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배를 지킨 선장이 참사 막았다

박진영 입력 2014. 12. 29. 22:39 수정 2014. 12. 3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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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伊여객선 구조 종료

"아버지는 승객과 승무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분이기에 자랑스럽습니다."

불길에 휩싸인 이탈리아 여객선 '노르만 애틀랜틱'호의 선장인 아르길리오 지아코마치(62·사진)의 딸 줄리아가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선장이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은 수백 년 된 해양 전통이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오후 "여객선 승객 구조가 완결됐다"면서 "선장과 승무원 4명만이 선박 예인 작업을 돕기 위해 배에 남아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승객 구조 작업은 사고 발생 약 36시간 만에 종료됐다. 베테랑 선장인 지아코마치는 이날 오후 2시50분쯤 이탈리아 해군과 함께 배를 예인선에 연결한 다음 배에서 마지막으로 내렸다.

AFP통신은 "지아코마치는 코스타콩코르디아호 선장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며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 프란체스코 스케티노(59) 당시 코스타콩코르디아호 선장은 배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자 배를 버리고 탈출해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고로 최소 7명이 숨졌으며 여객선에서 432명이 구조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사망자 중 그리스인 한 명은 아내와 함께 구명정으로 뛰어내리다 변을 당했다. 나머지 6명은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탑승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렌치 총리는 구조 완료를 발표하기 전 "불법 이민자들이 있어 애초 탑승객 명단보다 구조해야 할 인원이 60여명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그리스 당국과 함께 구조 작업을 벌인 이탈리아 해군은 탑승자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의료진을 배에 파견했다. 모두가 다급한 상황임에도 승객들은 약자를 배려했다. 대피령 직후 여성과 어린이들을 먼저 대피시켰다. 특히 인근을 지나던 상선 10척은 노르만 애틀랜틱호를 에워 싸 거센 파도를 막았다. 이 때문에 배가 침몰하지 않아 대형 참사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선들은 초기 구조 작업에도 나서 80여명을 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노르만 애틀랜틱호는 승객 422명과 승무원 56명을 태우고 그리스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향하던 중 전날 오전 4시30분쯤 차량 적재 칸에서 수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선박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직후 이탈리아와 그리스 재난당국은 헬기 수 대와 예인선 2척, 군용기 1대, 인근 어선 10척 등을 급파했다. 하지만 시속 100㎞에 달하는 강풍과 높은 파도 등으로 한때 구조 작업이 난항을 겪었다.

28일(현지시간) 아드리아해 해상에서 화재가 난 이탈리아 국적 여객선 '노르만 애틀랜틱'호의 탑승자가 이탈리아 해군 소속 헬기와 구조대원에 의해 구조되고 있다.이탈리아 해군 제공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유럽해양안전국은 28일 "노르만 애틀랜틱호는 지난 19일 그리스 파트라스 항만 당국의 정기 안전점검을 받았다"며 "당시 방화문과 비상등, 비상 배터리, 방수 상태 등 6가지 분야에서 미흡 판정을 받았지만 출항을 막을 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탈리아 검찰은 29일 과실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번 사고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 생존자는 "승무원들이 비상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며 "그들은 어떻게 대피시켜야 하는지 모르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구명정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한 대만 바다에 펼쳐졌으며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하려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탑승자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또 다른 생존자는 AFP통신에 "배에 불길이 번지자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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