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영화인들 기득권 싸움으로 '53년 역사 대종상' 쪽박을 차다

성하훈 2015. 11. 2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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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상 파행 막전막후] 조근우 본부장 사실상 해임 수순.. 앞으로 어떻게 되나

[오마이뉴스 성하훈 기자]

▲ '대종상' 임원들의 발걸음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최하원 집행위원장과 김구회 조직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무기중개상이 물러가니 불법집행부와 주먹 출신이 철거업자에게 대종상을 갖다 바쳐서 결국 몰락시킨 거다."

52회 대종상영화제가 수상자들의 대거 불참 속에 파행으로 끝난 20일, 일부 원로영화인들은 대종상에 대한 감정이 많은 듯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영화인총연합회 최하원 직무대행의 정통성 문제와 건축물 해체공사업을 하는 김구회 조직위원장, 1950·1960년대 정치 주먹 밑에 있었거나 작고한 조폭 김태촌(서방파 두목)을 "형님으로 모셨었다"는 일부 대종상 관계자들을 지칭한 것이다.

하지만 대종상 집행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파행을 유발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비판만 한다며 불쾌해 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 만나면 면전에 대고 쌍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가 영화를 그들에게 배웠는데, 자기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올해 대종상 파행은 그들이 방해한 원인도 크다."

영화인총연합회 내부의 책임론도 거세지면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리수상 금지'를 밝혀 논란을 촉발하고 배우들을 향해 "후진국 수준"이라고 비하한 조근우 사업본부장은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산하 단체들은 "책임 있는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야 한다"며 대종상 파행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직 보이지 않아 대종상을 둘러싼 다툼만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시상식이 되면서 온갖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올해 52회 대종상 시상식 전후를 되짚어봤다.

[원로 배우들도 등 돌려] 신영균-남궁원-윤일봉 불참의 의미

 지난 20일 열린 52회 대종상에서 한국영화공로상을 수상한 정창화 감독. 시상은 임권택 감독이 나섰다. 윤일봉 배우는 불참했다.
ⓒ KBS
올해 대종상 파행은 행사 열흘 전부터 구체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공로상 대상자 선정을 위한 집행위원회가 열렸는데, 당시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수상자 선정은커녕 시상에 나설 배우들조차 섭외가 쉽지 않다며 "행사 준비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20일 시상식은 주요 수상자들 외에 충무로 원로들도 대거 불참했다. 대종상 이사장을 지낸 원로배우 신영균과 올해 1월 영화인총연합회장에서 사퇴한 남궁원 전 회장 등은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국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집행위원인 정진우 영화감독협회장도 불참했다. 감독협회 측은 조직적으로 불참을 권유했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게 하려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서 했지 숨어서 하지 않는다"며 "불참을 고민하기는 했으나 그냥 지켜보기로 결정했고, 참석할 감독들은 초청장을 받아갔다"고 반박했다.

원로 영화인 중 공로상 수상자인 윤일봉의 불참은 무게가 더욱 무겁다. 윤일봉은 지난 10월 28일 열린 대종상 조직위원 심사위원 위촉식에는 참석해 심사위원을 맡기로 발표됐으나 최종 심사위원 명단에는 빠졌다. 한 영화 관계자는 "윤 선생은 공로상 수상도 고사했다"면서 "계속되는 권유에 결국 받기로 했으나, 논란이 커지면서 불참을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충무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시상식이 열리기 전 전화통화에서 "대종상 측에서 남궁원 전 회장에게 여우조연상을 시상을 부탁하더니 다시 공로상 시상을 부탁했다"면서 "자문을 구하기에 참석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고, 전날까지도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궁원은 오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배우들의 불참 소식이 알려지면서 밤새 입장이 바뀐 것 같다"며 "신영균 불참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심사 공정성 논란] <국제시장>은 10관왕-<베테랑>은 무관

 지난 20일 열린 52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한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이 수상 후 인사하고 있다.
ⓒ 성하훈
<국제시장>이 10관왕을 차지하면서 올해도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후보작들에 해외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은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제외됐고, 주로 흥행 상업영화로만 구성됐다는 점도 대종상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창호 감독은 "15명의 심사위원이 공정한 심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배 감독은 "기계적으로 투표만 한 것이 아닌 심사위원들의 토론을 곁들였다"면서 "토론으로만 정해진 수상작이나 만장일치 작품은 없고, 투표를 통한 다수결로 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심사위원단 영화인총연합회 8개 단체가 의무적으로 한 명 씩 참여하고 있고 이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점은 심사위원 구성의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특정 협회장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특히 예심 심사위원은 8개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과 일반인들로만 구성돼 있어 사실상 흥행 상업영화만이 유리한 구조다.

