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관련서비스

검색

검색폼

한혜진 "영화 '26년' 실제 일, 왜 정치적이라 하는지" 본문

뉴스 본문

한혜진 "영화 '26년' 실제 일, 왜 정치적이라 하는지"

"'너 전라도지?' 악플 슬퍼" "하늘 가신 아버지 영화 보셨으면…" 출처 연합뉴스 | 입력 2012.12.03 13:42

기사 내용

"'너 전라도지?' 악플 슬퍼" "하늘 가신 아버지 영화 보셨으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5·18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 어떤 분들은 왜 그걸 왜곡한다고 하고 정치적인 걸로 보는지 답답하고 슬퍼요. 그래도 벌써 80만 관객이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걸 보면 힘이 납니다."

영화 '26년'의 배우 한혜진은 영화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선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 영화는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광주 시민 학살의 주범을 26년 만에 단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2008년 제작이 추진됐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투자자들이 발을 빼면서 4년간 제작이 표류됐다. 그 사이 영화의 핵심인 저격수 역할을 맡을 여배우로 여러 사람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한혜진에게 돌아갔다.

2002년 데뷔해 2006년 '주몽'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안방극장에서 사랑받은 그는 토크쇼 '힐링캠프'의 진행을 맡으면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데다 오랫동안 가수 나얼과 연인 사이로 지내며 다른 스캔들도 없었던 그는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로 CF 모델로도 주가를 올리던 참이었다.

그런 한혜진이 민감한 소재로 투자·제작이 불투명한 영화 '26년'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언론과 대중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관객은 영화 속 그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서 영화를 대하는 그의 진정성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밀고 가는 심지와 강단을 읽을 수 있었다.

3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한혜진은 여전히 단단한 눈빛으로 5·18을 얘기했다.

"정말 이 영화에 꽂혔어요. 지난 7월에 대본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얼마나 빨리 읽었는지 몰라요. 가슴이 막 뜨거워지는 느낌이었죠. '어떻게 이렇게 좋은 게 나한테 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면서 막 조급해졌어요. 이거 내가 해야 되는데 못하게 될까 봐. 다음날 영화사에 하겠다고 얘기하기까지 하루를 넘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잠이 안 올 정도였죠."

소속사와 가족, 가까운 지인들의 만류가 당연히 그를 막아섰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가족들이 가장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런데 제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애가 아니니까 그냥 놔두셨어요. 제가 원래 '한 고집' 하거든요(웃음). 회사에서도 시나리오를 건네주긴 했지만 자꾸 정치적인 것에 연루되고 오해를 살까 봐 걱정된다고, 영화사 앞에 도착해서까지 전화를 했죠. 'CF 안 해도 되냐'고요. 그래서 '안 해도 돼요' 그랬죠."

그렇게 고집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줬다고 했다.

"제가 크리스천이라 이런 표현을 쓰는데 촬영하면서 이게 천국인가 싶었어요. 촬영 막바지에 대전에서 사거리 장면을 촬영할 때 의자에 앉아 노을이 지는 걸 바라보는데 '아, 진짜 행복하다. 영화가 끝나는 게 싫다. 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 드라마들을 찍으면서는 힘들어서 언제 끝나나 했는데 참 다르더라고요. 감독님을 비롯해 같이 출연한 선배님들 모두 저를 정말 사랑해주셨거든요. 정말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힘들었던 장면으로는 극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크레인 저격 장면을 꼽았다.

"크레인 촬영을 할 때에는 고독하단 느낌이 들었어요. '그 사람' 집을 아주 극히 일부만 촬영한 상태였고 비 때문에 순서가 바뀌어서 제가 나오는 장면을 먼저 촬영했죠. 다른 배우들이 어느 정도 연기한 지 모르고 촬영해서 수위 조절이 어렵더라고요. 감독님이 상황을 얘기해주시면 크레인 위에서 혼자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 범위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영화 보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것도 그 장면이고요."

국가대표 사격선수 역할을 하면서 처음으로 총을 잡은 것도 육체적으로 고된 경험이었다.

"나무 총을 개조한 것도 무거웠고 M16도 엄청나게 무거웠어요. 근육통 약을 많이 먹었죠. 그리고 화약총을 썼는데 소리가 어마어마했죠. 그런데도 광주 시민들이 아무도 불평을 안 하시더라고요. 추석 때 그렇게 쐈는데도요. 오히려 음료수 갖다주시고 격려해주셨죠."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는 역시나 5·18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이들의 악성 댓글이 늘었다.

"'너 전라도지?' 그런 악플도 많고요. 옛날에는 저에 대해 (대중들이) 무관심했는데, 영화 개봉 후 악플이 진짜 많이 늘었어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거 알고 있는데 그게 너무 슬퍼요. 감독님 말씀처럼 정말 우리 영화가 사회적으로 좋은 작용을 하면 감사한 것이고 누구도 정치적인 걸로 이용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는데도요. 5·18 피해자 분들이 아직도 얼마나 아프시겠어요. 그런데 그 기념관 앞에까지 와서 '폭도'였다고 몰아가는 데모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건 아니잖아요. 명백히 학살이었고 길가다가 죽은 분들도 많았고요."

그는 자신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 '미진'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미진이 엄마가 방 안에 있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신 얘기도 실제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방에서 창문을 닫다가 즉사한 걸 모티프로 그린 거라고 들었어요. 저도 사실 무식하고 무지했는데 영화를 하기로 했던 순간부터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죠. '오월애'란 다큐멘터리 영화나 KBS 시사프로그램을 보며 공부하고 영화 '화려한 휴가'와 '박하사탕'도 다시 봤어요. '26년'이 꼭 탄생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많은 분이 채무의식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해요. 제가 사랑하는 한 목사님은 친구들이 실제 5·18 현장에 있었다는데 영화를 보시고는 문자메시지로 '네가 자랑스럽다'고 하셨어요. 잊고 지낸 시간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많은 분이 영화를 보고 이런 걸 느낀다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지금 가장 안타까운 건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이 영화를 못 보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빠가 봐야 하는데…, 영화가 잘 되고 있으니까 더 사무치죠. 진짜 제가 나온 작품들을 꼼꼼하게 모니터해주셨거든요. 늘 자랑하시고. 지금 차라리 영화 때문에 이렇게 바쁜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일상은 똑같이 돌아가는데 문득 아버지의 사진이나 물품을 보면 울컥해서 힘들거든요. 생각 안 하려고 애써서 많이 노력하고는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사무치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단 게 참 슬퍼요. 그래도 영화가 이렇게 잘 되는 걸 보면 '하늘에서 응원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TV 드라마와 예능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이제 '26년'으로 스크린에서까지 재목으로 우뚝 서게 됐다. 데뷔 10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으니 야무진 대답이 돌아왔다.

"연기를 정말 잘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좋은 배우로, 좋은 사람으로, 좋은 본이 되고 싶습니다. 영화를 정말 더 하고 싶어요. 아직 차기작 정해진 게 없으니까 영화 관계자들께서는 시나리오 많이 좀 보내주세요(웃음)."

mina@yna.co.kr

(끝)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