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섹스리스 세대, 70년대 '로망포르노'에 열광하다

2010. 1. 6. 15: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저예산 무기, 다양한 시도로 일 영화 밑거름

"현대인들, 사람과의 접촉 스토리에 굶주려"

1970~1980년대 일본을 풍미했던 로망포르노 영화가 부활하고 있다. 인간의 성적 욕망을 각종 스토리에 담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로망포르노 영화가 20여년만에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로망포르노 영화를 양산해온 영화사 '니카츠'가 3일 로망포르노의 첫 작품으로 꼽히는 <아파트 단지의 유부녀 대낮의 정사>와 <뒤에서 앞으로> 등 2편을 22년만에 리메이크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일본 소극장에서는 4~5년 전부터 로망포르노 영화의 거장들의 회고전이 열려 20~30대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로망포르노라는 영화 장르가 등장한 것은 1971년. 당시 일본 영화계가 침체에 빠지면서 니카츠가 살아남기 위해 사운을 걸고 성인용 영화를 양산했다. 1988년까지 17년간 1133편이 제작됐다. 그러나 훨씬 적나라한 성인용 비디오가 등장하면서 로망포르노 영화의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어 제작도 중단됐다. 로망포르노는 1~2주에 한편 꼴로 제작되는 저예산 영화이지만 나중에 걸작을 만든 유명 영화감독을 많이 배출했다.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오쿠리비토(보내는 사람)>의 다키다 요지로(55) 감독은 1985년 <분홍빛 신체검사>라는 핑크영화를 만들었다.

재일동포 감독으로 <달은 어디로 뜨는가>(1993년) <피와 뼈>(2004년)를 만든 최양일(61) 감독은 1983년 <성적 범죄>를 만들었으며, 2003년 몬트리올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을 받은 히가시 요이치(76)는 40대에 <러브레터>라는 로망포르노 영화를 감독했다. 일본의 영화잡지 <키네마준보>의 시대별 일본 영화 베스트 10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가족게임>(1983년)을 만든 모리타 요시미츠(60)도 이전에 핑크영화를 만들었다.

1970년 초반 동료학생 14명을 살해한 연합적군사건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아사마산장에의 길>(2008년)로 주목을 받은 정치영화의 거장 와카마쓰 고지(74) 감독도 젊은 시절 핑크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니카츠는 평균 10분에 한번 꼴로 벌거벗은 배우가 나오면 내용은 감독에게 완전히 일임하는 방침이어서 오히려 신선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젊은 감독과 배우들에게는 로망포르노 영화는 재능을 닦는 수련의 장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아파트 단지의 유부녀 대낮의 정사>를 리메이크하는 나카하라 순 (59)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니카츠의 로망포르노는 영화의 학교였다. 로망포르노는 새로운 표현양식을 모색하는 좋은 재료였다"고 말했다.

로망포르노 영화의 상당수는 눈요기를 노린 값싼 영화였지만, 게중에는 여성의 성적 욕망과 심리적 갈등을 그린 걸작도 많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성예찬을 기본노선으로 여성의 마음을 진지하게 그린 작품도 나왔다.

1972년 일본 경시청은 <사랑의 사냥꾼> 등 작품의 제작자와 감독 등을 외설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인간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상물이 넘쳐나는 요즘 일본의 시점에서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성을 둘러싼 옛날의 가치관이 남아 있었다.

영화 평론가인 무라야마 교이치로는 최근 로망포르노 영화가 다시 주목을 받는 까닭에 대해 <도쿄신문>과 인터뷰에서 "요즘 사람들은 사람과의 접촉을 체감하는 스토리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야기가 진짜는 자기 주변에 널려있는데도, 사람들은 좀처럼 실감하지 못해 생생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며 한류영화와 휴대전화 소설 붐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섹스리스 시대로 불리는 요즈음, 남과 여의 인간관계의 근본에 있는 성애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잘 몰라 (로망포르노에)끌리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