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인터뷰> 장하준이 본 브렉시트의 진짜 교훈
지난 6월23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영국은 그야말로 혼돈에 빠진 형국이다.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대다수 시민은 ‘영국 독립’의 환희보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름한다. 영국의 불투명한 미래를 책임져야 할 EU 탈퇴파 정치인들은 연이어 현직에서 물러나고 있다. <시사IN>은 7월7일 영국에 있는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장 교수에게 브렉시트에 얽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유권자 가운데 52%가 EU 탈퇴를 지지한 투표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회적으로 불우한 처지의 유권자들이 탈퇴를 지지했다. 그 선택은 오산이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우파는 정작 그 유권자들을 지금처럼 만들어버린 시장 근본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EU에 대해서는 경제·사회 부문에 걸친 다양한 이슈가 있는데, 이번 투표의 경우 이민 문제가 모든 이슈를 압도한 느낌이다.
그랬다. 결국 이민 문제에 대한 투표가 되어버렸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폴란드나 헝가리 사람들이 몰려와서 일자리를 다 빼앗아간다’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근거 없고 막연한 공포다. 사실 영국독립당(UKIP:브렉시트 운동에 불을 붙인 극우 정당) 지지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이민자 수가 적다. 중산층 이상 가운데 상당수가 EU 탈퇴를 지지한 가장 큰 이유는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다.
영국인들이 EU를 싫어하는 다른 이유는?
영국인들은 프랑스인이나 독일인과 달리 자기 나라를 유럽의 일부로 간주하는 성향이 약하다. ‘유럽’이라고 이야기할 때 영국은 포함시키지 않는 영국인도 많다. 과거의 대영제국이나 영·미 동맹(즉, 유럽 국가들보다 미국과의 관계) 같은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동안 EU는 회원국들로부터 돈을 걷어 (큰돈은 아니지만) 비교적 가난한 나라나 지역(회원국 내의)에 나눠줬다. EU 전체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국의 빈곤 지역도 그런 돈을 받는다. 물론 영국은 비교적 잘사는 나라니까 받는 돈보다 EU에 내는 분담금이 많다.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거다.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를 유럽의 일부로 간주했다면 이런 손해 역시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대한민국 중앙정부의 경우 서울시 등 부유한 지자체로부터 걷은 세금을 비교적 가난한 지자체에 나눠주고 있지만, 적어도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세력은 없지 않은가.
영국의 가난한 지역이나 농업처럼 어려운 산업이 EU에게 받는 보조금 규모도 꽤 큰 것으로 안다. 영국이 손해를 봤다 해도 EU 탈퇴를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EU라는 조직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EU는 초국가 조직이다. 각 회원국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EU 정책에 반영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더욱이 ‘통화 통합(EU 28개 회원국 가운데 독일·프랑스 등 19개국은 통합 통화인 ‘유로’를 사용함)’과 ECB(유로화를 발행하는 유럽중앙은행) 설립을 거치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EU 기구들의 경우 (유럽 시민들에 대한) ‘책임성’을 거의 갖지 않는다. 미국 등 다른 나라 중앙은행은 은행장이 3개월이나 6개월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에 출두해서 그동안 펼친 통화정책을 보고하고 추궁당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ECB엔 이런 절차가 없다.
좌파와 우파가 각기 나름대로 EU에 불만이 컸던 것 같다.
좌파는 EU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온 기관이라고 비판한다. 우파는 EU가 영국에 부과하는 규제를 싫어했다. EU의 기본적 기조는 신자유주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일변도로 나가면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노동권·인권·환경권 등을 보호하는 규제도 시행한다. 우파는 EU의 이런 규제 때문에 영국의 시장경제가 더 발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EU엔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측면도 있다. (좌파든 우파든)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것만 보게 되면 탈퇴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영국이 다른 EU 회원국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EU가 부과한 의무 중 하나다).
영국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는 파격적인 재정정책을 공약했는데, 이 또한 EU 회원국으로서는 불가능한 일 아닌가?
재정정책에는 제약이 있다. EU 규범으로 각 회원국 정부의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반드시 EU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자 등 서민을 소외시키는 영국 경제 시스템 때문에 최근 사태가 벌어졌다는 지적엔 일리가 있다.
