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투자은행들 왜 맥없이 무너지나(종합)

2008. 9. 1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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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통제시스템 부재.당국 규제.감독 느슨해(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 하며 첨단 파생금융상품을 취급하며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던 투자은행들이 맥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뭘까?

미국의 5대 투자은행 가운데 5위인 베어스턴스가 올해 봄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된데 이어 4위인 리먼브러더스가 15일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3위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수중에 들어갔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이들 투자은행들이 추풍낙엽처럼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미국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연관 파생상품에서의 손실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회사 내부의 엄격한 통제시스템의 부재와 감독당국의 규제.감독이 느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4월말 스위스의 금융기업인 UBS가 작성한 흥미로운 내용의 보고서를 소개했다.

UBS는 1912년 설립된 스위스연방은행(UBS)과 1872년 설립된 스위스은행(UBS)이 1998년 합병하면서 탄생한 스위스의 금융그룹이다.

안정적인 자산운용으로 유명한 UBS는 미국의 주택저당증권(MBS)에 투자했다가 올해 초 무려 380억 달러의 손실을 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다. 이 일로 UBS의 주가는 80스위스프랑에서 30스위스프랑 아래까지로 곤두박질쳤다.

이 때문에 UBS의 닉네임이 `과거 한때는 스마트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은행(Used to Be Smart)'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이 사태가 발생한 후 감독당국인 스위스연방은행위원회(SFBC)의 요구에 따라 UBS는 20명의 변호사를 동원해 내부조사를 진행, 4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최근 서브프라임의 부실로 위기를 맞고 있는 모든 금융회사들에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보고서는 UBS의 내부에서 성장 제일주의를 내세운 투자은행(IB)부문의 과욕, 그리고 리스크 관리에 대한 허술한 내부 통제시스템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상품을 운용, 고정 수익에 치중하다 보니 경쟁회사들에 밀린다고 본 UBS는 IB부문을 통해 구조화채권 등 파생상품 투자에 집중, 위험을 감수한 고수익을 추구했다. 이런 고수익 투자를 전담한 것은 첨단 금융공학의 귀재라고 불리는 소수의 파생상품 전문가들이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자 이들은 회사내에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그러나 이런 와중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터지자 UBS내부에 고작 35-40명에 불과한 한 부서에서 2007년 한 해에 무려 12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 손실은 그해 UBS의 전체 손실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들이 주로 투자한 부채담보부증권(CDO)은 애초 `AAA' 등급으로 평가돼 손실위험이 극히 낮은 것으로 간주됐고, 상황이 극도로 나빠질 때까지 위험성은 전혀 간파되지 않았다.

예컨대 A 씨가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모기지 은행은 이를 묶어 주택저당채권(MBS)으로 전환하고 IB는 이를 다시 CDO로 만들어 헤지펀드나 다른 투자은행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최종 투자자가 자신이 구매한 금융상품의 궁극적인 채무자를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러 쌀자루에서 쌀을 조금씩 퍼내 밥을 짓고 비빔밥을 만들었다면 비빔밥의 쌀이 어느 자루에서 나왔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IB들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만 의존, 담보가치를 평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와 같은 일부 파생상품은 회계장부에도 기재되지 않아 부실화될 때까지는 문제가 외부에 일절 노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영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UBS의 최고위층이 처음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은 2007년 7월 말이었으며 서브프라임 부실에 노출된 위험의 총괄적인 내용을 보고받은 것은 8월초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눈부신 수익률을 올리는 IB부문의 실적에 밀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채권 등 안정적인 자산운용에 열중하는 수천명의 직원들이 고작 3-4%의 수익률을 올리는데 비해 소수로 구성된 팀에서 파생상품을 취급하면서 초단기간에 30-40%의 수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최고경영자들도 리스크 노출을 눈감았고 내부 통제기능도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부 직원들 간의 신뢰를 중시'하는 UBS 내부의 기업문화도 한 몫 거들었다. 철저한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 대신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상황이 괜찮다"고 하는 직원들의 말을 너무 믿었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의 엄격한 규제와 감독을 받는 일반 시중은행들과 달리 IB는 느슨한 규제.감독 하에 놓여 있어 상대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며 고수익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

이 때문에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158년 전통의 리먼브러더스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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