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폐지' 국제이슈로 부상..'주조차익'이 걸림돌

신기림 기자 2016. 2. 18.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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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 전 美 재무 "100불짜리 없애야..G20 공조 필요" 피셔 美 연준 부의장 "달러지폐 해외 수요 무시 못해" 유럽중앙은행 "범죄 악용 500유로 지폐 폐지 검토 중"
미국 100달러 짜리 지폐 ©출처-위키피디아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세계 자본 시장을 주도하는 양대산맥인 미국과 유럽에서 고액권 폐지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500유로짜리 지폐 발행 중단 방안을 공식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100달러 지폐 폐지를 주장했다.

서머스 교수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후보에 유력하게 거론됐던 저명 경제학자이며,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오바마 행정부의 실세이다. 그의 고액권 폐지 주장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의 원유수출 재개를 앞장서서 주장해 관철시킨 전례도 있다.

유럽과 일본에 이어 이제 막 금리를 올린 미국에서까지 마이너스 금리 논의가 뜨겁다는 점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주목된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보다 강력하게 시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고액권이라도 없애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 시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대규모의 은행예금 인출사태이며, 고액 지폐는 대규모의 현찰을 손쉽게 쌓아둘 수 있는 핵심 수단이 된다.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드루 홀데인 통화정책위원은 지난해 가을 "현찰 화폐를 없애서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보편적으로 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중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서머스 교수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온라인 블로그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없애야 할 때(It's time to kill $100 bill)"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유럽의 최근 논의를 미국으로 확산시켰다.

서머스 교수가 밝힌 고액권 폐지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고액 지폐가 부패와 범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합법거래에서는 더 이상 고액지폐가 필요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유로화 © AFP=News1

서머스 교수는 특히 유럽과 미국만 나설 게 아니라 주요국들이 공조해서 고액권을 없애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오는 9월 중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고액권 폐지와 관련한 합의가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고액권을 없애는 것은 궁극적으로 화폐경제에서 디지털경제로 가는 수순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하랄드 마흐레르 경제차관은 최근 라디오방송에서 "무엇을 사서 먹고 마시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는지 디지털로 추적 당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액권 폐지가 힘든 더 큰 이유가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화폐발행을 통한 주조차익을 포기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식으로 화폐를 발행하면 국채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입을 얻을 수 있다. 이 수입은 정부의 재정수입으로 넘겨지게 된다.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은 지난달초 연설에서 미국이 달러 현금없는 경제로 바뀌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한 전망의 근거 중 하나로 피셔 부의장은 "미국의 달러화폐 발행 잔액은 그동안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커지는데 따라 함께 늘어 왔는데, 해외의 수요가 주된 배경이었다"고 말했다. 해외를 대상으로 한 미국 정부의 주조차익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말로도 들릴 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미국 달러는 지난해말 1조3800억달러다. 이 가운데 100달러 지폐로 유통되는 자금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1조8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1994년에만 해도 100달러로 유통되는 자금은 2290억달러에 불과했다. 연준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전체 미 달러의 절반은 해외에 묶여 있다.

고액권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이 재산을 보존하고 축적하기 위해 찾는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의견도 있다. 루스 주드슨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소련이 붕괴되고 아르헨티나와 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 달러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폭증했었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고액권 수요가 과거만큼 강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ECB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2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고액권(500유로)은 2690억 유로로 월평균 20억유로씩 늘었다. 하지만 2012년 1월 이후 월평균 고액권 증가분은 2억유로에도 미치지 못한다.

kirimi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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