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로 대주교, 피살 35년 만에 '복자'에 오르다

입력 2015. 5. 24. 20:00 수정 2015. 5. 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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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남미 해방신학의 상징

엘살바도르 수도서 시복식

군사독재에 맞서다 희생돼

우익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다가 1980년 암살된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23일 가톨릭 교회의 복자 지위를 얻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남미 해방신학의 대표적 인물이며, 복자는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 전 단계에 해당한다.

23일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로메로 대주교를 복자로 선언하는 시복식이 열렸다. 시복식에는 25만명이 참석해 산살바도르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전했다. 로마 교황청 시성성 장관인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은 이날 시복식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로메로 대주교의 애정은 이념적이지 않았고 복음적이었다. 로메로 대주교의 정신은 살아있다"고 말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1970년대말 엘살바도르 군사독재 정부 시절 정부를 비판하다가, 1980년 미사 도중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로메로 대주교 암살 사건은 1992년까지 이어진 엘살바도르 좌-우파 간 내전의 도화선이 됐다. 내전 때 사망한 엘살바도르인이 약 8만명, 실종자도 약 1만2000명에 달한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라는 별명으로 불린 로메로 대주교의 일생은 영화 <로메로>(1989년작)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로메로 대주교는 원래 신앙적으로는 보수파에 가까웠으나, 군사 독재 정권에 탄압받는 국민들과 사제들의 실상에 대해 눈을 뜬 뒤부터는 군사 정권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엘살바도르에서 로메로 대주교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유엔이 지정한 '엘살바도르의 진실에 관한 위원회'는 우익 군부독재 정권 시절 장군이 로메로 대주교 암살을 사주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메로 대주교의 복자 지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신학에 마르크스주의적 내용이 있으며 엘살바도르 분열의 원인이었다며, 바티칸 내부에서도 일부 추기경들이 그의 시복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뒤 로메로 대주교 시복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지난해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를 순교자로 선포했다. 암살 배후로 지목된 엘살바도르 군부 독재 정권을 지지했던 미국도 로메로 대주교 시복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이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로메로 대주교는 (좌우) 양극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발휘한 현명한 목자이며 용감한 사람이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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