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정권, 위안부 동원 강제성 뒤집으려 증언 녹취록 흘렸나

2013. 10. 3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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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계쏙] 위안부 역사 왜곡나선 일본

"우리가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땐 공개 거부한 문서들을 <산케이신문>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고노 담화를 흔들려는) 아베 정권의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리크(유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7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중의원 제2회관 제1회의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위안부 문제 해결 다함께 연대 네트워크'의 강연회에 강사로 나선 고바야시 히사토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사무국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고바야시가 강연한 주제는 위안부 동원이 이뤄질 당시 일본의 법률과 군의 규정을 통해 본 위안부의 강제성이다.

일본 사회에서 진행중인 '역사 수정' 움직임의 최전선은 위안부 문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침략에 정해진 정의가 없다"는 발언으로 큰 설화를 입은 뒤, 겉으론 경제 문제에 집중하며 역사 문제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한 공방은 여전히 치열하다. 9월에만도 <교도통신>이 6일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내용을 보도한 데 이어, <아사히신문>도 13~14일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발표하며 이 문제가 국제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고 인도네시아 정부에 여러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그러자 일본 보수를 대표하는 <산케이신문>은 16일치에서 고노 담화 작성의 근거가 된 한국인 위안부 여성 16명의 녹취록을 입수해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격을 시도했다.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떨어지니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쟁점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결국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이에 대해 고노 담화가 취한 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모아진다. <교도통신>이 일본군의 강제성이 직접 증명되는 인도네시아 포로수용소의 사례를 보도한 것이나 <산케이신문>이 할머니들의 증언에 트집을 잡아 고노 담화의 수정을 꾀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현실은 어떨까? 한국 사회에 위안부에 대한 일정 정도 '신화'가 있긴 하다. 위안부 문제 공론화·해결에 오랫동안 협력해 온 일본의 연구자·활동가들은 한국의 초기 위안부 운동이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별하지 못해 일정 부분 '피해의 신화'를 키운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1938년 국가총동원체제가 시작된 뒤 조선총독부의 관헌이 관계 법령에 따라 동원한 정신대를 위안부로 인식하고, 그것을 근거로 피해자의 수와 피해 실태를 추정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총독부가 12~14살 정도의 소녀를 직접 납치해 위안소에서 성노동을 시켰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그런 식의 강제성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있어도 극히 드문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왜 고노 담화를 통해 군의 직접 개입을 인정했을까? 일본 정부가 당시 기록들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그런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활동가 하나부사 도시오가 쓴 자료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과 국가의 강제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보면, 당시 일본 형법엔 사람을 약취·유괴해 외국으로 끌고 간 이들에겐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226조)이 있었고, 성매매를 위해 일본 여성을 해외로 내보내면 안 된다는 '해외매춘금지령'도 있었다. 실제로 1937년 3월 일본 대심원(현재 대법원)은 나가사키현의 한 여성을 속여 중국 상하이의 해군 위안소에 데리고 간 알선 업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일본 사회가 여성들을 속여 외국으로 데려가 성매매를 시키는 게 범죄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상황이 급변한다. 일본 육군은 1937년 9월 '야전주보(매점)규정'을 개정해 군대위안소를 설치할 수 있는 규정을 둔다. 이를 보면 "500명 이상의 부대에 위안소를 설치할 수 있고 그 관리자는 설치자인 부대장"(3조)이라고 돼 있고, "경영은 부대장의 인가를 받은 청부업자가 하고 청부인은 군속 대우를 하고 일정의 복장(군복)을 사용한다"(6조)는 규정도 있다. 이를 토대로 상하이·난징 등을 포함한 중지나(중국 중부) 방면군 사령부는 1937년 12월 위안소 설치를 결정했다.

군의 요청을 받은 민간업자들이 대대적인 여성 모집에 나섰다. 그러자 일본 경찰이 큰 혼란에 빠졌다. 군이 업자를 동원해 사실상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위안부를 모집하고 있다는)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각 현 경찰의 질의가 잇따르자 1938년 2월 내무성 경보국장은 '지나(중국) 도항 여성의 취급에 관한 건'이라는 하달 문서(통첩)를 보내 "실정에 맞는 조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협력을 요청했다.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이런 약취·유괴 행위가 조선 전체에서 이뤄졌으니 총독부의 경찰력이 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단속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사실상의 범죄 행위를 묵인·방조한 셈이다. 아울러 도항 허가 대상을 △현재 일본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21살 이상 여성이 △성병이 없고 △부모의 동의가 있으며 △본인이 직접 경찰서에서 도항 신청을 할 경우 △2년 동안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귀국시킨다는 것을 전제로 허가를 내줬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통달이 일본 국내에만 전달이 됐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하나부사는 "일본이 부녀 매매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할 당시 식민지는 제외한다는 규정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여성 모집이 시작된 뒤 통첩은 일본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통해 통첩이 전달되지 않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에는 10대 중후반의 나이에 "좋은 곳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이런 약취·유괴 행위가 조선 전체에서 이뤄졌으니 총독부의 경찰력이 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단속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범죄 행위를 묵인·방조한 셈이다.

결국 위안부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일본인들은 없다. 다만 '정부의 강제성'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두고 차이가 발생한다. 고노 담화는 이런 사실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안부를 모집한 주체는 '업자'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에 반한' 사례가 많았으며, 할머니들의 피해 증언을 받아들여 예외적으로 '관헌이 가담한 사례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를 위안부 동원 과정의 '광의의 강제성'이라 부를 수 있다.

이후 아베 총리는 1차 내각 때인 2007년 3월 "(일본 정부의 자료 가운데)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지시하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들어 각의 결정을 통해 고노 담화의 변경을 시도한다. 책임을 조금이라도 피해가려는 '한심한 결정'임엔 분명하나, 동원 과정에서 국가의 '협의의 강제성'과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부인했을 뿐 위안부 제도 자체에 대한 '전면 부정'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광의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도 철학적으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한국 정부도 법적으론 성매매를 금지하면서도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을 모아 2주에 한번씩 성병 검사를 시키고, 틈만 나면 '달러를 버는 애국자들'이라고 주입한 때가 있었다. 국가의 방치·묵인·조장이라는 점에선 위안부 여성들과 처지가 다를 게 없는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 한번쯤 되짚어 고민해 봐야 한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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