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보기]세계최고의 고령국가 일본, '노인범죄'로 골머리

도쿄|윤희일 특파원 2016. 4. 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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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20일 오후 2시쯤 일본 효고(兵庫)현 가코가와(加古川)시 주택가에서 꽁초를 버리는 것에 대해 주의를 주는 초등학생을 폭행한 75세 노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10월 15일 도쿄(東京)도 세타가야(世田谷)구에서는 78세 노인이 찻집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가 거절 당하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다 체포됐다. 이바라기(茨城)현에서는 슈퍼마켓 등을 돌아다니면서 식료품 등 각종 상품을 몰래 훔쳐온 86세 할머니가 경찰에 넘겨졌다.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26%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고령국가’ 일본이 고령자들의 범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른바 ‘사고’를 치는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교도소의 고령화와 고령 재소자의 건강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자의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는 배경에는 가족 및 사회와의 단절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고’ 치는 노인 늘면서 교도소는 고령자로 가득=일본의 노인들이 범죄에 손을 대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일본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각종 범죄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65세 이상 고령자의 수는 1995년 1만1440명에서 2014년 4만7252명으로 무려 4.13배나 늘어났다.

이들 중 상당수가 유죄 판결을 받아 교도소로 들어가게 되면서 교도소는 고령자로 넘쳐나고 있다. 일본 법무성이 발표한 ‘2015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4년 교도소에 수감된 2만1866명 가운데 2283명(10.4%)이 65세 이상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자의 비율이 10%를 넘은 것은 1991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첫 통계를 낸 1991년 교도소에 수감된 고령자는 274명으로 전체의 1.3%에 불과했으나 이후 크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여성 재소자 중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교도소에 수감된 여성 가운데 16.4%가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는 2009년부터 이미 고령자의 비율이 10%를 넘어섰다.

건강한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고령자의 성범죄 관련 검거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강간으로 검거된 고령자의 수는 30년전에 비해 7.7배, 성추행 등으로 검거된 고령자의 수는 19.5배 증가했다.

■‘복지시설’로 변하는 교도소=고령자들은 출소 후 재범율이 높아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60세 이상 전과자 중 비슷한 범행을 6차례 이상 저지른 비율이 40%에 이른다는 통계가 최근 나왔다. 6차례 이상 같은 종류의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간 60세 이상 재소자는 1991년부터 2013년 사이 4.6배나 늘었다. 이들이 범죄를 되풀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식사와 잠자리가 해결되면서 무료로 치료도 받을 수 있는 교도소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상당수 고령자들이 출소 후 주거와 일거리를 찾지못한 채 범죄를 반복하다가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교도소가 일종의 ‘복지시설’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재소자의 치매를 막아라=교도소들마다 고령 재소자의 건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오이타(大分)현에 있는 오이타교도소는 휴대형 게임기를 활용해 고령 재소자들의 치매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게임기를 이용해 계산을 하거나 퀴즈를 풀면서 뇌를 단련시키는 이른바 ‘두뇌 트레이닝’을 통해 치매를 막겠다는 것이다. 도치기현 구로바네(黑羽)교도소는 고령 재소자들에게 학습서를 사용한 읽기·쓰기·계산 등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 역시 치매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일본 교정 당국은 60세 이상 재소자 가운데 치매가 의심되는 경우가 14%(약13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치기현에 있는 도치기교도소의 경우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하반신이 약한 60대 이상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건강 관리 운동’를 매월 2차례씩 실시하고 있다. 외부강사를 통한 재소자 건강지도를 실시하는 교도소는 이 교도소 이외에도 일본 전국에 14개나 있다.

일부 교도소는 고령 재소자를 배려한 시설을 설치하기도 한다. 가가와(香川)현 다카마쓰(高松)교도소와 히로시마(廣島)현 히로시마교도소 등은 고령 재소자들을 위해 난간을 설치하고 가파른 이동로를 평탄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고령 재소자가 늘어나면서 교도소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04년 약 32억엔(약 335억7600만원) 수준이던 일본 교도소의 의료비 무담액은 2015년 60억엔(약 629억5500만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주된 원인은 사회적 고립=범죄를 저지르는 고령자가 늘어나는 주된 이유로 ‘사회적 고립’이 꼽힌다. 특히 가족과의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외톨이 생활을 하는 고령자들이 절도·사기 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 경찰청과 경찰정책연구센터가 2012년 한 대학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령 절도범의 63.3%와 고령 사기범의 59.6%가 따로 생활하는 자녀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령자 중 자녀와 거의 접촉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2.6%에 불과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노인 문제 전문가인 신고 유키(新鄕由起)는 “고령 범죄자 중에는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 서툰 사람이나 마음에 큰 공백을 안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아주 높다”면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 끝난 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고령자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령자들의 에너지와 능력을 사회에서 계속 살려나갈 수 있도혹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도쿄|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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