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다른 나라 보내기' 호주 난민정책 기로
[경향신문] ㆍ파푸아뉴기니, 위헌 판결에 “수용소 폐쇄”…호주 정부 당혹
ㆍ‘이민자의 나라’ 불구 난민에 배타적…“인권 고민을” 목소리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27일(현지시간) 마누스섬의 난민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날 대법원이 “호주로 가려는 망명신청자들을 그들의 뜻에 반해 마누스섬의 수용소에 가두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에 따른 조치다.
파푸아뉴기니가 던진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20년 가까이 이어진 호주의 난민정책을 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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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난민 인정은 까다롭다. 특히 난민선을 타고 오는 ‘보트피플’은 절대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트피플을 받기 시작하면 난민 브로커들의 배만 불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논리다. 호주는 섬나라다. 비행기를 타고 망명할 수 있는 난민은 많지 않다. 난민을 받지 않으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잇따랐지만 호주 정부의 입장은 견고하게 이어졌다.
2001년부터 호주는 망명신청자들을 파푸아뉴기니 마누스섬의 수용소로 보냈다. 이곳은 2008년 문을 닫았다가 2012년부터 다시 운영되기 시작했다. 호주는 2013년 파푸아뉴기니에 난민을 대신 받아주는 대가로 4억호주달러(약 3482억원)를 지급했다. 마누스섬에는 현재 난민 850명이 살고 있다. 파푸아뉴기니 대법원의 결정은 호주의 이런 정책을 비판한 것이고 불과 두 달 전 난민을 역외 지역에 강제수용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본 호주 연방대법원의 판결과도 배치된다.
판결이 나온 지 하루 만에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수용소까지 폐쇄하겠다고 하자 호주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피터 더튼 이민부 장관은 호주의 대표적인 시사프로그램 <투데이쇼>에 출연해 “판결이 나올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며 “난민정책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맬컴 턴불 총리는 “앞으로 난민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 없다”고 시인했다.
호주 정부는 마누스섬의 난민들을 나우루로 보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나우루도 호주의 돈을 받고 난민 468명을 수용하고 있다. 호주령으로 난민 183명을 수용하고 있는 크리스마스섬으로 보내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이들 수용소는 모두 열악한 시설로 악명 높고, 참다 못한 난민들이 여러 차례 폭동과 단식투쟁을 벌였다. 27일 나우루에선 한 이란 출신 난민이 유엔난민기구 관계자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가 중태에 빠졌다.
호주는 1973년 백호주의(백인우월주의)를 폐지하고 다문화주의를 선언했다. 이런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이라크, 이란, 미얀마 등에서 호주를 희망의 땅으로 여기며 떠나온 난민이 많지만 정부는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2월에는 화상을 입은 한 살짜리 난민 아기를 치료가 끝나자마자 추방하려다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28일 호주 의회에선 반난민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녹색당은 “세계 모든 나라가 어려운 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데 호주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며 “우리는 파푸아뉴기니에 돈을 건넸지만, 파푸아뉴기니는 우리에게 인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비판했다.
호주난민위원회 폴 파워 위원장은 “파푸아뉴기니가 우리에게 인권정책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다음주 파푸아뉴기니 정부와 긴급 회담을 갖기로 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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