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맹주 노리는 터키 '반이스라엘' 초강수

2011. 9. 1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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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에르도안 총리 "범죄 대가 치러야"…이집트서 환대

팔레스타인 독립·아랍권 민주화 지지 '전략적 행보'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올릴 때가 됐다. 팔레스타인 국기가 중동 평화와 정의의 상징이 되게 하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한 터키 총리가 오는 20일 개막하는 유엔총회의 팔레스타인 독립국 승인 방안을 거듭 지지하고 나섰다. 에르도한 총리는 아랍권 순방 첫날인 13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 아랍연맹 장관급회의 개막 연설에서 "아랍국가들한테 팔레스타인 독립 지지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강조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에르도한 총리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억압받는 이들의 희망"이며 "민주주의와 자유는 나의 형제들인 당신들에게 빵과 물 같은 기본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아랍권의 '공공의 적'인 이스라엘에 대해선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에르도한 총리는 "이스라엘 정부의 사고방식은 비인간적이며,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며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모든 유대인정착촌은 평화를 가로막는 장벽"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으며,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들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도 했다. 청중석에선 "에르도한, 에르도한!", "알라후 악바르(신은 위대하다)!" 같은 연호가 터져나왔다.

 앞서 12일 밤 에르도한 총리가 이집트에 발을 디딘 카이로 공항에는 수천명의 환영 인파가 몰렸고 일부는 꽃을 던지며 환대했다고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전했다.

 에르도한 총리의 아랍권에 대한 '러브콜'은 최근 터키가 이스라엘에 외교적 초강수를 연발하고 있는 것과 선명히 대비됐다. "리비아 과도국가평의회는 리비아 민중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발언도 아랍연맹이 '아랍의 봄'에 모호하고 무기력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 대조된다. 아랍의 변혁 바람에 터키가 돛을 높이 올린 형국이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긴 하지만 아랍권과는 민족과 언어가 다르다. 아랍연맹 회원국도 아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6세기 이래 400여년 동안 중동지역을 지배한 정복국가였다. 현재 터키는 나토 동맹국이며,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 중이다. 터키가 최근 몇년 새 중동평화협상의 중재에 적극 나선 것도 이슬람 국가로는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우방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런 터키의 총리가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 아랍 민중혁명이 성공한 나라들을 골라 순방길에 오르고 아랍연맹 장관급 회의 개막식에서 연설한 것은 향후 터키와 아랍권의 관계 진전, 나아가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 재편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터키가 '아랍권 맹주'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에르도한 총리의 이번 순방을 두고 외신들이 "터키가 아랍의 대의에 무게를 실었다"(<로이터> 통신)거나 "터키가 자신을 아랍세계의 중심부에 위치지웠다"(미국 <시엔엔>(CNN) 방송)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터키의 이런 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터키가 아랍권에서 누리는 인기는 이스라엘과의 대립구도에서 비롯한 반사적 성격이 짙다. 지난해 5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구호선단을 공격해 터키 활동가 9명이 숨진 이후 양국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터키는 최근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를 2등 서기관급으로 격하시키고 양국간 군사조약의 효력을 유보했다. 나아가, 자국 전투기의 레이더 식별시스템에서 이스라엘 전투기를 '우방국'이 아닌 '적국'으로 인식하도록 수정했다.

 터키의 엄격한 '세속주의' 원칙도 이슬람 국가들의 일반적인 문화와는 이질적이다. 지난 6월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한 에르도한 총리는 정교분리 원칙을 명시한 자국의 정치시스템을 아랍권의 새 국가 모델로 제시하고 있으나 아랍권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특히 이집트의 유력한 집권세력으로 떠오른 무슬림형제단은 터키식 모델을 이집트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무슬림형제단의 미흐무드 고즐란 대변인은 14일 <에이피>(AP) 통신에 "터키에선 외간 남녀가 한 침대에 있는 것을 목격해도 처벌할 수 없는데, 이는 터키가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어기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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