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 '침대 발언', 남자가 여자에게 했다면?

2014. 11. 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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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우동균 기자]

'성상품화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1박 2일>의 한 장면.

ⓒ KBS

지난 7월, KBS 2TV <1박2일>이 난데없는 논란에 시달렸다.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등장해 <1박 2일> 멤버들이 '데이트 권'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이 방송에 탔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코미디언 김혜선과 오나미를 등장시켜 경쟁에서 진 멤버들이 그들과 데이트를 하는 '벌칙'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결국 제작진의 사과까지 이어졌다.

사실 한국 방송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들에 대한 차별주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예쁘고 날씬한 캐릭터와 상대적으로 외모가 떨어지는 캐릭터를 대비시켜 무시하고 경멸하는 듯한 뉘앙스를 펼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는 꼭 여성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1박2일>에서 이 논란이 일기 바로 전주 방송분에서 곤란해 하는 체육 교사의 상의 탈의를 강요하고 여자 스태프들의 환호 소리를 내보낸 바 있었다. 그러나 억지로 남자의 탈의를 강요한 것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한 사람들은 없었다. 뿐만 아니다. 남성이 여성의 몸을 훑거나 스킨십을 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 반면, 여성들이 남성의 몸을 만지거나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장난으로 받아들여진다.

여자가 들었다면 불쾌했을 말, 남자도 마찬가지다

▲ 곽정은

SBS <매직아이>에서 '침대'발언으로 논란이 된 곽정은

ⓒ sbs

4일 방송된 SBS <매직아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JTBC <마녀사냥> 등에 출연해 유명세를 탄 잡지 에디터 곽정은이 장기하를 두고 "'이 남자 침대에선 어떨까?' 상상한 적 있다"고 밝히며 논란이 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발언의 수위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1박2일>의 비키니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론도 조용한 편이다.

그런데 이 발언을 뒤집어 남자가 여성에게 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여자, 침대에서는 어떨까 상상해 본적 있다'고 남자 연예인이 말했으면 적지 않은 논란과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한국에서 아직도 여성의 인권이 상대적으로 존중받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남자의 성과 여성의 성은 엄연히 다른 것으로 구분된다. 아직도 순결의 문제가 화두에 오르고, 여성의 정조는 남성의 정조보다 중요시된다. 인도처럼 여성 인권이 취약한 나라들에서 여성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시위가 일어나는 것 또한 여성의 성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여성과 남성의 성은 보다 동등하게 취급된다. 여성과 남성의 성폭력 사건의 무게가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사람들의 문제 인식도 양성에 동일한 편이다. 순결이나 정조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성의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대규모 집회나 시위가 일어나는 일도 적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남성과 여성 피해자가 동등하게 취급 받는다는 점이다. 여성의 성이 더 특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상 자체가 오히려 일종의 여성차별주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방송에서 논란이 되는 지점 역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여성에게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행위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하지만, 남성에게 같은 행위를 할 경우는 너무나도 관대하다. 여성들은 물론, 남자들 역시 그런 장면들에 불쾌함을 표출하는 경우는 적다. 여성에게는 수위를 적당히 지켜야 하지만 남성에게는 다소 수위를 넘나들어도 농담으로 포장된다.

개그우먼과의 데이트를 벌칙으로 활용하는 등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결코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그러나 논란이 일어나는 초점을 보면 그들이 '여성'이라는 문제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단순히 외모 지상주의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뚱뚱하거나 못생긴 남자 개그맨들이 잘생긴 출연진들에 비해 병풍취급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그림 역시 숱하게 등장하였지만, 그에 대한 논란은 여성이 똑같은 취급을 당했을 때보다 훨씬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 <1박2일>의 논란 역시 본질을 들여다보면 '외모 지상주의' '차별'이라는 단어보다 '비키니' 때문에 그 비난의 수위가 높아졌다고 봐야한다. 외모 지상주의는 비키니로 불편해진 마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매직아이>에서 곽정은의 발언이 아쉬운 것은 그가 당당히 자신의 몫을 하며 살아가는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다. 여성으로서 자신이 들으면 불쾌할 수 있는 얘기를 남자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 과연 쿨한 행동일까. 여성으로서 당당히 서기 위해서는 다른 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인지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것만이 좀 더 발전적인 형태의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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