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일본은 왜 대재앙 앞에 침착할 수 있을까

2011. 3. 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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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정치부 김주명 기자]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 주] 오늘은 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얘기를 해보려한다. 이번 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인 가장 먼저 자연의 엄청난 위력을 떠올린다. 또 하나는 핵에 대한 공포. 평화적 핵 이용이라고는 하지만 위험에 노출됐을 경우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갖게 된다.

이 두가지는 다른 어떤 재난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본 대지진에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대재앙 앞에서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시민의식 질서의식, 절제된 슬픔과 침착함이다. 대재난을 대하는 일본국민들의 태도는 다른 어떤 나라의 지진이나 재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놀랄만한 모습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본은 왜 대재앙 앞에 침착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얘기해보려 한다.

▶대지진 피해지역에서 차분하게 상점에 줄을 서서 물건을 사고 약탈이 한건도 없었다는 점은 참으로 놀라웠다.

= 엄청난 자연의 재앙 속에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만 때로 약탈과 혼란이 나타나는 것을 흔히 봐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에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재앙을 맞았으면서도 놀랄 정도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진 피해지역의 편의점이나 쇼핑센터에는 지진 이후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사재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내심을 갖고 몇 시간씩 줄을 서고 또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기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은 공급이 끊긴 물과 식료품 등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면서도 불평을 터뜨리는 이들을 보기 어려웠다.

구호 물자의 지원도 질서 정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로 먼저 받겠다고 몰려드는 모습도 없고 또 차례를 지켜 받아갈 때도 한사람이 꼭 하나씩만 받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취재기자들은 입을 모은다.

주유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일부 영업을 하는 주유소에는 몇 시간씩 차량들이 줄을 서지만 끼어들기도 찾아볼 수 없고 제한 판매만 한다는 이유로 종업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같은 차분한 대응이 대지진 이후 찾아오는 혼란과 공포의 상승작용과 이로 인한 무정부 상태를 막아 정부의 위기관리 대응조치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언론의 인터뷰를 보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절규나 통곡을 하지 않고 속으로 슬픔을 삭이는 모습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지진 발생 직후 일본에서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은 수만명의 사상자가 예상되는 이번 대지진 앞에서 울부짖거나 눈물을 쏟는 일본인들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이 폐허로 변한 상황에서 왜 슬픔과 좌절이 없겠나마는 그 감정의 표현방식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엄청난 감정의 절제를 통해 자신들의 슬픔과 좌절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모습이다.

▶전력부족때문에 14일부터 계획절전이 실시됐는데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으로 오히려 전력이 남았다고 하는데?

= 이번 대지진으로 원전과 화력발전소 등이 파괴되면서 전력 부족 현상이 심각해져 14일부터 계획정전이 실시됐다. 수도 도쿄에서 계획정전이 실시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야시마 작전'이라고 한다. 안노 히데아키가 제작한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전 일본의 전력을 끌어모아 사도 라미에르를 무너뜨린 작전에서 따온 것이다.

계획정전 계획을 둘러싸고 혼란이 있었고 전력회사의 우왕좌왕하는 대처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도 있지만 일본인들은 자발적인 절전으로 위기를 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등을 하고 직장에서도 소등과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는 등 절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한 시민은 한 명 한 명이 조금이라도 배려하면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의 한 상점에는 '피해가 막심한 동북지역에 상품 공급을 최우선으로 하기로 했고, 절전을 위해 간판과 점포 내부의 상당수 전등을 소등하기로 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같은 시민들의 자발적 절전으로 계획정전의 규모와 시간이 축소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하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지만 불편에 대해 정부와 전력회사를 탓하기보다는 정부 정책과 지침을 충실히 따르며 자발적인 협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본언론의 재난에 대한 보도도 우리 언론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지진 발생 직후부터 계속 재난방송을 하고 있는 NHK는 사망자 유족의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시신 수습 장면도 멀리서 카메라로 잡는다.

