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전 '시민 학살'도 책임지는 영국
1972년 1월30일 일요일. 영국 북아일랜드 도시 데리에서 시민 수만명이 거리로 나섰다. 영국군이 북아일랜드 독립투쟁을 벌인 인사들을 재판 없이 억류하고 있는 데 대한 항의였다.
가톨릭교도가 많이 사는 데리는 중앙정부로부터 도로나 주택 인프라, 교육시설, 선거제도 등 여러 면에서 차별받아왔고, 영국에서 떨어져나와 아일랜드에 귀속돼야 한다는 분리주의자들의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시의회 쪽으로 행진하다 바리케이드에 막힌 이들이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시위대는 모두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오후 4시쯤 공수부대가 발포를 시작하며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총에 맞아 쓰러지고 장갑차에 치인 시민들이 속출했다. 항복의 표시로 흰 손수건을 흔들거나 쏘지 말라고 애원하다 사살된 사람도 있었다. 30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13명이 즉사했고 몇 달 뒤 부상자 한 명이 병상에서 숨졌다. 사망자 절반은 10대였다. 영국 정부는 사상자 일부가 무기와 폭발물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위대가 먼저 공격해 군이 총을 쐈다고 주장,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 43년 만에 영국이 책임자 처벌에 나섰다. 북아일랜드 경찰은 당시 민간인에게 발포한 전직 군인(66)을 10일 체포해 살인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J일병’이라고만 알려진 이 용의자는 시위대 여러 명을 사살한 당사자라고 텔레그래프 등이 전했다.
‘피의 일요일’ 관련자가 체포된 것은 2012년 북아일랜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 처음이다.
2010년 영국 정부는 12년간의 조사 끝에 발표한 ‘새빌 보고서’를 통해 시위대가 군을 도발하거나 위협하지 않았으며, 군이 아무 경고 없이 총을 쐈다는 사실을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에게 공식 사죄했다.
경찰은 새빌 보고서의 결론에 따라 재수사를 해왔다. J일병의 총격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윌리엄 내시(당시 19세)의 누나 케이트 내시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며 긍정적인 일”이라고 BBC에 말했다. 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도 “정의를 위한 긴 투쟁의 또 다른 한 걸음”이라며 환영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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