 격포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에 만선 깃발 대신 반핵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경북 경주시가 방폐장을 유치(2005년 11월)한 지 6년이 다가오지만 시민들은 지역발전이 이뤄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방폐장 시설과 유치 인센티브를 놓고 정부와 지자체, 지자체와 주민, 주민과 주민, 환경단체와 방폐장 사이의 갈등만 잇따라 불거졌다.

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은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사업 때문이다. 정부는 역사문화도시 조성, 천북 일반산업단지 조성, 경주~감포 국도 건설 등 경주시가 요청한 55건에 총 3조4350억원을 지원해 5~30년간 추진키로 했다. 그런데 국비지원액 2조5109억원 중 지금까지 자금 집행률은 26% 수준이다.

방폐장 특별지원금 3000억원의 사용처를 놓고 지자체와 의회, 주민 사이의 의견도 갈렸다. 필요한 곳이 먼저 사용하자는 쪽과 경주의 미래를 위해 신중히 용처를 결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뉜 것이다. 이 때문에 장학기금 100억원과 17개 도로 사업비 795억원 등 895억원만 집행했을 뿐, 나머지 2105억원은 금고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방폐장 유치 인센티브로 얻은 한수원 본사 이전(2014년)도 지역 구성원들을 갈라놨다. 한수원 본사 입지는 경주시가 방폐장 유치 이듬해인 2006년 11월 양북면 장항리 일원 15만7000여㎡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는 선거가 닥칠 때마다 입지 변경안이 거론되면서 주민들은 다툼을 벌였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최양식 경주시장도 지난해 말부터 "한수원 이전의 시너지효과를 위해서는 본사를 경주시내에 건립해야 한다"고 밝혀 양북면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김상왕 양북면원전반대대책위원장은 "양북면은 현재 건설 중인 신월성 1·2호기와 방폐장이 위치한 곳인 만큼 원전 관련시설의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양북면에 한수원이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북면과 함께 원전·방폐장 주변지역으로 분류되는 감포읍과 양남면 일부 주민들이 "경주시가 한수원 대신 산업단지 조성 등을 약속한 만큼 한수원 본사 입지 변경에 대해서도 검토해보자"고 주장하는 등 원전 주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방폐장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도 그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방폐장의 안전성을 끊임없이 홍보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은 "방폐장의 지하 침출수 때문에 방사성 폐기물이 외부로 누출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이 지난해 말 일부 반입된 데 대한 반발도 크다. 이상홍 경주환경련 간사는 "방폐장이 약한 지반 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완공시기가 30개월이나 지연돼 내년 말쯤이나 운영될 수 있는데도 폐기물을 먼저 반입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

한수원 본사 입지로 결정된 경주시 양북면 진입로 입구에 한수원 입지변경에 반발하는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 백승목 기자

■ 반대했던 부안"생명 가치 지켜낸 고향 자랑스러워… 찢긴 민심은 숙제""유치 안달하던 사람들 지금 뭐라 할지 궁금"6년째 군민축제 못열어

"부안에 산다는 게 자랑스럽소. 방폐장 유치에 안달났던 사람들이 시방 뭐라고 할까 모르겄소."(부안읍 김경수씨·53)

벌써 7년여 전이다. 2003년 전북 부안은 '민란지대'였다. 시골마을 담장에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반핵깃발도 내걸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방폐장 반대시위였다. 불을 댕긴 것은 정부였다. 어떻게든 방폐장 부지를 해결하려 했던 정부는 여론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군의회 동의 없이 군수가 일방적으로 방폐장 유치선언을 했다. 정부는 방폐장 부지 후보였던 위도에 3000억원의 유치포상금을 지원하겠다고 흘렸다. 전북도와 애향운동본부 등도 방폐장 유치만이 전북 발전을 이끌어낸다며 유치홍보전에 사활을 걸었다.

'핵폐기장 결사반대'로 응집된 민심은 각자의 생업을 내던지게 만들었다. 시골주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을 잡았다.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인구 6만명인 부안군에 경찰 8000여명이 상주할 정도였다. 주민 45명이 구속되고 121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주민과 전경 등 500여명이 부상했다.

돌파구는 주민들 스스로 찾아야 했다. 주민 간 찬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발적인 주민투표였다. 전체 군민의 72%인 5만2108명이 찬반투표에 참여했다. 그중 92%는 반대표를 던졌다. 부안사태는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의 주권행사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정부는 뒤늦게 잘못을 시인했다. 부안사태의 교훈을 얻고서야 주민동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 결국 방폐장은 주민투표를 거쳐 경주로 확정됐다.

부안사태는 국가정책 수립에서 주민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일깨워줬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갈라진 민심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화합을 다짐하는 군민의 날 축제는 6년간이나 열리지 못했다. 지금도 말을 섞지 않는 이웃이 있을 정도다.

정치인들도 심판대에 섰다. 방폐장 유치의 선봉장이었던 김종규 전 군수는 차기 선거에서 낙선했고 잇단 도전에 고배를 마셨다. 반면 반핵투쟁에 앞장섰던 이병학 전 군수와 김호수 현 군수는 낙승했다. 부안사태의 앙금이 아직도 민심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장은 "군민들은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큰 희생을 치렀고 아직까지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다"면서 "에너지 전환이 시대의 대세이고 부안은 옳았다는 사실이 7년이 흘러서야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

< 백승목·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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