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덮은 채 적당히 '단란한 가족'이라 여기는 게 문제"

도쿄/이한수 기자 2015. 9.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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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베스트셀러 '가족이라는 병' 저자 시모주 아키코] "병이 없는 가족은 없어.. 어떤 상태인지 먼저 진단해야 부부사이 나쁘면 아이 위해 이혼.. 한쪽이 정성 다해 키우는게 나아"

예상대로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모주 아키코(下重曉子·79)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독설가"라고 말했다. 최근 그의 책 '가족이라는 병(病)'(살림)이 번역 출간됐다. 일본에서는 지난 3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6개월 만에 50만부 이상 팔렸다. 시모주씨는 "일본에서 전체 범죄는 줄어드는데 친족 살인 같은 가족 간 범죄는 늘고 있다"면서 "가족이 친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미움은 더 커지고 극단적 방법을 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도 가족 불화로 인한 사건·사고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NHK 인기 아나운서 출신이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 도쿄 시부야에 있는 출판사 겐토샤(幻冬舍)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팔순 나이에도 목소리가 우아했다. 그는 "가족을 행복한 안식처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건 단지 희망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병이 없는 가족은 없어요. 병은 나을 수 있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지요. 의사가 어떤 병인지 먼저 진단을 하듯이 가족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는 "서로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해 '단란한 가족'이라고 여기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도 화목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화가가 꿈이었는데 군인이 됐어요. 패전(敗戰) 직후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반성하는 듯하더니 시대가 바뀌니까 뉘우치는 모습이 다시 사라졌어요." 그는 "아버지는 어떤 고생이 있더라도 화가가 됐어야 했다"면서 "그렇게 살지도 못했고 나중에는 군인 때 사고방식으로 돌아갔는데 이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오빠는 중학생 때 아버지와 몸싸움까지 벌이고 집을 나갔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자식에게 왜 그렇게 집착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다고 했다. "무책임하다고요? 아이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건가요? 아이는 부모 사이가 나쁘다는 걸 금세 알아요. 몸만 같이 있는 가족보다는 깨끗이 정리하고 어느 한쪽이 정성을 다해 키우는 게 아이를 위해서도 좋아요."

그의 책에 대해 일본 독자들의 인터넷 댓글에는 찬반 양론이 들끓는다. 해결책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그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어리석은 일"이라며 "가족 구성원이 서로 다른 개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화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내 책을 읽고 나서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았다는 독자들이 많아요. 가족끼리 속으로 곪아 있으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해 화목한 척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죠."

시모주씨는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는 않았다. 그는 "아이에만 매달렸던 내 어머니처럼 살기 싫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을 '슈진(主人)'이라고 부르는 보통 일본 여성과는 달리 '쓰레아이(連れ合い·반려)'라고 말한다. "부부는 주종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라는 뜻이죠. 말은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나는 (보통 일본인들처럼) 종전(終戰)이란 말을 쓰지 않아요. '패전'이라고 해야 일본은 반성과 책임을 갖게 됩니다."

그는 "한국은 유교 전통이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가족 문제가 더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를 개인으로 인정하고 마음을 통하는 관계로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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