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실험대상된 부산 한우

2010. 8. 1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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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제가 1944년 부산에서 위험천만한 실험을 했다고 밝힌 이는 당시 일본군 육군의 노보리토(登戶)연구소에서 세균무기를 직접 개발한 구바 노보루(久葉昇) 후지타(藤田)학원보건위생대학 전(前) 교수다.

오랫동안 이런 연구에 참여한 사실을 비밀로 간직해온 구바 전 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노보리토 연구소의 실체에 대한 증언이 이어지자 1990년 자신이 참여한 연구와 실험 사실을 적은 '구(舊) 육군 제9기술연구소(노보리토연구소) 제6연구반 연구 개요'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당시 구바 전 교수는 이 문서를 3부만 작성해 일본 방위청과 노보리토연구소의 실체를 폭로한 동료 연구원 등에게 건넸다. 이 문서에 실린 내용은 2003년에 출판된 '육군 노보리토 연구소' 등에 인용됐지만 당시만 해도 부산의 실험에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지역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 끝에 메이지대 이쿠타(生田) 캠퍼스 안에 있던 노보리토 연구소의 흔적이 복원돼 올해 4월 일반에 공개됐고, '육군 노보리토연구소의 진실'이라는 책이 지난달 28일 출판되면서 20년 만에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게 됐다.

문서에 따르면 1944년 5월 당시 노보리토연구소 직원과 폭발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실험단은 낙동강변 삼각주에 소 10마리를 3열로 배치한 뒤 폭파장치를 이용해 분말 독을 쏘아 올렸다.

분말 독은 북풍을 타고 소 전체를 커다란 망으로 포획하듯이 퍼져 나갔고, 소 10마리는 실험 후 3일째부터 전형적인 우역 증상을 보인 뒤 7일째를 전후해 모두 숨졌다.

우역은 시베리아를 통해 한국, 일본 등지로 퍼져 나간 전염병이다. 특히 한우에 발병률과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한국 초기 동물 백신의 연구는 우역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말할 정도다. 한국에서는 1931년에 발병 사실이 확인된 뒤로는 79년간 나타난 적이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제1종 법정 가축전염병 목록 맨 앞자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고, 반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일제는 소에 치명적인 질병을 미국에 퍼뜨리기로 하고, 무기를 개발해 식민지 조선에서 위험한 실험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역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식민지였기에 경험해야 했던 위험천만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1945년 종전 직후 이 같은 부끄러운 기록을 담은 노보리토연구소 관련 자료를 서둘러 폐기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연구소 부근 주민들이 보존 운동을 벌인 덕에 올 4월 메이지대 평화교육 노보리토연구소 자료관으로 거듭나 공개됐다.

보존운동을 주도적으로 벌인 와타나베 겐지(渡邊賢二.66) 자료관 고문은 "당시 일본군은 분말 독 실험이 일본 본토의 환경이나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은 우려하면서 식민지에서는 실험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셈"이라며 "그 같은 악행을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부끄러운 기록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노보리토연구소는 내년 3월께 부산 현지에서 구바씨가 작성한 문서를 근거로 실험 장소 확인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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