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검색
뉴스

크게작게메일로보내기인쇄하기스크랩하기고객센터 문의하기


  • 굴림
  • 돋음
  • 바탕
  • 맑은고딕

윈도 Vista 또는 윈도우에 폰트가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냉전의 벽 허물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다

‘통일독일’ 유럽통합 가속화 세계질서 재편
연방공화국 탄생 60돌 ‘겹경사’ 베를린 활기

경향신문 | 설원태 선임기자 | 입력 2009.11.05 18:28

 




"마우어팔(Mauerfall)" 독일인들은 20년 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사건을 이렇게 부른다. '마우어(Mauer)'는 '벽' '담'을 의미하고 '팔(Fall)'은 '쓰러짐' '붕괴'를 의미한다. 이 '장벽 붕괴'가 급작스럽게 발생한 지 이제 20년을 맞고 있다. 독일인들에게, 그리고 한국인과 지구촌의 모든 사람에게 11월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로 기억돼 있다.

1989년 11월9일 동독인들과 서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을 눈앞에 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다수의 사람은 그때 과거 28년 동안 인간의 접근을 막았던 베를린 장벽에 올라갔다. 독일인들은 베를린 장벽 위에서 춤을 추었고, 장벽의 벽돌을 떼어내 기념물로 삼기도 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세계인의 눈길을 이곳 베를린으로 집중시켰다. 당시 신문들은 "동 베를린인들이 한밤중에 쿠르퓌르스텐담 위에서 춤추고 있다" "베를린은 다시 (통합된) 베를린이 됐다" "독일은 환희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우리는 손을 뻗어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 등의 제목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의 감격을 전했다.

1989년 11월9일 동독은 28년 만에 서베를린과 서독으로 통하는 국경을 개방했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많은 주민이 베를린 장벽위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장벽 붕괴 20년, 그 의미는
2009년은 독일인들에게 2중의 의미를 갖는다. 독일연방공화국 탄생 6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60년 전인 49년 5월23일 독일인들은 그들의 헌법인 기본법(그룬트게제츠·Grundgesetz)을 공표함으로써 독일연방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독일의 최근 역사에서 2차 대전 후 경제 기적에서부터 89년 냉전종식까지는 역사적 대전환의 시기였다. 이 기간 중 신생 독일연방공화국은 서방의 민주주의를 도입해 뿌리를 내리게 했고, 독일인들은 정치와 사회를 지속적으로 바꾸어 갔다. 이 시기 빌리 브란트는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슬로건 아래 동유럽 개방을 유도했다. 결국 동독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소련 및 동유럽의 개혁운동에 힘입어 철의 장막은 종식됐다.

장벽이 붕괴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 베를린은 활력 넘치는 통일 독일의 새로운 수도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베를린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장벽은 이제 흔적만 남아 있다. 역사가 남긴 흔적을 굳이 보고 싶다면 베를린의 '미테' 구역에서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또한 과거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자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베를린 장벽의 길'을 걸어볼 수도 있다. 독일의 기본법은 서문에서 "통합된 유럽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 20년 전 그날로 돌아가면
20년 전 11월9일 저녁 장벽 붕괴의 상황을 다시 재현해 보자. 동독의 귄터 샤보브스키 정치국원은 이날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국은 (서독으로 가는) 여행 제한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이것은 그가 정치국의 결정을 잘못 이해한 결과였다. 하지만 발표 직후 수천명의 동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고, 국경 경비대원들은 분명한 지시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으로 통하는 여러 검문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런 식으로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열렸고, 동·서독 분단은 드디어 종식됐다.

그렇다면 단순한 인간적 실수로 인해 굳건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까. 베를린 장벽 붕괴가 있기 몇 주 전부터 사실 다수의 동독인은 헝가리와 체코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했다. 장벽 붕괴 두 달 전인 89년 9월 동독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키르헤 앞에서는 시민들이 운집해 동독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을 표출했다. 이때쯤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해 12월 동독 시민들은 정치의 민주화를 요구했고, 점점 더 많은 동독인은 "서독과 통합하라"면서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동독인들은 90년 3월18일 국민투표를 통해 서독과의 신속한 통일을 지지했다. 이어 90년 9월 동·서독과 4강국은 합의(2+4 협정) 과정을 거쳐 독일인들의 통일 희망은 관계국들의 지지도 얻었다. 마침내 통일 독일은 99년 연방의회와 연방정부를 독일 서부의 본에서 동부에 위치한 베를린으로 옮겨 명실상부한 통일을 실현했다.

# 통일 독일 무엇을 남겼나
대사건 '독일 통일'은 세계화의 흐름을 타면서 동시에 세계적 발전과 변화를 이끌었다. 독일은 2000년 하노버에서 세계박람회를 열었고, 2006년 월드컵 대회를 개최해 세계인의 이목을 독일로 끌어들였다. 유럽연합은 2004년과 2007년의 결정을 통해 회원국을 12개국에서 27개국으로 크게 늘렸다. 연방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어젠다 2010'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복지제도의 개선과 실업문제 해결을 추진했다. 2005년 11월 독일에서는 동독 출신의 정치인 앙겔라 메르켈이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총리가 됐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가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됐다. 메르켈은 최근 선거 승리를 통해 연임에 성공했다.

요시카 피셔 전 독일 부총리 겸 외무장관(재임 98~2005·녹색당원)은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칼럼을 통해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냉전체제의 붕괴뿐만 아니라 세계화라는 새로운 흐름의 시작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피셔 전 장관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수혜자로 단연 중국과 인도를 꼽았다. 피셔는 "이 두 나라가 점차 세계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속도를 결정하고 있다. G8은 이제 G20로 대체됐고, G20의 근간은 G2(미국과 중국)에 의해 좌우되는 새로운 세계질서"라고 말했다.

베를린 장벽의 무너짐은 동·서독 통합, 유럽 통합, 나아가 세계화 추세를 가속화하고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근원적 동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20년 전 장벽의 벽돌을 집어들던 독일인들도 독일 통일이 이런 범위의 영향력을 끼칠 줄은 상상도 못했을지 모른다.

< 설원태 선임기자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