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조야" vs "이 남자 게이에요"

최지은 2010. 4. 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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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주문 "은조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中기훈은 그저 "은조야"하고 부른 것뿐이었다. 그런데 은조는 '왔다. 웃는다. 은조야 하고 불렀다... 은조야 하고 불렀다. 은조야 하고 불렀다...... 은조야, 하고 불렀다'라고 되뇌었다. 다친 고양이처럼 독기 어린 눈으로 사람을 노려보고, 미소라도 지어주면 보답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릴 기세였던 소녀는 "은조야"라는 마법 주문을 들으면 매 맞아 퉁퉁 부은 종아리도 아프지 않고 그와 단 둘이 비눗방울 속에 들어가 하늘 끝까지, 달까지도 날아올라갈 것 같았다. 그래서 기훈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로 "은조야"라며 제 이름을 써보고, 기훈이 떠난 뒤에도 "은조야"라며 새들처럼 제 이름을 부르며 울었던 은조는 8년 만에 돌아온 기훈을 원망하면서도 "은조야" 한 마디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들을 때마다 당장 개명하러 달려가고 싶어지는 "은조야"의 마력, 하지만 누구나 은조처럼 아련해질 수 있다. 이를테면, 개화야 하고 불렀다. 만덕아 하고 불렀다. 오복아 하고 불렀다......으응?

마법의 주문 "이 남자 게이에요"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 '뽀뽀뽀' 中개인은 그저 진호에 대해 사소하게 오해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호가 게이라고 굳게 믿어버리기 시작한 개인은 사방팔방 진호가 게이라며 광고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 영선에게는 진호가 "바람 핀 나쁜 게이"라 설명하고, 라이벌 인희가 진호에게 관심을 보이자 "저 남자...게이야!"라며 의기양양해 하고, 진호가 커플싸움에 말려들자 수습한답시고 "이 사람 게이라구요!"라 외친다. 그냥 "제 남자친구에요!"라고 우겼어도 되었으련만. 게다가 게이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서 여자 친구랑 똑같으며 다리를 만지게 해도, 생리통에 시달릴 때 배를 문질러 달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는 개인은 불리하거나 말 안 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만병통치약처럼 '게이 주문'을 사용한다. 심지어 "게이란 거 비밀로 해 주겠다"고 해 놓고 남들 앞에서 "진호 씨 게이라는 말 진짜 싫어한다고!"라 확인 사살하는 개인의 행태는 이를테면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진호 씨는 게이지만 진호 씬 게이라는 말 진짜 싫어하고 진호 씨가 게이인 건 비밀이니까 진호 씨 게이라는 사실은 절대 소문내지 말아 주세요. 진호 씨가 게이인 게 게이인 진호 씨 잘못은 아니잖아요!"

글. 최지은 five@< ⓒ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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