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남성도 아닌 '히즈라'..인도 법원 '제3의 성' 인정

2014. 4. 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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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적소수자 권리에 기념비적 판결

"교육과 직업 일정수준 할당" 판시

'동성애 행위' 불법규정 족쇄 여전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로 종교적 구실 등을 해온 '히즈라' 집단을 '제3의 성'으로 인정하는 최고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인도에선 이같은 성적소수자 집단이 200여만명 있는 것으로 추정돼 이들의 권리 신장에 큰 도움이 되는 기념비적 판결로 평가된다.

15일 인도 최고법원은 "모든 인류는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자신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했다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재판부는 "헌법의 정신은 모든 시민이 카스트·종교·성별에 상관없이 잠재력을 키울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라며 "(제3의 성을 가진 이들을) 다른 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대우해 교육과 직업을 일정수준 할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도 등 남아시아에서는 신체 조건과 다른 성적 정체성을 느끼는 트랜스젠더나 여장 남자인 크로스드레서, 거세한 남성 등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성적 소수자들을 일반적으로 '히즈라'라고 이른다. 남아시아 전통에서 히즈라들은 대개 사회 주변부에서 따로 공동체를 이루고, 지역 사회의 결혼식이나 아기 탄생 행사에 축복의 춤과 노래를 제공하거나 성매매·구걸 등을 해서 먹고 산다. 대체로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데다 일부에선 병원 출입을 거부당할 정도로 천대받기도 한다.

남아시아에서 제3의 성을 가진 존재들은 고대 힌두 경전이나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 등에도 나타나며, 전통적으로는 양성성을 지닌 힌두신의 인격을 체현한 존재로 여겨졌다. 종교적 함의를 띤 존중을 받았던 셈이다. 또 무굴제국 등 중세 인도에선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18세기 이래 영국 식민 지배를 거치며 서구 근대사회의 동성애 혐오 탓에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크게 추락했다. <비비시>는 "식민지 법률이 이들을 '동성애'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르는 데 중독된 존재로 규정했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법원은 제3의 성에 법적 존엄성을 부여했다. 이처럼 제3의 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게 인도가 처음은 아니다. 네팔이 2007년에, 방글라데시가 2013년에 제3의 성을 공식 인정했다. 인도도 2009년에 인도 선거위원회가 투표소 문서 양식에 남녀 성별뿐 아니라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다른 성별(other)'을 표기할 수 있도록 발전적 조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히즈라가 법적 차별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인도 최고법원은 이날 제3의 성을 공식 인정했지만, 지난해 12월에는 동성애를 범죄 기소 대상에서 제외한 2009년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이를 다시 범죄로 규정했다. 인도 형법의 동성애 처벌 조항은 153년 전에 만들어진 식민지시대의 유산으로 동성애를 "부자연스러운 범법 행위"로 규정하고 최고 10년형에 처한다. 서구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된 동성애 혐오의 유산이 식민지 고난을 겪은 인도의 성적 소수자들을 오래도록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의 법률 전문가들은 "인도의 성적 소수자들은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면서 "그들은 헌법 아래서 인정받고 보호받지만, 서로 합의해서 동성애 관계를 맺는 게 불법을 저지르는 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이들 제3의 성을 지닌 히즈라가 섬기는 신의 이름을 딴 <바후차라마타>(배요섭 연출)라는 창작 연극이 2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라 이분법 논리에 갇히지 않는 대안적 성적 정체성과 사랑의 문제를 묻는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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