올해 대종상 심사위원은 심사위원장 배창호 감독을 비롯해 정성일 평론가, 이춘호 전 EBS 이사장, 방송인 백현주 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송현옥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 이윤혁 한국영상대학교 영화영상학과교수, 조승범 변호사, 8개 단체에서 추천한 박종원 감독, 김영인 배우, 최찬규, 강광원, 송재문, 정대성, 김성찬, 박현우씨 등 15명이다.

이중 이춘호 심사위원은 EBS 이사장 재직 시절 노골적인 친여·친박 정치활동과 업무용 차량의 사적 유용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송현옥 심사위원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부인이며, 다른 한 심사위원은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성에서 기득권층의 비리를 고발한 <베테랑>은 무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영화계 안팎의 시선이다.

[파행은 누구 책임지나] 조근우 본부장? 그를 추천한 사람?

원로영화제작자 김진문 아트시네마 대표는 시상식 전 만난 자리에서 "조근우 본부장에게 행사가 끝난 후 그만두라고 (권유)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영화상은 제작자나 스태프들도 함께하는 자리인데, 조 본부장이 너무 배우들에게 집착해 일을 복잡하게 했다"며 "영화 쪽 일을 잘 모르다 보니 이런 논란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근우 본부장을 영입한 사람은 바로 김진문 대표다. 조 본부장은 대종상 업무를 맡게 된 과정에 대해 "수차례 고사했으나 계속되는 권유로 사업본부장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즉, 조 본부장에 문제가 있었다면, 김 대표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내가 영입한 것은 맞고 나 역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겠다"면서 "내가 옛날 사람이라 요즘 흐름에 잘 몰랐던 것 같다, 앞으로 기획사나 배우들 입장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예전 대종상 준비 과정에서 운영비가 부족해 개인 돈을 급하게 차용해 줬으나 이를 못 받아 영화인총연합회 계좌를 압류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일부 영화인들은 김 대표가  대종상의 실세 중 한 명으로 영화상을 사유화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어려울 때 도움을 줬더니 고마움을 모르고 음해만 난무한다"고 반박하는 입장이다.

[위상회복 가능할까] "원로들이 물러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

▲ '대종상', 오늘 레드카펫은 여기까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이 끝나자 스태프들이 문을 닫고 있다. 레드카펫에는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후보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 이정민
올해 대종상은 그야말로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위상이 추락했다. 문제는 현 주최 단체인 영화인총연합회가 이를 회복시킬 능력이 있는가이다. 영화계 시선은 회의적이다.

대종상은 1990년대부터 20년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60·70대 원로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영화단체 관계자는 "나도 영화제 등을 다니면 원로 소리를 듣지만 여기(대종상)서는 아직도 막내일 뿐이다, 차라리 현장에서 영화 찍는 일에만 몰두하고 싶다"며 "원로들이 물러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인총연합회는 8개 산하단체 중 올해 대종상에 협조적이었던 기획·촬영·조명·음악·기술협회 등이 한 축을 구성하고 있고, 영화감독협회와 영화시나리오협회는 반대 축에 서 있는 모양새다. 양측의 대립구도 속에 영화배우협회는 대리수상 논란으로 촉발된 배우들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나 영화감독조합, 프로듀서조합 등 단체들은 아예 배제돼 있어 구성 자체가 반쪽자리다.

대종상의 개혁과 회복을 위해서는 행사 주최를 현장 활동 영화인들에게 넘겨주고 원로들은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게 영화인들의 주장이다. 한 제작관계자는 "올해 대종상을 보며 처참한 심정이다, 존경할 사람 없는 원로들이 영화상을 해줘야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착각"이라며 "이제 제발 전문가들에게 맡겨주시고 영화인으로 남아 달라, 더 이상 영화상에 관여하는 것은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대종상의 권위 회복을 위해선 이름만 남기고 다 바꿔야 한다"며 "아카데미상처럼 명망 있는 사람들로 투표인단을 구성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무로의 한 영화인은 "영화와 관련성 없는 사람이 돈 내고 조직위원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도 영화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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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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