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뒤처지는게 싫었던 우리.. 삐딱한 아웃사이더 기질도 있죠"

허정헌기자 2012. 8. 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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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B세대', 나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문화 소비자였던 과거배꼽티, 보세 옷 가게… 남들과 달라야 직성 풀리고 변화와 속도에 대한 열망 컸죠콘텐츠 생산자된 지금현재 20, 30대가 주 소비층 그들의 추억 담는 데에 포커스 10년 전의 아이콘은 좋은 소재전성기 맞은 추억 마케팅30대 후반~ 40대 중반 600만 수많은 변화 속 잡초처럼 성장 문화주도권 쉽게 안 뺏길 것

잔잔하면서도 직설적인 015B의 음악을 향유했던 세대들의 특성, 그 세대의 문화 아이콘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문화 소비자였지만 지금은 콘텐츠 생산자가 된 '015B'세대 3인을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원희 영화감독, 이수진 뮤지컬 작가, 최지현 스마트에듀토이 대표. 그룹 015B의 리더 장호일이 당시 상황을 콘텐츠 생산자로서 설명하기 위해 자리를 같이했다.

장호일은 자신들의 음악을 "1990년대 가요계의 주축에 들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이 기본적으로 삐딱한 성향을 갖고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연인 사랑 얘기에 눈물 흘리고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되고파 할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더 궁금하고 어느 곳에 사는지 더 중요하게 여기'(015B 3집 '수필과 자동차'ㆍ1992)는, 당시 세대의 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시각을 오롯이 담아낸 가사들에 대해선 "시적인 표현을 잘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몰라서 용감했고 애써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은 당시 젊은이들의 기질과 '딱'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더욱 신선했는지도 모른다.

-015B 노래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나.

"1993년 KBS 대학가요축제에서 동상을 받았는데 015B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치하게 받아들여졌던 에피소드가 있는 가사, 쓰레기 취급 받았던 컴퓨터 음악이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는 걸 015B가 증명했고, 그걸 받아들인 거다."(조원희 감독ㆍ이하 조)

"저처럼 여고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남자 사람'과 처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데,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015B 노래를 들으면 굉장히 착한 사람이 그려지는 거다. 그래서인지 레이스, 핑크 좋아하는 여성적이고, 모범생인 친구들이 015B를 굉장히 좋아했다. 일종의 로망인 셈이다."(이수진 작가ㆍ이하 이)

"처음 015B 노래를 접한 게 고등학교 때인 듯한데, '대학에 가면 저렇게 생활하고 연애를 하는구나'하는 상상이 들었다. 선배들의 경험담을 듣는 느낌이랄까."(최지현 대표ㆍ이하 최)

-015B 세대의 특성은 무엇인가.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하는 워크맨에서 CD플레이어, MP3까지 짧은 유행을 수용한 세대다. 그만큼 변화에도 익숙하고, 또 빠른 것에 대한 갈망도 있다. 뒤쳐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욕망도 큰 세대인 거 같다."(최)

"하여간 이 세대는 뒤쳐지는 걸 정말 싫어한다. 스스로 특별하고, 선배들처럼 촌스럽게 살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DSLR에 낚인 거다. 사진기자를 할 것도 아닌데 수백만 원짜리 카메라 사서 집에서 강아지 찍고 있다. 얼리 어답터 기질이다."(조)

"나는 89학번인데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최악의 학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다들 놀러 다니기 바빠 사회과학 공부하는 동아리에 한 사람도 안 들어갔기 때문이다. 선배들 말은 안 듣고, 술자리 가면 다들 새우깡에 소주 마시는데 '저는 맥주 주세요'한 첫 학번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자기 주장이 강했다."(이)

-015B세대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은.

"브랜따노, 언더우드 이런 상표 기억나나. 셔츠 하나에 4,850원, 뭐 이런 10원단위 마케팅이 시작될 땐데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친구들이랑 그런 옷을 사러 다녔다. 1971년생부터 이후 6년간 교복을 안 입었으니 이런 옷이 잘 팔렸다."(조)

"영화 '건축학개론'에도 나왔지만 무스가 강남 오빠들의 필수품이었다. 잘 나가는 오빠들은 남들하고 같은 상표가 달린 옷을 입기 싫어해서 압구정동 보세 옷 가게에 몰려 들었다. 남들 안 하는 거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대였으니까."(장호일ㆍ이하 장)

