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유출 사고로 30조원 토해낸 BP '삼성이 부럽다'

2013. 7. 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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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BP: <세계적 석유 메이저 기업>

BP-삼성 '원유유출'…두 기업의 상반된 처지

세계적 석유 메이저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비피)은 글로벌 대기업 삼성이 부럽다. 시가총액이나 영업이익 등 실적이 샘나서가 아니다. 둘 다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켰지만, 비피는 파산을 걱정할 정도로 거액의 배상금을 물고 있는데 삼성은 상대적으로 '쥐꼬리만한' 배상금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고는 원유 유출량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비피가 2010년 4월20일부터 무려 87일 동안 미국 루이지애나주 멕시코만에서 유출시킨 원유의 양은 최소 250만배럴(회사 쪽 발표)에서 최대 410만배럴(미국 정부 발표)에 이른다. 비피의 시추선 디프워터 호라이즌이 폭발해 침몰하는 바람에 유정을 연결하는 파이프에 구멍이 뚫려 원유가 유출됐는데, 이 사고로 직원 11명이 숨지고 루이지애나와 플로리다 등 5개 주 해안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부선이 2007년 12월7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앞바다에서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해 쏟아낸 원유의 양은 약 7만9000배럴(1만2547㎘)이다. 비피가 쏟은 양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하지만 두 회사의 피해 배상 규모와 그 과정을 비교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삼성은 '법적으로' 56억원만 배상하면 된다. 이는 어민들이 신고한 피해액 4조2271억원의 0.13%에 불과하다. 삼성은 고의성이 없으면 책임이 제한되는 규정과 책임보험의 보상 한도액이 50억원임을 근거로 손해배상 책임을 50억원으로 제한해달라는 '낯 뜨거운' 소송을 내 이런 결과를 얻어냈다. 태안군 등 피해 지역의 기름은 전 국민적인 자원봉사의 힘으로 제거됐다. 삼성은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피해지역발전기금으로 100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피해 어민들은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다"며 받지 않고 있다.

BP, 천문학적 배상금환경 복구비로 15조6천억원지급한 배상금 12조3천억원추가로 8조7천억원 지급 합의삼성, 달랑 56억원 배상피해신고액의 0.13% 불과해유출량은 58배 차이 나지만BP, 이미 낸 배상금만 2188배한·미 정부 태도 '정반대'미 'BP 신규계약 제한' 압박에법원도 "피해 모두 배상 책임"한국은 어민 자살해도 '뒷짐만'

이에 반해 비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고 있다. 사고 당시 기름띠 제거 등 환경 복구에만 140억달러(약 15조6408억원)를 쏟아부은 비피는 지금까지 피해 어민들과 기업들에 지급한 배상금으로 110억달러(약 12조2562억원)를 썼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하면 비피의 원유 유출량은 삼성의 58배인 데 반해 피해 배상금은 이보다 훨씬 많은 2188배에 이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피는 앞으로 피해 배상금으로 지급해야 할 돈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 비피는 2012년 11월 원유 유출에 따른 형사책임 배상금으로 78억달러(약 8조7141억원)를 더 내기로 미 법무부와 합의했다. 비피는 이 합의금으로 피해 배상을 일단락 지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법원이 피해 배상 관리인으로 임명한 패트릭 주노 변호사가 이 합의를 '(비피는) 원유 유출로 인한 피해를 모두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해석해 피해 배상 규모가 엄청나게 늘었다. 합의한 지 1년도 채 안 된 2013년 7월 현재 이미 78억달러의 절반인 39억달러가 지출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금까지 접수된 19만4800건의 25%인 4만8700건에 대해 피해 배상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문제는 미 법무부와 합의할 때 피해 배상의 한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탓에 앞으로 배상금이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비비시>(BBC)는 "지금도 월평균 1만건의 크고 작은 피해 배상 청구가 미 뉴올리언스 지방법원에 접수되고 있다"며 "비피의 배상금이 애초 합의금의 두 배인 14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과 더욱 비교되는 것은 피해 배상 과정이다. 비피도 사고 초기에는 피해 어민과 지역 기업들의 피해 배상 요구에 매우 까다롭게 대응했다. 비피가 고용한 워싱턴디시(DC)의 잘나가는 변호사 켄 파인버그는 피해 어민들한테 원유 유출로 발생한 피해임을 입증하도록 요구했고, 이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행태에 대해 미국에서 비난 여론이 강하게 일자 비피는 태도를 바꿔 미 법무부와 합의에 나섰다. 특히 미 연방정부가 '피해 배상에 성의를 보일 때까지' 비피가 연방정부와 신규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하는 등 강하게 압박한 게 주효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피해 어민들의 자살이 잇따르는데도 수수방관만 할 뿐 아니라, 삼성이 사고 이후에도 굵직한 국책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은 피해 배상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국회의 요구에도 귀를 닫고 있다. 삼성은 "악천후로 인한 사고와 시추장비의 폭발로 인한 사고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또 한국과 미국의 법체계도 전혀 다르다"는 말만 하고 있다.

비피는 피해 배상액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지난해부터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다. 비피는 피해 배상 관리인이 합의 내용을 잘못 해석했다고 공격하고 있다. 원유 유출과의 인과성 여부를 검증하지 않고 단순히 유출 사고 이후 매출이 크게 줄었음을 수치로 보여주기만 하면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바람에 배상액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비피는 "원유 유출로 손해가 발생했음을 입증한 경우에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그래도 매출 감소 여부를 따져 보는 게 가장 객관적"이라며 비피의 주장을 기각했다. 비피는 곧바로 항소했고, 뉴올리언스 제5 순회 항소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또한 비피는 지난 16일 뉴올리언스 연방법원에 2012년 미 법무부와 합의한 배상금 지출을 일시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번에는 소송 관리인이 피해 배상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 배상금으로 조성한 200억달러가 곧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는 이유도 댔다. 하지만 칼 바비어 판사는 "비피가 제출한 증거로는 어떤 불법이 있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설상가상으로 플로리다와 미시시피 주정부는 지난 4월 비피를 기름오염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 법은 불법 행위로 기름 오염을 일으킨 기업에 피해 배상금과 징벌적 벌금을 물리고 있다.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140억달러를 내야 한다. 비피는 "이런 추세라면 파산하거나 경쟁 업체들에 인수·합병될 수 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따서 "배상금이 더 늘어도 비피는 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비피가 여전히 심해 유전개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덕분이다. 또 280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재무 상태도 좋다. 지역 언론들은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피해 어민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비피의 항변은 엄살에 가깝다"고 일침을 날렸다.

이춘재 이형섭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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