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이 바꾼 대만.. 親中에서 親日로
지난 3~4일 대만 타이베이 국립콘서트홀에서는 NHK 교향악단의 공연이 열렸다. NHK 교향악단이 대만에서 공연한 것은 지난 1971년 이후 45년 만의 일이다. 이 공연의 명목은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 대만 국민이 성금을 보내준 데 감사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론 일본과 대만의 "새로운 관계의 서곡"이라고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이를 방증하듯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어머니인 요코(洋子·88) 여사와 나란히 객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했다.
차이 총통 취임 이후 한 달도 못 돼 일본과 대만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국민당 출신으로 친중(親中) 정책을 펴온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재임 8년간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차이 총통은 '주일 대사'에 해당하는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대표에 셰창팅(謝長廷) 전 대만 행정원장을 임명했다. 셰 대표는 교토대 대학원에 유학한 지일파이자 행정원장(총리)을 지낸 거물급 인사이다. 전임 마 총통이 직업 외교관을 보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셰 대표는 닛케이 인터뷰에서 "일본과 대만은 운명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만 정부 태도도 확 달라졌다. 셰 대표는 취임 직후 일본 언론에 "대만 스스로 이 문제를 자극해 일본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줄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 망신 주는 식으로 일본을 압박해 문제를 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린취안(林全) 행정원장은 3일 대만 국회에서 위안부의 강제 동원 여부를 묻는 야당 의원에게 "(위안부 동원은) 자원일 수도 있고, 강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과 대만이 가까워지는 목적은 '중국 견제'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소속으로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차이 총통이 중국의 군사·경제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로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3일 "차이잉원 정부가 일본을 향해 몸을 틀었다"며 "차이 총통이 앞으로 어떤 대중(對中) 정책을 펼칠지를 취임 보름 만에 벌써 선명하게 보여줬다"고 썼다.
타이완과 괌 중간에 있는 암초 '오키노토리'를 둘러싼 대만·일본 간의 영토 분쟁에서도 대만은 입장을 바꾸고 있다. 이 암초는 밀물 땐 수면 밖으로 나오는 면적이 "킹사이즈 침대 두 개" 정도에 불과하지만(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 바다 밑 수산 자원·광물 자원의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일본은 이곳을 섬이라 주장하고 1931년 일본 영토에 편입했다. 하지만 대만·중국·한국 등은 오키노토리가 암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국민당 정권 막판에는 이곳을 둘러싼 일본과 대만의 갈등이 격화됐다. 지난 4월 24일 대만 어선이 오키노토리 150해리 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에 나포되기도 했다. 보석금 600만엔을 물고 풀려난 선장은 "자위대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고 대만 언론에 분통을 터뜨렸다. 대만 국민당 정부는 이에 맞서 오키노토리에 순시선을 파견했고, 대만 국민 67%가 이 조치를 지지했다(TVBS 여론조사). 하지만 차이 총통은 취임 사흘 만에 순시선을 철수시키고 "앞으로 대만은 (오키노토리가 섬인지 암초인지) 법률상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이런 대만의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아베 총리와 차이 총통은 총통 취임 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앞으로의 관계 개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중국은 불쾌해하는 모습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6일 "대만과 일본 관계가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는 동안 중국·대만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면서 "대만이 아무리 친미·친일 정책을 펼치며 중국을 멀리해도 결국엔 중국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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