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대표 고속철, 중국밖 1m도 못 나가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2016. 10.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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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新실크로드 3주년 현주소 5개국 연결 야심찬 프로젝트인 쿤밍~싱가포르 3000km 고속철.. 태국과 차관 금리 문제로 막혀 "자칫 中에 경제주권 넘어갈까 동남아국이 유럽보다 더 경계"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철도.'

오는 11월 태국 정부의 한 고속철 노선 입찰 공고를 앞두고 요즘 태국에선 이 같은 조롱이 나온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새로 공사가 시작될 철로 구간이 3.5㎞에 불과한 데서 나온 말이다.

당초 이 구간은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 쿤밍에서 출발해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를 거쳐 싱가포르까지 닿는 3000㎞ 고속철 구상의 하나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 사업을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으로 삼았고, 2014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태국 군부도 호의적이었다. 그해 12월 양국은 '철로 협력 양해각서(MOU)'에 서명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지금 성사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연리 2.5% 차관을 제시한 중국을 향해 태국 정부가 "일본은 1%대 개발원조차관을 제공한다"며 이자 삭감을 요구한 것이다. 명분은 이자였지만 "국내 수요보다는 중국을 위한 고속철을 위해 중국에 너무 많이 양보한다"는 비판 여론이 더 크게 작용했다. 협상은 결국 결렬됐고, 태국 정부는 당초 계획했던 1차 구간 250㎞ 가운데 3.5㎞에 대해서만 입찰 공고를 냈다. 그마저도 태국 자체 자금과 다른 나라 고속철 기술로 짓겠다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태국 군부에 중국이 발등이 찍힌 격이다. 일대일로 3주년을 맞은 중국으로선 뼈아픈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의 간판 사업인 일대일로가 출발점인 동남아시아 등 이웃 국가에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일대일로는 동·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육로(一帶)와 해로(一路)로 잇는 사업으로 주변 65개국에 도로와 철도, 송유관을 깔고 항만과 공항을 짓는 거대한 토목 사업이다. 2013년 9월 시 주석이 첫 구상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쿤밍~싱가포르 고속철 프로젝트는 이 중에서도 중국이 각별히 공을 들인 사업이다. 고속철 수출과 동남아 시장 진출, 믈라카해협을 통하지 않고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루트 확보 등 일거삼득(一擧三得)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동남아 구간에선 단 1m의 철로도 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도 비엔티안에서 대대적인 착공식을 열었던 라오스에서도 삽질이 멈췄다. 착공 며칠 만에 라오스 정부가 공사를 중단했다. 라오스 정부는 공사를 중단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라오스에 미칠 사회·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달라고 중국에 요구했다. 미국의소리(VOA)방송은 "공사 중단의 진짜 이유는 라오스 국내 여론의 반발"이라고 보도했다. GDP가 120억달러인 라오스로선 70억달러나 되는 공사비의 70%만 중국이 빌려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조달해야 하는 조건이 너무 버겁다는 여론이 많다는 것이다. 정권 내에서조차 "중국에 다 내줬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한다.

태국~말레이시아 구간도 중국 고속철이 아닌 제3국 고속철이 채택될 가능성이 적잖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리카와 유럽 등 중국에서 먼 지역에선 비교적 순항 중인 일대일로가 아시아 인접국에서 고전하는 것은 중국 의존도가 커지는 데 대한 주변국의 경계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포린폴리시 리서치 인스티튜트는 "중국의 돈을 빌려 사업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사업이 순조롭지 않으면 빚에 코가 꿰여 계속 중국에 끌려다닐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일대일로가 서로에 도움이 된다는 중국의 주장과 달리, 자칫 중국에 경제 주권을 넘겨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은 일대일로 공사 대부분을 자국 건설사와 인력으로 하고 있다. 브뤼셀 자유대학의 조나단 호스라그 교수는 "일대일로 사업의 본질은 중국의 생산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밀어내기 수출"이라며 "중국에 비해 제조업 기반이 약한 국가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거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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