신문들은 참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자극적인 사진을 거의 쓰지 않는다. 비탄에 빠진 시민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방송 앵커들은 거의 흥분하지 않고 아주 차분하게 상황을 전파한다.

일본 언론에서는 이번 재난의 사상자 수를 거의 공식 발표를 따라가며 보도한다. 우리의 경우 공식 발표가 나기도 전에 예상 사상자 수를 예측해 보도하고 때로는 경쟁적으로 숫자 부풀리기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외신들도 '인류정신의 진화를 보여주었다'는 찬사와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지 않나?

= 대재난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일본 국민에 대한 외신의 찬사가 이어진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자 칼럼에서 "인류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일본이 보여줬다.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일본의 철저한 대응과 국민의 침착성을 격찬했다.

지난 2008년 쓰촨성 대지진을 경험했던 중국에서도 일본의 침착하고 질서있는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일본에서 유학중인 한 중국학생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낸 기고에서 "일본이라는 국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지진을 통해 일본인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건물의 설계, 정확한 보도, 질서있는 국민, 대재난인데도 불을 지르고 도둑질 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세계의 종말이 정말 있다면 이런 모습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베이징 청년보는 이날 "시민들은 차가 지나가는 중간 통로를 자동차들에게 양보하고 양쪽 길로 질서 있게 대피했다.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가는 교사는 전원을 끄고 문을 닫았으며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줄을 섰다"고 현장 모습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일본 르포 기사에서 "열차 승객들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극단적일 정도로 침착했던 일본인들"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이 이렇게 침착하게 재난에 맞설 수 있는 것일까?

= 우선 어릴 때부터 상시적으로 꾸준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것이 위기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지진과 같은 재난에 대비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실시된다. 지진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에 지진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교육이 습성화돼있기 때문에 위기 속에서 침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진 설계 뿐 아니라 내진 교육이 생활화돼있는 것이다.

일본 민주당 중의원 차수정 동아시아정책보좌관은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문화의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아왔기 때문에 재난 상황 속에서도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을 자제하고 나아가 남을 배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교육을 받으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도록 교육받아왔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자신이 소속된 가족이나 지역사회에서 튀면 손해를 본다는 경험과 교육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차수정 보좌관은 또 도쿄에는 지금 매장마다 물건이 동이 났고 사재기가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 다만 줄을 서서 물건을 산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줄을 서서 혼란스럽지 않게 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도 손해보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안다. 질서를 벗어나면 이 일이 끝난 뒤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다. 결국은 자신에게 손해라는 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오랜 역사적인 전통 측면에서 분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 광주과기대 김용덕 석좌교수는 일본 특유의 오랜 봉건체제를 거치면서 질서를 어기면 일본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독특한 사회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말한다.

봉건체제는 신분질서가 서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일본의 봉건체제는 신분질서가 강해 무사는 무사, 상인이면 상인, 농민이면 농민으로 대대로 살아가고 그 신분에 맞게 일을 하고 가업을 이어가는 오랜 전통이 형성돼 있다.

한림대학교 남기학 교수도 "역사 문화적으로 개인이 나서기보다는 전체를 의식하면서 구성원으로 위치를 잘 수행하는 습관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는 일본 특유의 '나카마 의식'이라는 집단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나카마라는 것은 동료집단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같은 나카마에서는 뛰어난 의리를 발휘하고 배려한다. 엄청난 재난을 맞으면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거대한 공동체이자 나카마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같은 동료에 대한 절대적인 의리와 배려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나카마 의식의 경우 비 나카마에대해서는 때로는 집단적인 따돌림이나 폭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분석이 이번 재난에 대한 일본인들의 성숙한 태도를 폄하하는 것이어서는 안되지만 이번 대지진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한 대응은 어릴 때부터 실시되는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교육과 재난에 대비한 꾸준한 교육과 훈련, 여기에 오랜 역사적 전통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다.jm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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