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민소설 '앵무새 죽이기' 작가 하퍼 리 별세(종합2보)

2016. 2. 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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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대부분 고향서 보내며 인터뷰도 사절한 '은둔의 작가' 미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의 작가..두번째 작품 출간 7개월만에 비보

삶의 대부분 고향서 보내며 인터뷰도 사절한 '은둔의 작가'

미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의 작가…두번째 작품 출간 7개월만에 비보

(뉴욕=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미국의 '국민소설'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의 작가 하퍼 리가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9세.

미국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19일 하퍼 리가 이날 조용히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미 앨라배마 주(州) 지역 인터넷언론인 '앨 닷컴'도 리가 고향인 먼로빌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시(市) 당국자를 포함한 다수의 지역 인사로부터 확인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리의 변호사 토냐 카터는 "리가 오늘 이른 아침 잠든 상태에서 숨졌다"면서 "그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장례 일정도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

하퍼콜린스는 "세상은 하퍼 리가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녀가 유쾌함, 겸손, 친절을 갖춘 특출한 여성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며 "리는 책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고 밝혔다.

고인은 고향인 먼로빌과, 대학 졸업 후인 1950년대에 작품을 썼던 뉴욕 두 지역에서 일생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1926년 4월 28일 변호사이자 주 의원을 지낸 아마사 콜맨 리의 4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에서는 '넬(Nelle)'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몽고메리의 헌팅턴 대학에 진학했으며, 1학년만 다니고 앨라배마 대학에 편입했다. 대학에서는 부친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으나 꿈은 작가였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 1949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항공사 예약창구 직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작품인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의 대공황기인 1930년대 앨라배마의 한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흑인 차별 실태를 어린 소녀의 눈으로 낱낱이 고발한 소설이다.

화자인 6살 소녀 진 루이스 핀치(별명 스카우트)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는 가족이 위협당하는 가운데서도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누명을 쓴 흑인 남성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정의로운 변호사의 표상으로 그려졌다.

리는 1957년 '애티커스'라는 제목으로 이 소설을 처음 리핀코트 출판사에 보냈을 때, 다시 쓰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 출판사의 편집자인 테이 호호프의 도움을 받으며 작품을 재집필한 시기는 그가 이미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 재정적으로 궁핍했던 기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호프는 훗날 "리는 에세이는 물론 단편소설도 써본 적이 없었지만 이미 아마추어나 초보의 실력이 아니었다. 글쓰기의 핵심을 아무런 전문적 도움없이도 스스로 터득했다. 끊임없이 혼자 노력하고, 또 노력했던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 7월 11일 정식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리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각급 학교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자리매김했고, 1962년에는 영화로 제작돼 주연인 그레고리 펙에게 오스카상까지 안겼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4천만 부 이상 팔렸으며, 20세기 미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의 반열에 들어가 있다. 1991년 미 의회 도서관의 조사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미국인의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책으로 꼽혔다.

그러나 작품이 유명해질수록 리의 삶은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리는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터뷰, 강연, 자신을 알리는 글쓰기를 통해 충실하게 작품을 홍보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인터뷰를 사절하기 시작하더니, 노년에는 자신의 작품이나 창작활동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특히, 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대중에게 거의 노출되지 않은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2007년 뇌졸중을 앓았지만, 회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뇌졸중과 극심한 시력·청력 저하를 겪은 뒤부터는 고향인 먼로빌의 요양원에서 노년을 보냈다.

매일 아침 같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거나, 선친이 세운 법률회사에서 언니를 동행하는 리의 모습이 마을 사람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그는 1960년대 두 번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으나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의문을 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실화를 위한 조사도 1980년대 거둬들였다.

리는 1964년 시카고 라디오 방송에 나와 자신의 독신·은둔 생활에 "내가 오로지 원하는 것은 앨라배마의 '제인 오스틴'이 되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 '오만과 편견'을 쓴 영국의 유명 여성작가로 역시 평생 독신과 은둔 생활을 해왔다.

2007년 그는 미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받으며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무렵 "이제 사람들은 풍요한 사회에서 랩톱 컴퓨터, 휴대전화, 아이팟, 그리고 빈방 같은 공허한 마음을 갖고 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책과 함께 느리게 살고 있다"는 글을 쓴 바 있다.

지난해는 리가 다시 한번 대중 앞에 선 해였다.

리는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 '파수꾼'(Go Set a Watchman)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1950년대에 '앵무새 죽이기'보다 먼저 집필됐지만, 내용은 20년 뒤 벌어지는 일을 다룬 속편 성격이었다. 55년 만에 출간되는 것이어서 리가 진심으로 출판을 원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핀치 변호사가 늙은 인종주의자로 돌변해 독자들 사이에서 실망감과 함께 '변절'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출판과 관련한 저작권 소송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출간과 함께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켜 리의 영향력을 여지없이 실감케 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리는 수많은 미국인에게 감동과 울림이 있는 글을 쓴 작가"라고 애도를 표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리를 존경해왔다고 밝혔다.

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메시지가 넘쳐났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도 "하퍼 리, 편히 잠드소서. 다수의 힘으로도 누를 수 없는 것은 바로 사람의 양심"이라고 적었다.

quinte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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