"브랜드 선호가 당시에도 있었다. 폴로, 셰비뇽, 다니엘에스떼. 이게 다 한 회사의 브랜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약을 하다가 잘못되신 모델 출신의 CEO 노충량씨가 수입한 거다. 그 분이 1991년 대망의 브랜드 찰스 허 주니어를 직접 런칭했다. 석 달 만에 망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폴로밖에 없을 정도로 브랜드 회전도 빨랐다."(조)

"핫뮤직이라는 음악 잡지를 아이콘으로 꼽고 싶다. 팝칼럼니스트 유은정씨가 궁금한 점만 콕 집어서 우리의 감성으로 톡톡 튀면서도 속 시원하게 써줬다. 친구들과 돌려가며 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이)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일본 만화도 유행했다. 한 권씩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고. 일본 음반도 해적판으로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최)

"1990년대 초반 강남 유흥의 중심지가 방배동에서 압구정동으로 옮겨오면서 노출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똥꼬치마, 핫팬츠, 배꼽티 등 의상이 극단적으로 짧아졌던 시대다."(장)

"그 시절 카페의 핫 아이템이라고 하면 파르페를 빼놓을 수 없다. 오렌지주스에 아이스크림 올리고, 웨하스를 하나 얹은 뒤 화룡점정, 우산 모형을 꼽는 건데. 다들 기억하나?"(조)

"그 시대 아이콘으로 배낭여행도 있다. 1993년 유럽에 갔는데 한국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해외여행이 팝콘처럼 '뻥' 튀겨진 시절이다. 관련 책들도 쏟아졌고."(이)

-당시 경험이 지금 창작활동에 녹아 나오고 있나.

"IT 산업에서는 기기를 다루는 데 익숙한 20, 30대가 주 소비층이다. 개발하는 입장에서도 그 연령대에 포커스를 맞춘다. 당연히 그들의 추억을 어떻게 서비스에 담을 것인가가 항상 큰 고민거리다. 10년 전 유행했던 음악, 패션 같은 것이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최)

"좀 가증스러운 느낌이 든다. '추억팔이'랄까. 하지만 대본을 쓰다 보면 어느새 1980,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더라. 추억을 상품화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이)

-015B 세대가 문화소비의 주체라고 생각하나.

"1980년대 후반 국내서 음반 25만장을 팔 정도로 인기였던 뉴트롤즈가 몇 년 전 내한했다. 당장 표를 예매하고 공연장 LG아트센터로 달려갔다. 아니나다를까 사상 제일 구린 객석 물이더라. 배 나온 중년 아저씨들이 '아다지오' 나오는 순간 전원 눈물을 쏟는데, 와…. 소년시절 실물에 대한 결핍을 중년이 돼서 돈 아끼지 않고 푸는 거다."(조)

"2008년 듀란듀란 내한공연 때 객석 2층 난간에 '당신을 19년간 기다렸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보컬인 사이먼이 그걸 보고 정말 19년이나 기다렸냐고 묻자 관객들이 다 울었다. 그만큼 열렬한 거다. 우리 세대를 겨냥한 공연이 잘 되는 이유다."(이)

"한두 달 전 남이섬 공연에서 015B를 봤다. 걸그룹도 아니고 015B를 보면서 가슴이 떨릴 것이라 상상도 못했는데 고교, 대학 때 추억이 떠오르면서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공연 관람료? 당연히 아깝지 않았다."(최)

-015B 세대를 겨냥한 추억 마케팅이 지속될까.

"당연하다. 일단 인구가 많다.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한 600만명이 이 세대다. 게다가 문민정부 출범, IMF 등 최근 대한민국의 수많은 변화 속에서 잡초처럼 커온 사람들이라 자기들이 쥔 문화적 주도권을 쉽게 내주지 않을 거다."(조)

"아는 선생님이 1950년생인데 아이폰을 안 쓴다. 너무 흔해 촌스럽다는 거다. 그 분은 독특한 제품을 누구보다 빨리 사서 쓴다. 아마도 우리 세대는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크게 높아질 것 같다."(이)

"우리 세대는 더 젊은 세대, 동년배 친구들보다 앞서 가려는 경쟁심리가 강하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사서 쓰는데 거부감도 적고. IT 서비스 개발자로서는 밝은 미래다."(최)

"추억마케팅이 적어도 4, 5년은 갈 듯하다. 015B 세대의 전성기는 아마 내년이 되지 않을까."(장)

허정헌기자 xscope@hk.co.kr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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