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
와인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이었고 이왕이면 포도 수확에도 직접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포도밭 수확에 참여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것도 프랑스의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이었다. 부르고뉴 지방은 꽤 까다롭기로 알려진 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Pinot Noir)만을 가지고 섬세하고도 우아한 레드 와인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알려진 로마네 꽁티(Romanee Conti)도 바로 이곳에서 생산된다.
9월 말, 10월 초가 되면 프랑스의 포도밭들은 매우 분주하다. 그리고 와인메이커 입장에서는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는 시기가 되기도 하며 이들에게 관광차 방문하는 이방인들은 결코 반가울 수 없을 것이다. 포도 수확 일정을 정하는 것은 와인품질에 큰 영향을 주기에 와인메이커와 빈야드매니저는 수확 날짜를 정하는 데에도 크게 고심을 한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시간에 따라 사주팔자가 정해지는 이치와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수확에 참여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가장 흥분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최고의 와인들만 생산된다는 본 로마네 마을에서의 포도 수확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부르고뉴 와인 전문 학교인 CFPPA(국립 농업 전문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일부로 참여한 나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나면 견습생으로서 포도밭 수확에 참여할 수 있는데 내가 배치된 것은 이미 국내에서도 알려져 있는 쟝 이브 비조(Jean Yves Bizot)의 와이너리였다. 특급와인인 최상급 품질의 에세죠(Echezeaux)를 생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족단위의 조그마한 규모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인들을 만들어 내는 이 곳은 주인장인 비조씨가 직접 포도수확을 할 정도로 정성이 들어가 있다.
포도 한 송이 한 송이를 따면서 약간이라도 좋지 않은 부분의 포도 알을 일일이 골라내어서 수확을 하는데 꽤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었다. 면적에 비해 극히 적은 수량의 와인이 생산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이곳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전 유럽지역에서 일부러 휴가를 내고 수확을 도우러 온 꽤 충성도가 높은 와인애호가 들이었다. 전혀 다른 직업 군의 사람들이 와인이 좋아 모인 것이다. 함께 하는 점심시간은 마치 오후 한때의 여유로운 파티가 연상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들은 분명 모두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인 듯 한데 이미 가족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버린다.
포도 수확 철이 되면 유럽 전 지역의 와인애호가들 혹은 학생들이 포도수확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다. 일부는 아예 전문적으로 구성되어 일을 하기도 하는데 프랑스는 남부 지역부터 수확을 시작하기에 남부 지역부터 시작하여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약 1달 정도는 거뜬히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캠핑 카를 끌고 다니기도 하고 일부는 베낭을 메고 다니면서 민박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적당한 장소에 텐트를 치고 숙식 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씩 발견할 수 있다.
쟝 이브 비죠의 와이너리처럼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 중 일부는 프랑스 파리나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 곳에서 특정 부르고뉴 와이너리와 긴밀한 친분을 가져 매년 휴가를 내어 수확을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일한 대가로 얻게 되는 와인은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즐겁고도 소중한 선물이 된다. 포도 수확 체험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스타일의 휴식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르고뉴는 조그만 시골 특유의 보수적이면서도 따스한 인간미와 자연인으로의 순수성이 엿보인다. 이들의 삶은 좀 더 소박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였으며 와인을 통한 낙천적인 즐거움이 묻어 나오기도 한다. 전통성과 최고의 와인들을 고집하는 뚝심과 자존심 하나로 이들의 와인은 전세계 최고 수준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최성순은
한땐 와인은 폼만 잡는 술이라고 무시했다. 그러던 그녀가 우연히 알게 된 와인의 끌려 아예 직업까지 바꿔버렸다. 와인 포탈사이트인 와인21닷컴(wine21.com)을 운영하면서 와인전문 칼럼을 쓰고 있다. 와인과 친해진 지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 그녀는 거의 매일 와인을 즐기는데 분위기가 좋은 날엔 심하게 즐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