영국은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나라다. 그만큼 제조업이 강했다. 그러나 점점 약해지다가 특히 대처 총리 이후 ‘금융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 끝에 제조업이 쇠락하고 말았다. 제조업 부문의 무역수지 적자가 GDP의 3.5~4%에 이를 정도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미국 달러화보다 30% 정도나 평가절하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통화 가치가 이 정도로 떨어졌다면, 수출이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파운드화 가치가 그렇게 하락했는데도 제조업 부문의 무역수지 적자가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제조업이 황폐해진 것이다. 제조업 중심지였던 영국 중부와 북부 지방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반면 글로벌 금융센터로 발전한 런던은 오히려 부유해졌다. 이번에도 실업률은 높고 생활수준이 낮은 지역의 노동자들이 ‘이민자가 줄면 살기가 좀 낫지 않을까’라고 서글픈 환상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가난한 지역들의 살림살이는 오히려 더 궁핍해진다. 한때 산업혁명의 한 축을 담당한 웨일스 지역은 영국의 산업이 쇠락한 이후 궁핍해져서 EU 보조금을 많이 받는 처지다. 앞으로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웨일스 지역 역시 이민자는 덜 들어올지 몰라도 EU 보조금이 끊기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경제적 타격이 예상된다.
영국은 지역 격차가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맨체스터나 리즈는 세계적으로 부유한 도시였다. 이후 계속 몰락해왔지만. 반면 런던은 금융시장 자유화 정책에 힘입어 글로벌 금융센터로 발전했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파운드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과대평가) 한편 금융 규제를 완화해서 외국인 투자를 대량 유치해왔다. 세계에서 온갖 깨끗하고 더러운 돈이 런던으로 몰려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고 부동산 가격도 올렸다. 그러나 산업 지역들은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황폐해졌다(통화가치가 과대평가된 나라의 제조업은 수출이 어려워진다. 수출한 상품의 해외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오는 9월 초, 보수당의 새로운 대표로 선출되는 정치인이 총리로서 EU 탈퇴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어떻게 전망하나.
전대미문의 사태라서 예측하기도 힘들다. 일부 탈퇴파 정치인들은 EU에 탈퇴를 통보하지 않고 뭉개고 있으면, 오히려 EU 측에서 ‘이민을 규제하게 허용할 테니 다시 들어오라’고 요청할 것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단언컨대, 망상이다(영국은 국민투표로 EU 탈퇴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영국 국민의 ‘의사’일 뿐이다. EU 규범에 따르면 영국 총리가 EU 측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한 날부터 비로소 ‘탈퇴 절차’가 시작된다. 이날부터 2년 동안 영국과 EU가 협상해서 마무리해야 브렉시트가 성사되는 것이다).
그런 전략을 짰던 탈퇴파 정치인들이 EU 측의 강경한 반응에 놀란 듯하다.
EU가 영국에만 관대할 이유가 없다. 자칫 EU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 영국에 ‘이민 억제’를 허용하면 지금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에서 날뛰는 극우 정당들이 가만히 있겠나. 그래서EU는 영국에게 규범대로 하라고 재촉한다. 9월에 새로 선출될 총리가 언제 EU로 탈퇴 의사를 통보할지는 모르겠다.
이를 둘러싸고 영국에서 한동안 정치·경제적 혼란이 깊어질 것 같다.
엄청날 거다. EU와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영국의 미래가 결정되니까. 탈퇴파는 ‘EU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문제없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영국 제조업 상품의 수출 실적은 탈퇴하든 안 하든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EU의 관세가 크게 높지 않을뿐더러 영국이 제조업 상품 수출을 많이 하던 나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금융 등 서비스 수출이다. EU의 경우, 한 회원국(예컨대 영국)에서 설립 인가를 받은 금융기관은 다른 회원국에도 자유롭게 지점을 만들고 금융 상품을 팔 수 있다(미국이나 아시아 금융기관들도 일단 영국 런던에 사업본부를 설립한 뒤 EU의 다른 회원국으로 영업망을 확장했다. 런던이 글로벌 금융센터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므로 EU를 탈퇴하면 영국의 금융 서비스 수출이 상당 부분 막힐 것이다. 이미 독일·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노골적으로 런던에서 금융업을 빼올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EU가 영국에 호의적인 협상 자세를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자칫 영국이 글로벌 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공은 EU로 넘어갔다.
