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사찰 탐방>-④남화선사·국은사(종합)

2007. 3. 1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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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시원을 연 육조혜능

(광저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육조스님 등신불을 보면 이번 중국 선종사찰 순례여행은 끝납니다."

광저우(廣州)에서 북쪽으로 4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가면 광둥(廣東)성 제2의 도시인 샤오관(韶關)에 이른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20km쯤 떨어진 곳에 육조 혜능(六祖 慧能 638-713) 스님이 30년간 법을 펼친 남화선사(南華禪寺)가 자리한다. 이번 탐방길에 동행한 고우스님은 샤오관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남화선사를 방문하는 것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옛 이름이 보림사(寶林寺)인 이 사찰 입구에는 '조계(曹溪)'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조(曹)씨가 많이 살던 마을 앞 개울이란 뜻이다. 사찰 뒤편 산 이름도 조계산이다. 한국불교 주류 종단인 조계종 또한 그 이름이 이에서 비롯됐으니 이곳이야말로 한국선종의 시원(始原)이자 고향이나 다름없다.

'동오제일보찰(東奧第一寶刹) 남종불이법문(南宗不二法門)'이라는 정문 편액이 알려주듯 남종선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평일인데도 향사르기를 하며 절을 하는 중국 참배객으로 붐볐다.

이곳 조전(祖殿)에는 좌선한 채 열반한 모습 그대로 보존된 혜능스님의 진신상인 등신불이 봉안돼 있다. 원래는 대웅전 뒤편 5층 전탑에 있던 것을 옮겨 화려한 좌대 위의 유리관 속에 모셨다.

진신상은 옻칠 때문에 얼굴이 새까만 점을 제외하고는 1천300년 동안 변치않은 모습을 유지한다. 납작한 코에 홀쪽한 볼, 쇠약해 보이는 몸을 약간 구부린 채 앉은 혜능스님이 왜소하고 못생겼다는 속설이 크게 틀리지 않은 듯하다.

광둥성 신싱(新興)현에서 태어난 혜능은 어려서 부친을 잃은 데다 천대받던 소수민족 출신인 홀어머니를 모시며 땔나무를 팔아 연명하던 가난한 나무꾼 소년이었다. 어느 날 손님이 '금강경'을 읽는 장면을 보고는 마음이 밝아져 황메이(黃梅)에 있던 오조(五祖) 홍인스님을 찾아가 출가의 뜻을 밝혔다.

이 때 홍인스님이 "너는 영남사람이고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라고 묻자 혜능은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으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혜능은 이후 절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다가 마침내 홍인스님의 제자가 되어 '금강경' 강론을 듣고 단번에 깨우침으로써 그날 밤으로 법을 전수받아 선종의 육조(六祖)가 되었다. 스승에게서 밤중에 전법의 표시인 의발(衣鉢)을 받고 시기하는 자들을 피해 남쪽으로 갔던 혜능선사는 수년간 사냥꾼 무리에 숨어지내다가 조계(曹溪) 보림사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혜능선사는 중국 선종의 진정한 창립자로 불린다. 그의 제자들에 의해 중국불교는 인도적인 영향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샤오관(韶關) 시장골목에 있는 대감사(大鑑寺)에서 혜능선사가 강론한 니용을 엮은 '육조단경(六祖壇經)'은 조사(祖師)의 어록 가운데 유일하게 '경(經)'으로 불리니 중국 선종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짐작할 만 하다.

남화선사에는 혜능선사 외에도 명대(明代) 단전(丹田)화상과 덕천(德淸)화상 진신상이 봉안돼 있다. 중국 근대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허운(虛雲)선사의 사리탑도 세워져 있다. 스님 200여 명이 머무는 이 절은 지금도 선종 사찰의 면모를 유지한다.

남화선사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류우엔(乳源)자치구에는 선종 5가7종의 하나인 운문종(雲門宗)의 본산인 운문사가 있다. 당나라 운문 문언(雲門 文偃·864-949) 선사가 30년간 주석했던 곳이다. 1982년 중건한 사찰로 이곳 강원에는 200여명이 머물고 있다. 순례단이 방문했을 때 어린 사미승들이 승복을 입은 채 농구를 즐기고 있었다. 사찰 근처에는 거대한 7층 보탑의 불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샤오관에서 다시 광저우로 남하해 거기서 서쪽을 향해 버스로 3시간 가량 이동하면 혜능선사의 고향인 신싱(新興)현에 이른다. 그의 생가터에 세워진 국은사(國恩寺)는 혜능선사가 열반한 곳이다.

국은사에는 혜능선사가 사용했던 유물 등이 전시 중이며, 당대(唐代) 유종원과 왕유가 글을 쓴 비석이 입구에 있다. 사찰 뒤편에는 부친 노씨(盧氏)와 어머니 이씨(李氏)의 합장묘가 조성돼 있다.

혜능선사는 이곳에서 "오직 자신의 본심을 알고 자신의 본성을 잘 보면 움직임도 고요함도 없으며, 생도 사도 없고, 가고 오는 일도 없으며 옳고 그름도 없고, 머무름도 가는 것도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남기고 저녁 산책길에 뒷산 바위 위에서 쉬는 것처럼 앉았다가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우스님은 "육조스님이 설법 중에 '너희들이 서방정토와 극락세계를 보고싶으냐. 이 자리에서 보여주겠다'고 하자, 그 자리에 있던 서주 자사가 '보여주십시오'라고 말하자 '봐라'라고 했다"면서 "육조스님의 생가터이자 열반한 곳인 국은사의 이름에 사용된 '국(國)'은 서방정토이자 극락세계를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혜능선사가 자신의 몸을 '서방정토'라면서 "보이면 더 이상 법문을 들으러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 대목은 마치 예수가 '야곱의 우물'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안다"고 말하자 "내가 그다"라고 대답한 것을 연상케 한다.

광저우 시내에는 혜능선사의 삭발 수계처인 광효사(光孝寺)가 있다. 이곳에서는 불교계에 위대한 인물이 날 것을 예언하며 혜능대사가 수계를 받기 170여년 전에 심었다는 거대한 보리수, 혜능대사가 삭발한 머리칼을 봉안한 탑, 처음엔 7층이었다가 벼락을 맞아 3층만 남아 있는 철제탑 등을 볼 수 있다.

고우스님은 "혜능스님의 '육조단경'은 일관되게 '지혜로서 관조하라'고 가르친다"면서 "지혜가 없는 보시는 선행일 뿐이며 지혜가 없을 경우 계율, 인욕, 정진도 모두 진정한 수행의 방편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혜는 구름이 걷혀서 해가 비치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무아(無我)를 통해 공(空)에 이를 때 찾아온다"면서 "그 공(空)은 마치 세탁기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본질적인 것 이외의 더러운 때를 없앰으로써 차별심에서 비롯되는 갈등, 대립, 투쟁에서 벗어나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지혜를 주므로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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