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우칸촌 '풀뿌리 자치 실험' 허망한 종말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2016. 6.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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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부패 마을 서기 몰아낸 곳 주민 손으로 직접 뽑은 지도자도 사례금 받은 혐의로 돌연 체포돼 주민들이 "당국 조작" 주장하자 관영 CCTV, 범행 자백 영상 공개

중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던 광둥(廣東)성 산웨이(汕尾)시의 어촌 마을 우칸(烏坎)촌이 위기를 맞고 있다. 2011년 부패한 마을 서기를 내몰고 주민 손으로 뽑았던 새 지도자가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주민들은 "혐의는 조작된 것"이라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체포된 촌(村) 서기가 혐의를 공개 시인하면서 어렵게 쟁취한 주민 자치가 밑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2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명보(明報) 등에 따르면 우칸촌 주민 3500명은 전날 린쭈롄(林祖戀·70) 우칸촌 당 서기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국기인 오성홍기와 공산당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우리 서기를 돌려달라" "우리 토지를 돌려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마을 학교에선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막기 위해 교사들에게 저녁까지 수업을 하라고 지시했지만, 주민들은 학교에서 자녀를 데려와 시위에 참여시켰다고 명보 등은 전했다.

린쭈롄 서기는 지난 17일 밤 들이닥친 10여 명의 공안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부당하게 수용된 마을 토지를 돌려 달라는 대규모 주민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체포는 무장 경력들이 마을을 에워싼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주민들은 "린 서기가 뇌물을 받을 수 있는 지위가 아닌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현지 검찰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린쭈롄 서기가 자신의 모든 혐의를 자백했다고 밝혔다. 린쭈롄이 자백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관영 CCTV를 통해방영됐다. 린쭈롄은 조사 과정에서 "법률 지식이 얕고 무지해 하도급 업체 선정, 자산 구매 등의 과정에서 거액의 사례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올 들어 관계 당국이 린쭈롄의 뇌물 수수 혐의에 관한 제보를 잇따라 받았고 석 달간의 기초 수사를 거쳐 그를 정식 입건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정식 재판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방식으로 그의 자백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린쭈롄에 대해 부패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우칸촌으로선 충격적이다.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어촌 마을인 우칸촌은 2011년 9월 부동산업자와 결탁해 마을 공동 소유 땅을 개발업자에게 몰래 헐값에 넘기고 돈을 챙긴 쉐창(薛昌) 당 서기 등을 대규모 시위 끝에 내쫓았다. 중국 당국도 이듬해 3월 우칸촌이 스스로 직선을 통해 촌민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서구 언론들은 우칸촌을 '중국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장'이라고 극찬했다.

그 실험이 가능했던 데는 중국 정부의 결단도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왕양(汪洋) 광둥성 서기(현 부총리)는 "이번 사태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쌓인 모순을 무시한 결과"라며 "대화와 설득으로 풀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광둥성 정부가 강경 진압 대신 협상과 양보로 사태를 해결한 것을 지지하는 사설을 실었다.

바로 그 현장에서 석 달여간 시위를 주도하고, 직선 서기로 뽑힌 이가 린쭈롄이었다. 주민과 정부가 한마음으로 탄생시킨 반부패, 주민 자치의 상징인 그가 부패로 전락할 위기를 맞은 것이다.

사태의 발단이었던 토지 문제가 지금껏 해결되지 못한 채 곪아온 것을 두고도 '우칸촌 실험이 결국 실패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토지 보상 수준이 요구액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자 주민들은 하급 기관을 건너뛰고 상급 기관에 직접 민원을 내는 '상팡(上訪)' 시위를 추진해왔고, 이 과정에서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린쭈롄에 대한 체포가 이뤄진 것이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서구 언론은 우칸촌을 중국 안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된 땅으로 보지만 사실 주민들이 시위에 나선 가장 큰 동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땅을 되찾으려는 욕망이었다"며 "우칸촌의 운명은 바로 그 점에서 이미 한계가 드러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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