그렇다. 영국으로서는 탈퇴 통보 시기 이외에는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탈퇴파는 원래 통보하기 전에 사전 협상을 시도할 작정이었다. 사전 협상에서 영국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면, 선택 가능한 길이 더 많아지지 않겠나? 그러나 EU 측에서 ‘사전 협상은 절대 없다. 협상은 통보 이후에 개시된다’라고 강경하게 나왔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보수당의 탈퇴파 리더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보수당 대표직 경선(사실상 총리 선출 투표)을 포기하고 급기야 영국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마저 대표직을 사임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EU와의 협상을 제대로 수행할 자신이 없으니 줄줄이 도망쳐버린 셈이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 노동당도 소속 의원 중 무려 75%가 제러미 코빈 대표에 대한 불신임안을 내는 등 내홍이 만만치 않다.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이후 신자유주의로 변절한 노동당이 오랜만에 등장한 진보적 대표를 압박한다는 평가도 있다.
비유를 들자면, 보수당의 대처주의는 ‘운전(영리 추구)에 방해되는 신호등이나 교통 규칙(규제)을 모두 제거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운전자들이 자동차를 쾌속 운전하면서 위험한 사고는 각자 알아서 피하는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노동당(토니 블레어 이후의 노동당) 역시 교통 규칙을 없애는 것에 동조한다. 다만 그렇게 해서 늘어난 교통사고 피해자를 돕기 위해 운전자들로부터 특별세를 걷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러미 코빈 대표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단히 비판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정치력이 너무 부족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아래로부터 끓어오르는 불평등 체제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맹목적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 결과인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그들이 드디어 ‘이게 아니구나’라며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노와 희망이 미국에서는 트럼프,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주도 세력,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 같은 극우 세력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불행히도 현 체제의 수혜자들은 변화를 허용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이민자나 테러리스트 탓으로 돌린다. 이에 따라 점점 ‘증오의 정치’가 강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서비스업 강화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이 지금 같은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 결국 금융 등 서비스업에 지나치게 몰두한 탓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서비스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 자체는 옳다. 국민 가운데 70~80%가 농업에 종사하는 ‘산업화 이전 사회’가 아니라면 어느 나라에서나 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제일 많게 마련이다. 제조업의 경우 생산성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갈수록 인력 수요가 적어진다. 그러나 ‘일자리에 중요한 산업’과 ‘경제의 엔진으로서 중요한 산업’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동차 무게에서 엔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안 될 것이다. 5~10%나 되나? 그러나 엔진을 뺀 자동차는 고철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의 엔진은 제조업이다. 글로벌 금융센터인 영국은 서비스업에 특화해서 돈을 버는 거의 유일한 나라였다. 서비스 무역 부문의 흑자가 GDP 대비 2~3%에 이르니 대단한 것이다. 다만 금융산업에 의존하다 보니 소득 불평등이 심할뿐더러 외부 충격에도 지나치게 민감해서 휘청휘청한다. 한국 역시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이 강해야 서비스 산업도 육성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조선업 부문 기업들의 부실화와 내부 비리 때문에 ‘제조업 회의론’이 다시 등장하는 분위기다.
기업을 잘못 운영한 경영자, 대출 관리를 잘못한 은행가, 엉망으로 감독한 공무원 등은 정말 나쁘다. 처벌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한국 제조업에는 희망이 없다’라고 일치시키면 안 된다. 누가 칼부림했다고 칼을 금지할 수 있겠나? 더욱이 지금 한국 조선업이 어려운 데에는 (세계시장이라는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구조적 원인들도 있다. 유가 하락과 세계경제 침체라는 경기 순환적 측면도 중요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서 해당 기업의 경영이 어떠했는지, 금융기관의 대출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그냥 ‘대기업은 도움이 안 된다’ ‘정부 개입은 무조건 나쁘다’ ‘제조업 시대는 지나갔다’ ‘국책은행 폐지하자’ 등으로 뭉뚱그리면 곤란하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구조조정 논의는 영국의 브렉시트 논의와 비슷한 점이 있다. 영국인들은 EU의 좋고 나쁜 측면을 모두 이민 문제로 환원해버렸다. 한국 조선 산업의 곤경에도 세계경제 환경, 정부의 그릇된 관리, 기업 내부자들의 부실 경영과 비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최근 드러난 몇몇 사례만 콕 찍어 일각에서 청산론까지 나오는 상황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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