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학생들 '경제학의 교과서' 맨큐에 반기

박승혁 기자 2011. 11. 8.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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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정당화 말라"

지난 2일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부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강의 시간. 700명이 수강하는 학부 최대 규모 강좌에서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12시 15분 강의 시작과 함께 강당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학생 70여명이 짐을 챙겨 밖으로 걸어나갔다. 이들은 '기득권에 편승하지 말자' '월가 시위대와 연대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어 보였다. 반(反)월가 시위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보수성향의 경제학자 맨큐 교수가 "탐욕스런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한다"며 항의 표시로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하버드 학

생들, '거장'에 맞서다

'반란'을 주도한 학생들은 미리 맨큐 교수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항의 퇴장을 예고했다. 학생들은 하버드 학보 크림슨에 공개한 성명에서 "자본주의 시장원리만이 옳다는 맨큐 교수의 강의는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금융자본의 행태를 정당화·영속화한다"며 "그의 편향된 시각이 학생들과 대학,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하버드 출신 주류 경제학자들이 세계 각지의 금융 정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금융위기에 대한 하버드 출신의 책임을 비판했다.

항의 퇴장에 참가한 학부 1학년 레이철 샌덜로는 "수많은 하버드 졸업생들이 세상의 부조리에 일조했다"며 "우리는 수백만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의 이익만 쫓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 학생은 "맨큐 교수의 경제학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류 경제학의 표본"이라며 "강의는 보수 학파의 주장만을 유일한 사실처럼 주입시킨다"고 말했다.

◇맨큐 "학생들의 항거는 좋은 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반 월가 시위의 여파가 드디어 상아탑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맨큐 교수는 학생들의 주장과 강의 거부가 긍정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는 FT에 "강의 내용과 관련한 학생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최근 하버드 학생들이 대학을 단지 직업훈련소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이번처럼 사회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의 장을 연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맨큐 교수는 2003~2005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지냈고, 현재는 공화당 대권 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캠프에서 경제 자문을 맡고 있다. 그가 가르치는 경제학(Economics 10) 강의는 마틴 펠드스타인 등 하버드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석학들이 맡아온 것이다. 맨큐 교수는 이러한 이력과 상징성 때문에 시위대가 자신의 강의를 타겟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날 시위가 하버드 학생 모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니다. 퇴장한 것은 수강생의 10%에 불과한 70명뿐이었다. 크림슨은 당시 대다수 학생들이 움직이지 않았고 일부는 퇴장하는 학생들에게 야유를 보냈다고 전했다.

☞'맨큐의 경제학'은…

신자유주의 전성기 때 200만부 팔린 '경제 바이블'… "주류경제학 대변한다" 오해

'맨큐의 경제학'은 1997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폴 새뮤얼슨 MIT대 교수(2009년 별세)의 '경제학(economics)'이 쥐고 있던 경제학의 바이블 자리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더니 20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 200만부 이상 팔렸을 것으로 출판업계는 추산한다. 국내에서도 1999년 한글 번역본이 출간돼 경제학원론 시장을 곧바로 평정했다. 지금까지 5번째 개정판이 나와 국내 판매량이 30만부를 넘어섰다.

맨큐의 경제학은 맨큐가 썼다는 사실 외에도 구성, 서술 방식 등에서 기존 교과서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총천연색으로 인쇄됐고, 각종 사례와 신문기사를 동원해 경제 현상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쓴 이후 미국 상황을 이용해 물건 가격이 오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식이다.

책은 교과서인만큼 학파별로 별 이견이 없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맨큐는 이를 '10대 원리'로 정리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의심받는 상황이다. 이에 그의 책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국내 번역자인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보니 주류경제학을 대변하는 책으로 오해를 산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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