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지제도' 참패 아니다

입력 2006. 9. 19. 23:16 수정 2006. 9. 1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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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민당은 1932년 이후 세계 최장기 집권 기간인 65년 동안 스웨덴에 복지제도를 구축했다. 1994년 이후로 봐도 12년 동안 스웨덴을 맡았다. 그런 사민당이 총선에서 패했다. 이를 두고 유로사민주의는 끝났는가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민주의의 패배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우선 우익정당에 대한 안일한 대처가 원인으로 꼽힌다. 신온건당(옛보수당), 국민당, 중앙당, 그리고 기독민주당 등 네 우익정당들은 2년 전부터 꾸준하게 집권을 위한 구호 '스웨덴을 위한 연합'을 앞세워 유권자를 공략했다. 이에 대해 사민당은 우익정당들의 공조체제가 정책공조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조율하지 못하고 깨질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런 사민당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익연합은 총선에서 실업·주택·가족·에너지정책 등의 굵직굵직한 내용을 조율된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사민당은 이런 중요 이슈를 이들에게 선점당하게 된 것이다.

사민당 지지층 노조 분열

둘째는 경제성장에 대한 과신이다. 사민당은 최근 유럽국 가운데 가장 높은 4%라는 경제성장률을 이끌었다. 이는 사민당 정권에 국민들이 자신들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오류에 빠뜨리게 했다. 실업재취업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교육생 특히 청소년 실업까지 포함하면 실업률이 20%까지 이른다는 우익정당들의 지적을 단순히 실업보험금 인상이란 잘못된 정책으로 대응했다. 국민들이 바라는 일자리 창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이번 총선은 이런 점에서 경제가 좋으면 집권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통념을 깬 선거이기도 했다. 실업대책, 특히 청소년 실업에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선거패배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민당의 지지층인 노조의 분열도 또다른 패배 요인이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노조연맹 회원의 55%만이 사민당을 지지했다. 스웨덴의 80%에 이르는 노조 가입률을 고려할 때 전통적 사민당 지지층의 이탈은 가장 큰 패인이다. 사민당이 1932년 이후 우익정당들한테 처음 패배를 당했을 때도 노조회원의 60% 정도만이 사민당을 지지했다.

장기집권 비효율 심판받아

총리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민당 총리는 유럽국가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004년 12월의 인도양 지진해일 대재앙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여기에 총리의 눈치만 보는 외교부의 비효율적인 대처, 중앙통제적인 사민주의적 정치에 대한 혐오도 한몫했다.

이번 총선은 스웨덴 국민이 사민당의 예란 페르손을 심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2년 동안의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항상 보수당의 프레드릭 라인펠트에게 뒤졌다. 차기 총리감에 대한 비교조사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 2003년 9월11일 안나 린드 당시 외무장관이 피살됐을 때 그가 '린드 장관을 차기 후계자로 생각했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 권력에서 손을 놓는다'는 인상을 대중들에게 심어준 것도 실책으로 꼽힌다. 그의 당시 발언은 권력누수와 사민당 내부의 권력투쟁이 불거지게 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이렇듯 사민당 장기집권과 그 정치체제의 비효율성, 정치인 페르손을 심판한 성격이 크다. 스웨덴 복지제도 실패를 심판했다거나 국민들이 사민주의에 식상한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판단해선 안 된다.

이번 선거 결과를 확대해석해서 사민주의의 대참패 또는 스웨덴 복지제도에 내린 사형선고와 같다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스웨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최연혁

스웨덴 남스톡홀름 대학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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