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남편 때문에 생기는 병 '부원병'

이동준 2016. 7. 3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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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 위해 샌드백이 된 남편들. (사진= 중국 인민일보 캡처)
2011년 일본에서 '부원병(夫源病)'이란 말이 처음 명명됐다. 의학박사 이시쿠라 후미노부(55·순환기 전문의)가 만든 말로 '남편이 원인이 돼 생기는 병'을 뜻한다.

이시쿠라씨는 남성갱년기를 진찰하던 중 아내의 표정을 보고 문제를 인식했다.
부원병을 앓는 아내들은 두통, 현기증, 우울증 등 다양한 병을 앓고 있었다.

▲ 남편 때문에 생기는 병.
부원병은 정년퇴직한 남편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생기는 병으로 보통 60대 이상 여성들에게서 발생한다.

원인은 천차만별이지만 이시쿠라씨는 "남편의 가부장적인 행동과 언행"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업주부로 살아온 여성들은 가족이 외출하면(직장, 학교, 출가 등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은퇴한 후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동안 알지 못한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대표적인 게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이시쿠라씨는 "'회사에서 부하직원 다루듯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고 한다. 소파에 앉아 시시콜콜한 것까지 관섭 하며 커피 타와라, 신문 어딨느냐, 밥 차려라 등등 직장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이런 갈등과 스트레스를 부원병이라고 했다. 한국말로는 '화병'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화병을 일으키는 대상이 남편이란 것이 차이다.
부원병 원인을 설명하는 일러스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아내에게 심부름시키고 있다. (사진= J프라임)
▲ 심할 경우 황혼이혼.
황혼의 나이에 이혼이란 쉽지 않은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부원병도 한몫한다.

부원병으로 시달리는 여성 A씨는 "아내는 집안일을 하지만 남편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힘들게 일할 때 느긋이 여유 부리는 모습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호소했다.
여성 B씨는 "남편의 말은 퉁명스럽기도 하지만 고압적"이라며 "대등한 관계가 아닌 아래로 보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여성 C씨는 "자상하고 온순한 줄로만 알았던 남편의 잔소리가 이렇게 많고 고통스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늙었으니'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 D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남편의 병으로 가세가 기울 정도가 됐다"며 "간호도 경제적으로도 힘들어 이혼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여성 A씨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수면으로 떠올랐다"며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거나 최후선택으로 이혼하는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부원병 원인을 설명하는 일러스트. 남편의 행동에 분노하는 아내의 모습. (사진= J프라임 캡처)
부원병 원인을 설명하는 일러스트. 아내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남편 (사진= J프라임 캡처)
▲ 문제를 인식 못 하는 게 문제다.
"갑자기 아내가 변했다"고 말한 남성 A씨. 그는 이시쿠라씨를 찾아 하소연했다.
A씨 부부의 고비는 자녀가 독립한 후 시작됐다. 자녀가 출가하자 부부만 남게 됐고 이런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서 A씨의 아내가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시쿠라씨는 "환경변화에 적응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남편마저 힘들게 하니 젊었을 때 참을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은 참기 힘든 고통이 된 것"이라며 "갑자기 변한 게 아니다. 남편들이 모를 뿐"이라고 말했다.
이시쿠라는 "내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아내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
이시쿠라씨는 "누군가 자신의 일상을 참견하고 지시하면 좋겠냐"고 되묻는다.
일부의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남성들이 알게 모르게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장 보러 가는 아내에게 "어디가, 언제 와, 무엇무엇 사와, 밥은?"이라고 묻는 것이다.

그는 남편이 △밖에서는 활발하지만 집에선 과묵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거나 △집안일은 입으로만 도우며 △아내와 아이를 키웠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또 △'고맙다, 미안하다'말 못하고 △아내의 행동을 확인하려 들거나 △취미가 적다면 아내가 부원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내는 △남편에게 '힘들다' 말하기 어려워하고 △꼼꼼한 성격에 가사는 완벽히 처리하며 △감정표현이 어색하고 어렵다. 또 △'좋은 아내, 좋은 엄마'라는 의식이 강하고 △남편의 체면이 걱정되며 △속앓이를 하는 편이라면 부원병을 앓기 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완벽한 아내도 완벽한 남편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부부간의 균형이 중요하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라고 말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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